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타리스트의 선생님, 이정선 디스코그래피 3

이정선은 자신의 솔로활동 외에도 해바라기, 풍선, 신촌블루스에서 활동했다. 포크와 블루스를 오가는 그의 솔로활동과 밴드활동을 연관 지어 살펴보면 더욱 이정선의 음악세계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듯하다. 이정선 디스코그래피 그 마지막 시간으로, 이정선이 주도적으로 참여한 밴드들의 음반들이다.


신촌블루스
그대 없는 거리 / 아쉬움 (1988)

라이브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신촌 블루스의 데뷔앨범이다. 이미 이정선의 음반에 수록되었던 ‘한밤중엔’은 서로 다른 톤과 스타일을 가진 두 명의 기타리스트가 펼치는 트윈기타 후주가 인상적인 곡이고, 도입부만 들어도 ‘역시 박인수’를 되뇌게 되는 ‘봄비’는 국내 소울의 제왕이라고 불리는 그의 첫 녹음과 함께 단연 최고로 남을만한 작품으로 거듭났다. 브릿지 부분의 하모닉스가 인상적이며, 여성 코러스라인은 더욱 발전해서 두 번째 앨범의 ‘루씰’과 ‘골목길’에서 완성된 신촌 블루스의 스타일을 이룬다. 신촌 블루스의 이후 활동에 청신호로 작용하게 되는 ‘아쉬움’은 정서용의 맑은 목소리와 엄인호의 거친 목소리가 어우러진 팝퓰러한 넘버로, 마치 조 카커와 제니퍼 원스의 언밸런스한 하모니를 연상시키며 가요차트에서도 맹위를 떨친다. 격정적 연주와 보컬을 담은 ‘바닷가에 선들’과 잼 형식의 자유로운 기타연주와 하모니카 연주가 곁들여진 ‘Overnight Blues’도 빼놓을 수 없는 트랙. 당시 국내 블루스의 여제로 불리던 한영애의 존재가 오히려 음반 내에서는 미미하다.

신촌 블루스
신촌 Blues II (1989)

신촌 블루스 최고의 명반으로 꼽을만한 음반이다. 이전 음반에서 최고의 히트곡을 만들었던 정서용은 김창완의 ‘황혼’과 ‘빗속에 서있는 여자’에 참여했다. ‘빗속에 서있는 여자’는 명혜원의 두 번째 음반에 수록되었고, 한영애도 즐겨 불렀지만, 정서용의 버전은 끈끈한 블루스 특유의 매력이라기 보다는 다소 몽롱하고 환상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두 번째 음반의 분위기를 쇄신한 인물은 역시 김현식이다. 1집에 한영애의 버전으로 수록되었던 엄인호의 스타일로 다시 편곡한 ‘바람인가 / 빗속에서’ 접속곡은 아무렇게나 내뱉는 것처럼 부르는 것 같지만, 김현식이라는 뮤지션의 무게가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는 곡이고, 이전 여러 버전으로 소개되었던 ‘골목길’은 그가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신촌 블루스 최고의 명곡가운데 하나다. 물론, 한 사람의 재능이 명곡을 만든 것 아니라는 점은 또 하나의 명곡 ‘루씰’을 들으면 분명해 진다. 절묘한 혼 섹션과 코러스라인의 조화는 국내 대중음악의 진일보를 말해주는 쾌거라고 할 수 있다. 슬로우 템포의 완만한 진행이 블루스의 정의가 아님을 보여주는 ‘산 위에 올라’, 복고풍의 소울 넘버로 거듭난 ‘환상’ 등, 어느 한 곡 소홀히 할 수 없는 수작 음반이다.

풍선
너무나 속상해 / 불새야 동산으로 (1979)

부산에서 상경한 엄인호가 처음으로 레코딩에 참여한 음반이다. 원래는 엄인호와 이광조의 듀엣으로 이루어졌지만, 제작자의 의도가 반영되어서 편곡과 어레인지를 맡고 있던 이정선까지 3인조의 형태를 띠게 되었다. 포크의 성향이 진하지만, 대다수의 곡들이 텐션이 강한 코드로 이루어져, 기존에 발표되었던 포크 넘버들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이후 신촌 블루스의 음반에 ‘기적소리’라는 제목으로 불려진 곡의 원곡 ‘너무나 속상해’를 비롯해서 초기 엄인호의 음악세계를 엿볼 수 있는 음반이다. 이후 그의 작품들에서는 보기 어려운 전통 음악 스타일의 ‘엿장수’는 독특한 트랙. ‘여름’이 수록되어 있긴 하지만, 풍선들이 부른 것이 아니고 예전 해바라기의 녹음으로 보인다. 이들의 온전한 곡들 보다는 오히려 대학가요제에서 발표되었던 ‘젊은 연인들’이 관심을 모은 바 있다.


해바라기
해바라기 노래모음 제1집 (1977)

해바라기는 원래 김의철이 명동의 가톨릭 여학생회관에서 이끌었던 무료 노래 공연의 이름이었다. 이수 1975년 이정선이 김의철의 후임으로 이 공연을 이끌게 되며 4인조 팀으로 모임을 재정비하여 공연을 이어가게 되는데, 멤버는 이정선과 이주호, 한영애 그리고 김영미였다. 이 앨범은 해바라기의 데뷔앨범으로, 마치 노래 모임의 진행처럼 중창팀 해바라기와 솔로 보컬리스트들의 노래들이 나뉘어 실렸다. 전체적인 지휘를 이정선이 했던 만큼 이정선 특유의 실내악풍 편곡을 들을 수 있고, 보컬 화음의 묘를 살린 곡이 대거 포진되었다. ‘구름, 들꽃, 돌, 연인’은 해바라기의 대표곡이라고 할 수 있고, 이정선의 ‘님의 편지’는 당시 그의 솔로음반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을 만큼 텐션코드가 많이 사용되었다. 심각하지 않고 가볍게 산책하는 듯한 느낌의 ‘행복의 나라로’는 새로운 발견이며, 이주호가 작곡하고 한영애가 노래한 명곡 ‘마음 깊은 곳에 그대로를’이 수록되었다.


해바라기
해바라기 2집 (1979)

이정선의 네 번째 음반과 비슷한 시기에 발매된 해바라기의 음반으로, 겹치는 곡도 많아서 비교 감상이 흥미롭다. 군 입대로 자리를 비운 이주호의 자리에는 이광조가 가입해서 변함없이 4인조의 화음에 참여했다. 지금도 여름에 라디오를 통해 한번씩 에어플레이되는 ‘뭉개 구름’이나 징검다리가 제1회 해변가요제에서 불러 대상을 차지했던 ‘여름’의 해바라기 버전이 수록되었다. 트로트(추억의 백마강)에서, 동요(고향의 봄, 반달)와 같은 의외의 선곡은 물론 ‘세노야’와 같이 기존에 익숙한 포크 넘버들도 전혀 예상외의 진행으로 편곡되었다. 그만큼 이정선의 군악대에서 익힌 편곡 능력이 빛을 발하는 음반이라고도 하겠다. 일반적으로 해바라기라고 하면 포크 쿼텟 정도로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많으나, 음악을 들어보면 포크에서 사용하는 악기를 가지고 여러 근접장르에 접근하는 음악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1집과 달리 솔로의 비중이 줄고, 전체의 화음에 포커스가 맞춰진 음반이다.


해바라기
해바라기 (1986)

미국에 거주하다가 일시적으로 귀국한 김영미와 함께 일시 재결성한 해바라기의 음반이다. 수록곡은 신곡보다 기존에 발표했던 두 장의 음반에서 선곡된 곡으로 이루어졌으며, 물론 모든 트랙은 새롭게 녹음된 트랙들이다. 당시 김영미를 제외한 이정선, 이광조 그리고 한영애 모두 솔로로 어느 정도의 지명도를 가지고 있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일종의 슈퍼 프로젝트라고도 할 수 있는 재결합이라고 하겠다. 1집에 참여했던 이주호는 유익종과 함께 듀오 해바라기를 결성해 인기의 상종가를 유지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두 해바라기간의 대결 역시 흥미로운 구경거리였다. 기존 두 장의 음반에 수록되지 않았던 ‘지금은 헤어져도’가 머릿곡으로 실리며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 이정선 작곡이긴 하지만 이주호의 해바라기가 먼저 취입한 바 있다. 대부분의 곡이 처음 수록될 당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편곡으로 이루어졌지만, 보다 많은 악기가 사용되며 소박한 느낌은 거세된 반면 빅밴드 스타일의 재즈 넘버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글 송명하 (20111214)

* 밀러 공식 블로그(http://blog.naver.com/blogmiller)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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