아키라와 카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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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이다.

음악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 음악을 들을 때마다, 그 음악 속에 묻어있는 추억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군 생활을 하던 곳은 그래도, 나름대로 자유로운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곳에 속한다. 일단 내무반 생활을 하지 않고, 자신이 근무하는 곳에서 잠을 자는 직감 생활을 하는 곳이었는데, 그곳 2층으로 몇 명의 대기병이 온 적이 있었다.
막 훈련을 마친 그들이 대기병으로 온 이유는, 그들이 미술 특기병들이었기 때문에 당시 부대에 있을 어떤 행사를 위해서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였다. 난, 일과 후에 특별히 할 일도 그렇게 많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의 감독관이 없을 틈을 타서 그들에게 자주 놀러가곤 했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군에 있을 때 물론 육체적으로 받는 스트레스도 많겠지만, 좋아하는 음악을 듣지 못한다는. 마음속으로만 좋아하는 음악을 들어야만 한다는 남다른 스트레스가 있다. 나의 경우에도 초창기 음악을 제대로 듣지 못할 쫄병 시절에 듣고 싶은 음악들을 빡빡하게 써 내려가던 조그만 노트도 가지고 있었다.
그 몇 명의 대기병들도 하나같이 음악을 좋아했다. 특히 한 녀석은 나와 비슷한 취향을 가지고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들과 조금씩 가까워졌을 때 그 대기병은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의 ‘The Wall’음반을 듣고 싶다고 했다. 감시자의 눈 들을 피해서 내가 있는 직감처로 와서 음악을 들려줬을 때 그 녀석의 표정이 참 좋았다. 그리고, 카멜(Camel)의 ‘Stationary Traveller’를 들려주면 첫 번째 외박에 나갔다가 들어올 때 정말 기가 막힌 비디오를 가지고 와서 빌려준다고 했다. 그땐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우린 카멜l의 음악을 틀어 놓고 이 얘기 저 얘기 밤이 깊도록 음악얘기들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첫 번째 외박을 다녀온 그의 손엔 비디오 테이프 두개와 몇 권의 화집이 있었다. 그때까지 일본 에니메이터들의 화집을 본 적이 없었던 나에게는 정말 놀라운 그림들이었다. 더군다나 그가 가져온 아키라(Akira)와 그 제작과정의 비디오 테이프는 나에게 새로운 세계로 안내해 주는 하나의 통로와도 같았다.
물론 지금이야, 인터넷도 발달하고, 복사 CD들도 자주 보이고, 또 일본의 애니메이션이 직접 수입이 될 수 있는 시대이지만, 당시 펼쳐졌던 새로운 세계는 지금까지도 나를 소위 재패니메이션 속으로 묶어두는 올가미와도 같은 그런 것이었다고나 할까. 상관들의 눈을 피해 그 대기병이 연필과 파스텔로 그려줬던 주다스 프리스트(Jadas Priest)의 [Sad Wings of Destiny] 자켓 그림은 액자에 넣어서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아키라는 정말 대단한 애니메이션임에 틀림없다. 물론 개봉할 당시 함께 개봉되었던 ‘이웃의 토토로’와 ‘반딧불의 무덤’때문에 일본 내에서의 수상경력은 화려하지 않지만, 한참이 지난 후 '메모리스'에 다시 ‘오토모 가쓰히로’의 작품이 등장한다는 말만으로도 가슴이 설레게 할 정도로 대단한 애니메이션이었다. 하지만, 내 마음속의 아키라는 언제까지나 카멜의 곡과 함께 -기억하고 싶지 않은 군 생활이지만- 맘 한구석 따스함이 배어나오던 때가 있었음을 기억 해 주는 수단이다. 음악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 음악을 들을 때마다, 그 음악 속에 묻어있는 추억이 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카멜의 곡이나 들어야겠다. (월간 핫뮤직 2004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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