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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ER'S MUSIC LIFE/EXTERNAL CONTRIBUTIONS

국내 초창기 포크록의 숨겨진 일등공신 오리엔트 프로덕션, 그리고 동방의 빛


이장희 _ 그건 너! (1973)이장희 _ 그건 너! (1973)

한 TV 프로그램을 통해 방송되었던 송창식, 윤형주, 김세환 그리고 조영남의 재미있는 회고와 감동적인 노래들은 순식간에 반향을 일으키며 몇 차례의 유사한 포맷의 프로그램의 탄생과 특집 콘서트들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러한 프로그램과 콘서트들에는 어김없이 ‘세시봉’이라는 타이틀이 나붙었다. 서점들에도 ‘세시봉’을 제목에 포함시킨 책들이 꽂혔고, 음반시장에도 너나없이 ‘세시봉’을 타이틀로 등장시킨 6~70년대의 포크 모음집이 등장했다. 2000년대 중반에 등장한 ‘7080’이라는 단어에 비해 협의의 내용을 담고 있는 명사지만 순식간에 한 시대를 대표하는 대명사로 등극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초창기 포크 음악에 있어서 ‘세시봉’이 한 부분을 차지하긴 하지만, 지금 생각하는 것처럼 절대적인 부분은 아니었다. 

물론, 앞서 열거했던 네 명의 가수들이 세시봉에 출연했다는 사실이나, 당시 세시봉이라는 공간이 단순히 음악 감상의 공간을 넘어서 한 시대의 문화를 공유하는 공간이었다는 이야기를 부정하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포크 음악들을 들을 수 있는 문화 공간 가운데는 ‘르시랑스’도 있었고, ‘셀부르’, ‘선샤인’과 같은 업소들도 있었다. 그리고 ‘세시봉’ 유행의 결정적 동기부여를 했던 네 명의 뮤지션과 함께 떠 올릴 수 있는 오리엔트 프로덕션과 밴드 동방의 빛이 있다. 오리엔트 기획은 작곡가 나운영의 후손이자 가수 김세환의 이모부기도 한 나현구가 성음 레코드의 기술부장으로 근무하다가 1973년경 독립하여 설립한 기획사다. 오리엔트 프로덕션과 동시대 여타 기획사간의 가장 큰 차이점은 오리엔트 프로덕션에는 동방의 빛이라는 ‘전속 밴드’가 있었고, 대표인 나현구가 프로듀서를 담당하며 이들의 연주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렇게 조직된 안정적인 팀웍은 가수를 선별하는 탁월한 ‘선구안’과 트렌드를 주도하는 뛰어난 혜안으로 시대를 대표하는 명반들을 양산해내는 원동력이 되었다.

지난 1월 19일, 한 TV 프로그램을 통해 이장희의 콘서트가 방송되었다. 23년 만에 열린 그의 콘서트에 연주파트를 담당한 밴드 멤버들은 단정한 백발이 멋진 기타리스트 강근식을 비롯하여 베이스에 조원익 그리고, 드럼에 유영수로 구성된 동방의 빛이었다. ‘세시봉’이 아니라, 이번엔 ‘오리엔트 프로덕션’의 주축멤버들이 다시 모인 것이다. 올해 다시 모인 멤버 외에 당시 키보디스트는 이호준이 멤버로 활동했다. 강근식은 원래 이장희와 함께 듀엣으로 활동했던 기타리스트다. 이장희가 오리엔트를 통해 음반을 발표하게 되면서 강근식이 당시 오리엔트 프로덕션에 있던 기존 세션맨들과 결성한 밴드가 바로 동방의 빛이다. 강근식은 기본적으로 컨트리, 구체적으로는 쳇 엣킨스에 영향 받은 기타를 구사했다. 음반에서는 전반적으로 ‘생톤’의 맑은 소리를 강조하는 기타연주를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기본’에 해당하는 이야기일 뿐, 동방의 빛의 연주에서는 어렵지 않게 핑크 플로이드적인 요소도 들을 수 있다. 당시 밴드의 멤버들이 심취했던 음악이었기 때문에 그대로 자신들의 음악에 녹아들어간 것이다. 이러한 연주는 이후 송창식의 음반에 수록된 ‘새는’과 같은 곡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표현된 바 있다.

오리엔트 프로덕션의 설립자 나현구는 이러한 동방의 빛을 위해 최초로 국내에 무그를 도입했을 만큼 악기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고, 기술적으로 멀티트랙 녹음이 불가능하던 시절 기본 악기로 녹음된 소스를 틀고 그 위에 기타 연주를 다시 입히는 소위 ‘핑퐁 녹음’을 통해 악기소리를 더빙시키며 차별화된 ‘스튜디오 사운드’를 만들어냈다. 이장희, 김의철, 원 플러스 원, 4월과 5월, 현경과 영애, 송창식의 음반은 물론, 영화사에 길이 남을 O.S.T.인 「바보들의 행진」, 「별들의 고향」과 같이 단순한 ‘통기타’의 반주를 넘어선 한국 포크의 명반 뒤에는 바로 오리엔트 프로덕션과 나현구, 그리고 동방의 빛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긴급조치 9호와 함께 들이닥친 소위 ‘대마초 파동’에서 오리엔트 프로덕션 역시 자유로울 순 없었다. 대표하는 간판 스타들의 활동이 묶여버린 회사는 얼마 지나지 않아 부도를 맞이하게 되고, 이후 재기하여 조동진, 남궁옥분, 들고양이들과 같은 수작 음반들을 발표하긴 했지만 1970년대 화려한 전성기에 비교할 바는 되지 못했다. 자칫 역사 속으로 묻혀버렸을 초기 오리엔트 프로덕션의 소중한 음원들이 정식 계약을 맺은 MRC레코드(구 뮤직 리서치)를 통해 활발하게 CD로 재발매되고 있다는 사실은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다. 재발매를 통해 비교적 구매가 용이한 오리엔트 프로덕션발 명반들을 선별해봤다.


이장희 | 그건 너! (1973)

‘꾀꼬리’와 같이 아름다운 목소리를 선호하던 1970년대 초반, 가창력과는 거리가 먼 목소리와, 단정하지 못한 콧수염을 가진 이장희의 등장은 분명히 커다란 충격이었다. 그리고 당시의 관행을 벗어나 보컬과 연주가 동일선상에 놓인 음반이라는 점도 독특하다. 이장희의 목소리와 강근식의 기타 연주가 같은 위치에 놓여있다는 점은 타이틀 곡 <그건 너!>를 들으면 더욱 분명해 진다. 클라이맥스 부분, 이장희가 ‘그건 너’를 외치면 곧바로 강근식의 기타가 뒤를 이어받는다. <그애와 나랑은>에서 해머링과 풀링을 번갈아 하며 트릴을 하는 부분 역시도, 그때까지 국내 포크음악에서는 들을 수 없는 독특한 진행이었다. 연주와 창법 이외에, 가사에 있어서도 독특한 개성을 느낄 수 있다. 일상적인 것들에서 소재를 찾은 “우연히 마주친 동창생 녀석이 너 미쳤니 하면서 껄껄 웃더군”, “전화를 걸려고 동전 바꿨네 종일토록 번호판과 씨름했었네”와 같이 솔직하고 직접적인 표현들은 사랑을 소재로 한 ‘시적’표현들이 대부분이던 국내 음악계에 일대 사건이라고도 할 수 있는 가사들이다. 가창, 연주, 그리고 가사의 혁신과 멜로디의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이장희의 명반이다.


원 플러스 원 | One Plus One (1973)

원 플러스 원의 데뷔앨범으로 연주는 동방의 빛이 담당했다. 첫 번째 트랙 <언덕에 서서>는 가사에 비해 발랄한 스윙감이 특징으로, 지금도 원 플러스 원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가장 많이 남아있는 곡 가운데 하나다. <사랑을 미워해>는 오승근이 불렀던 오리지널 버전이 어쿠스틱 기타 반주로 이루어진 차분한 곡이었던 것에 비해, 영롱한 플렌저 이펙트가 걸린 강근식 특유의 클린톤 일렉트릭 기타 연주만으로 이루어져 그 느낌이 독특하다. <오늘은 일요일>은 저음역대의 기타 스케일을 비롯, 전체적으로 단순한 반주로 이루어진 자니 캐시 풍 컨트리 성향의 곡. <둘 아니고 하나 뿐>은 다소 평범한 곡의 진행에 비해서 비슷한 시기에 발매된 현경과 영애의 음반과 유사한 편곡으로 이루어진 연주를 들을 수 있다. 말 그대로 동방의 빛이 가진 음악적 색깔이 곡에 투영된 것이다. <당신의 모든 것을>은 <언덕에 서서>와 함께 이 음반에서 가장 히트했던 곡이다. 당시에 나왔던 수많은 옴니버스 앨범들에 함께 수록될 정도로 원 플러스 원을 대표하는 또 하나의 곡이며, 가사의 마지막 어미에 붙여 부르는 ‘달라라 랄라라 랄라라’하는 후렴구가 인상적이다.


4월과 5월 | 구름들의 보금자리 / 등불 (1974)

백순진의 유려한 멜로디라인과 결합한 동방의 빛의 진보적인 연주는 동시대에 발표된 그 어떤 음반과도 다른 시너지효과를 불러일으켰다. 연주는 물론, 보컬에 있어서도 ‘공간감’을 느낄 수 있는 풍부한 음장감을 느낄 수 있으며, 녹음실에서 ‘잡음’이라고 여겨져 당시 많이 사용하지 않았던 기타의 디스토션과 퍼즈 이펙트 역시도 과하다 싶을 정도로 음반에 가득하다. 이렇듯 새로운 시도들은 명곡 <등불>이나 <옛사랑>에서 역시 충분히 체감할 수 있다. 뛰어난 멜로디를 가지고 있긴 하지만 자칫 평범한 발라드 넘버로 전락할 수도 있었던 원곡을 사이키한 오르간과 도발적인 기타연주를 통해 기승전결이 완벽한 ‘작품’으로 만들어내는 능력은 단연 발군이다. 이러한 시도는 4월과 5월 시절부터 백순진과 관계를 맺어왔던 이수만의 ‘백순진 작품집’에 수록된 명곡 ‘모든 것 끝난 뒤’로 자연스럽게 이어졌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재발매 음반은 이 음반 수록곡과 나머지 석장의 음반을 두 장의 CD에 담은 40주년 기념 음반이다.


김의철 | 김의철 노래모음 (1974)

오리엔트 프로덕션을 통해 발매되었지만, 동방의 빛이 참여하지 않은 음반이다. 연주에는 기타에 김의철 본인을 비롯해서 김민기와 이정선, 김영배, 클라리넷에 김의혜 그리고 피아노에 김광희가 참여했다. 때문에 기존 오리엔트 프로덕션을 통해 발표된 음반들과 그 질감이 사뭇 다르다. 악기의 편성에서도 볼 수 있듯이 김의철의 편곡은 이정선과 마찬가지로 소규모 실내악과 같은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곡들이 많다. 소위 ‘쓰리 핑거 주법’의 진수를 보여주는 명곡 <저 하늘의 구름따라>는 이후 김광석이 리메이크 버전인 <불행아>로 새로운 생명을 얻었고, 객원보컬 박찬응의 염세적 창법이 섬뜩한 <섬아이> 역시 필청 트랙이다. 기존 포크 음악들과 달리, 어쿠스틱 기타의 스트로크를 배제하고 철저하게 나일론 기타의 아르페지오나 플러킹에 의존하는 완고함만큼 묵직한 김의철의 고집을 엿볼 수 있는 음반이다. <마지막 교정>, <우리의 꽃>과 같은 곡에서 어렵지 않게 감지되는 종교적 숙연함은 이후 그가 프로듀스를 맡은 몇몇 음반들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들이다.


송창식 | 맨 처음 고백 / 손을 잡고 걸어요 (1974)

트윈폴리오에서 독립하여 애플 프로덕션에 둥지를 틀었던 송창식이 오리엔트 프로덕션으로 이적하며 발표한 첫 번째 음반으로, 통산 네 번째 독집에 해당한다. 애플 시절 송창식의 음반이 트윈폴리오의 연장선 혹은, 김희갑의 곡을 받으면서 가요와의 중간적 형태의 위치에 해당했던 반면 동방의 빛과 결합한 새로운 시도들은 향후 송창식의 스타일을 규정지을 정도로 독특한 형태의 진화를 이루었다. 그 진화 가운데는 스매시 히트곡 <한번쯤>과 같이 트로트와 결합했지만 통속적인 느낌이 들지 않는 트랙도 있다. 물론 그 이유는 연주에 참여하고 있는 동방의 빛의 영향력이 클 것이다. 특히 전체적으로 도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무그 신세사이저의 종횡무진 펼쳐지는 활약이 돋보이며, 프로그레시브록의 영향력 아래 펼쳐지는 서늘한 후주를 동반한 <새는>은 단연 압권이다. 송창식이나 동방의 빛의 여타 작품들에서 좀처럼 듣기 어려운 블루스적 감성의 <강변에서>도 독특하다.


투 코리언스 |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 불 꺼진 창 (1974)

투 코리언스는 김도향과 손창철로 이루어진 듀오로, 1970년에 발표한 데뷔곡 <벽오동>의 히트로 잘 알려졌다. 민요풍의 어렵지 않은 멜로디를 가진 곡이지만, 건장한 두 사내가 토해내는 포효와 같은 목소리는 당시 앞이 보이지 않아 답답했던 소시민들의 심정을 대변하는 배설처럼 대리만족을 주었기 때문이다. 오리엔트를 통해 발표된 투 코리언스의 음반. 과연 이렇게 ‘기차 화통을 삶아 먹은 듯’ 파워풀한 이들의 목소리가 정갈한 동방의 빛의 사운드와 어울릴 수 있을까. 결과적으로 본다면 몇몇 곡을 제외한다면 무척 흥미로운 결과로 도출되었다. 물론 이장희가 이미 발표했던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나 <한잔의 추억>, <그건 너>, 혹은 조영남의 <불 꺼진 창>과 같은 곡들은 기존의 연주들을 그대로 ‘재활용’한 듯 보이지만, 투 코리안스의 독특한 샤우팅과 만담과 같은 대화로 재탄생하며 ‘재미’를 선사한다. 특히 조동진 작곡의 ‘들리지 않네’는 소울풀한 투 코리언스의 매력과 재지한 동방의 빛의 연주가 만난 또 하나의 명곡이다.


이장희 / 동방의 빛 | 별들의 고향 O.S.T. (1974)

커다란 히트를 기록했던 최인호 원작, 이장호 감독의 동명 영화 O.S.T. 음반으로, 음악은 이장희와 동방의 빛이 담당했다. 이 O.S.T. 이전에도 영화 주제가를 담은 음반들이 있었지만, 말 그대로 주제가나 삽입곡을 담았을 뿐 배경음악을 수록한 음반은 거의 없었다. 이 O.S.T.에 배경음악까지 수록되어 한 장의 음반으로 발표될 수 있었던 것은, 영화의 빅 히트가 그 배경에 있었겠지만, 그 이면에는 전체적으로 영화의 배경을 지탱하고 있던 음악의 완성도가 출중했기 때문이다. 노래 자체로 히트를 기록했던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어린 윤시내가 부른 <나는 열아홉살이에요>는 물론, 적제적소에 배치한 효과음과 진보적인 연주가 어우러진 4부작 타이틀 트랙은 ‘한국의 핑크 플로이드’라고 할 만한 실험적 프로그레시브록 넘버들이 함께 수록된 음반. 하지만, 자켓의 문제로 또 수록곡의 문제로 이 음반은 계속해서 재발매와 금지가 이어지며 제대로 된 평가 역시 유보되었던 국내 O.S.T.의 걸작이다. 


조영남 | 조영남 컴백 리싸이틀 (1973)

자켓의 사진과 음반의 타이틀로 라이브 음반이 아닌가하고 생각하기 쉽지만, 조영남의 목소리와 동방의 빛의 연주가 스튜디오에서 녹음된 음반이다. 조영남이 발표한 음반은 많지만 동방의 빛과 함께 했던 음반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기존 조영남이 발표했던 음악들과 이 음반을 비교해서 들어보는 것도 흥미롭다. 동방의 빛이 참여했던 몇몇 다른 음반들처럼 이장희의 음반에도 수록되었던 <자정이 훨씬 넘었네>, <그건 너>가 다시 등장하지만, 연주는 새롭게 이루어졌다. <그건 너>에서 들을 수 있는 강근식의 기타 연주는 조영남의 보컬을 따라가는 듯 이장희의 버전에 비해 한결 공격적이며, 현경과 영애의 음반에 수록되었던 <눈송이>는 원곡에 비해 나른하다. 그런가 하면 백순진 작곡의 <사랑은 주는 것>은 원곡에서 먼발치 떨어져 마치 <Suzie Q>처럼 그루비하게 거듭났다. 남의 노래 부르기로 소문난 조영남의 몇 안되는 오리지널 넘버 <불 꺼진 창>이 수록된 곡이라는 점에서도 가치를 둘만한 음반이다.


글 송명하 (20120324)


* 월간 핫트랙스 매거진(http://info.hottracks.co.kr/company/main)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