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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ER'S MUSIC LIFE/LINER NOTES (OVERSEAS)

Pål Thowsen [Sympathy], 노르웨이에서 날아든 고급스런 웨스트 코스트 AOR 사운드



폴 토우슨(Pål Thowsen)은 2011년과 2012년 두 차례에 걸쳐, 닥 아네슨 트리오(Dag Arnesen Trio)의 드러머로 자라섬 국제 재즈페스티벌과 단독공연을 가졌던 노르웨이의 재즈 드러머로 알려져 있다. 1977년과 1979년에는 노르웨이의 그래미 어워즈에서 수상했으며, 그 외에도 다섯 차례나 후보로 지목되었던 말 그대로 관록의 연주자로, 1985년 독일 잡지 ‘재즈 포럼(Jazz Forum)’에서는 유럽의 베스트 드러머 부문에서 5위에 선출되었던 이력도 가지고 있다. 그의 이름으로 발표한 음반 외에도 90여장의 세션 음반을 보유한 폴 토우슨이 프로 경력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아직 10대 시절이었던 1973년 아릴드 안데르센 쿼텟(Arild Andersen Quartet)의 드러머로 노르웨이와 유럽의 재즈 페스티벌 무대에 오르면서부터다. 이후 그들과 함께 ECM 레이블을 통해서 몇 장의 음반을 발표했으며, 지금까지도 꾸준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뮤지션이다. 


[Sympathy]는 그에게 첫 노르웨이 그래미 어워즈의 영예를 안겨준 솔로 데뷔앨범 [No Time For Time](1976), [Suprise](1979), [Carnival](1981)에 이어진 폴 토우슨의 네 번째 정규앨범이다. 앞서 수많은 세션 활동을 벌였다고 했던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 많은 활동만큼이나 그 스타일도 한 곳에 고이지 않고, 다양한 모습으로 표출되었다. 재즈계에서 맹활약을 벌이는 한편 폴 토우슨은 1973년 무즈 루즈(Moose Loose)라는 재즈락 그룹에서 활동하며 평생의 음악적 동반자 중 하나인 기타리스트 존 에버슨(Jon Eberson)을 만나게 된다. 앞선 솔로음반들이 쿼텟에서 함께 활동했던 아릴드 안데르센과 했던 작업의 연장선이라고 한다면, [Sympathy]는 또 다른 프로젝트인 존 에버슨과 폴 토우슨의 커넥션이 만들어낸 음반이다. 그래서 그 성격은 다소 차이가 있다. 이 음반의 성격은 부담스럽지 않은 퓨전(fusion)성향을 띠고 있고, 때문에 처음 접하는 느낌은 토토(Toto) 혹은 GRP 레이블의 음반을 듣는 듯 고급스럽고 편안하다.


이러한 이야기는 토토의 발라드 넘버를 연상시키는 도입부를 가진 ‘Ad-Man’이나, GRP레이블에서 나온 음반이라고 하더라도 그냥 고개를 끄덕일 만한 ‘Heaven Bound’를 들어보면 확실하다. 리 릿나워(Lee Ritenour)의 [Rit](1981)에 수록되었고 특히 국내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던 ‘No Sympathy’ 역시 새로운 편곡으로 수록되었다. 원곡이 가진 느낌을 크게 벗어나진 않지만 브리지 부분 일렉트릭 기타가 만들어낸 아름다운 멜로디 대신 간주의 색소폰 비중이 높아졌고, 엔딩부분 참았던 ‘끼’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폴 토우슨의 드럼 솔로가 등장하며 조금은 무거운 옷을 입었다. 음반의 타이틀이 왜 ‘Sympathy’가 되었는지 간접적으로 설명하는 트랙이라는 추측도 가능하다. 도나 서머(Donna Summer)의 1982년 셀프 타이틀 음반 수록곡인 ‘(If It) Hurts Just A Little Bit’ 역시 후주에 선 굵은 일렉트릭 기타와 둔탁한 드럼 소리가 서로 주고 받으며, 원곡과 유사한 곡의 진행에 액센트를 새긴다.


앞서 존 에버슨과 폴 토우슨의 커넥션이라고 언급했지만, ‘Next Door Neighbour’는 존 에버슨이 작곡을, 작사는 시젤 엔드레슨(Sidsel Endresen)이 담당했다. 또 ‘Summer Song’의 작사가 역시 시젤 엔드레슨이다. 그녀는 보컬리스트 겸 작사가로 존 에버슨이 결성했던 존 에버슨 그룹과 꾸준한 관계를 유지했던 뮤지션. 이렇게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스튜디오 뮤지션들이 어떻게 웨스트 코스트 사운드의 정갈한 음반을 발표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도 당연하다. 여러 이유들이 있겠지만, 표면적으로 드러난 모습은 어떤 실마리 하나를 제공한다. 바로 음반의 전체적인 조율을 담당했던 프레드 뇌델룬트(Fred Nøddelund)의 존재다. 그는 이 음반에서 트럼펫과 후르겔혼을 연주했고 수록곡 대부분의 어레인지를 담당했으며, ‘Summer Song’에서는 백그라운드 보컬까지 맡았다. 1970년대 초반 노르웨이 몰데 재즈 페스티벌(Molde Jazz Festival)의 상주 작곡가로 활동했던 프레드 뇌델룬트의 활동 이력가운데 이 음반이 발표되었던 1983년을 전후해서 데이빗 포스터(David Foster)와 함께 활동한 흥미로운 기록이 남아있다. 


폴 토우슨은 이 앨범 이후 팝 싱어 토르 엔드레슨(Tor Endresen)과 함께 [Call Me Stranger](1986)를 발표한다. 이 가운데 수록된 ‘Black Rain’은 더욱 팝퓰려한 멜로디와 환상적인 영상의 뮤직 비디오로 무장해 노르웨이 그래미 어워즈에 노미네이트 됐으나, 결국 아하(A-Ha)의 ‘Take On Me’에게 수상의 영예는 뺐기고 만다. 또 같은 곡이 티모시 달튼(Timothy Dalton)이 제임스 본드 역을 맡은 007 시리즈 ‘리빙 데이 라이츠(The Living Day Lights)’의 메인타이틀로 거론되었지만, 근소한 차이로 O.S.T.에 참여할 기회는 놓치게 된다. 이번에도 역시 그의 발목을 잡은 건 아하.


글의 시작 부분에 이야기 했던 것처럼 폴 토우슨이 우리와 정식으로 인연을 맞은 것이 자라섬 국제 재즈 페스티벌을 통해서였기 때문에, 그의 모습은 언제나 원로 재즈 뮤지션의 그것으로 기억될 소지가 많았다. 하지만, 그의 또 다른 모습이라고 할 수 있는 [Sympathy]가 뒤늦게 상륙하게 되며 청자들은 또 한번의 호사스런 탐닉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단순히 숨겨졌던 음원이 소개되는 것이 아니라, 그 내용 역시도 훌륭한 까닭에 만족감은 더욱 크다. 부러질 듯 위태로운 상다리에 올려진 산해진미처럼 부담스럽고 거창한 식단이 아니라, 신선한 재료들로 구성된 샐러드 바처럼 언제나 상큼하고 정갈한 맛을 느낄 수 있는 맞춤형 식단의 음반이다. (20131112)


글 송명하 (파라노이드 편집장)









사실 이래저래 지난 달엔 원고가 몰렸드랬다. 파라노이드 원고는 물론 국내, 해외음반 라이너노트 또 최규성 선배님이 진행하시는 LP복각 DB에 담길 리뷰까지... 아예 의뢰 받을 때 포기한 원고도 있고. 사실 폴 토우슨의 라이너노트도 처음엔 기일을 맞추지 못할 것 같아서 고사하다가... 결국 시한을 좀 연장해서 수락하긴 했는데, 결국 제 시간에 보내지 못하고 늦어버렸다. 이거 버릇되면 곤란한데.. ㅠ 암튼, 오랜만에 가볍고 상큼한 음반 해설을 맡아 좋았고... 음반은 나왔는지 그렇지 않은지 모르겠다. 아직 안나왔어도 머지 않아 나올 것 같다. 이런 스타일의 음악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어렵사리 중고음반샵 뒤지지 말고, 깨끗한 음질의 LP 미니어처 CD를 선택하는 것도 현명한 방법일 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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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도도 2014.01.15 12:45

    코너님,다소 늦었지만 새해 인사드립니다.올 말해에도 많은분들을 들뜨게 만들
    더욱 알찬 대중음악관련 다양한 소식과 글들을 전해주실거라 응원해드립니다.
    다름이 아니라 우연히 어느님 블로그에서 보게된 댓글중에요.
    소찬휘씨 예전 eve라는 밴드말입니다.
    그 음반에서 보컬 백운지씨만 빼고 나머지분들은 음반녹음에 참여조차 안했다고합니다.당시 천호동 국제음악학원 원장인 황선호라는분이 기획한 그룹으로
    기타는 황선호씨가 직접,드럼은 당시 언더에서 활동하던 "에덴"이란 밴드의 멤버분이(그 예전 메탈밴드맞겠죠?-->도도의 예측임),베이스도 국제음악학원에서 bass를 가르치던 분이 녹음을 했답니다.신빙성이 상당히 높아보이는 글같아 보였구요.이것이 사실이라면 정말 황당한 해프닝 아닐런지요.지금껏 국내평론하시는 분들께선 소찬휘가bass 기타를 고등학생시절 연주해서 만들어진 음반으로 평론을 하셨잖아요.어쩐지 그동안 소찬휘씨의 인터뷰들에서 이브밴드시절 얘기를 구체적으로 하는걸 못봤던거 같습니다.사실 소찬휘씨에게 직접 물어보면 금방 밝혀질 스토리일텐데요.언제 기회되신다면 죄송한부탁인데 이브의 앨범녹음과정에 얽힌 황당한 내막들을 코너님께서 속시원히 알려주시면 안될런지요.
    그냥 가볍게 넘길 일은 아닌것 같아서요.위에서 코너님께서 언급하신 최규성님의 얼마전 한국 걸밴드관련 텐아시아 기사글에서도 "이브"시절 소찬휘가 bass기타로 연주에 참여했다느니,또 eve가 2집을 발표했다고도 하시던데,2집이 아니라 1집ver이 자켓이다른 두가지(증기기관차자켓은 방송홍보용,그리고 소찬휘 기타들고 있는 자켓은 정규1집으로 알고있음)가 있다고 아는데 이걸 1집과 2집으로 각각 발매된걸로 기사를 쓰셨는데,정확한 팩트가 중요할듯 합니다.
    바쁘실텐데 제가 또 무례하게 부탁을 드려 죄송합니다.앞으로도 코너님의 다양한알찬 음반평을 기다리겠습니다.

    • BlogIcon coner 2014.01.16 02:02 신고

      고맙습니다. 도도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구요.. 그런데, 사실 이런 내용들은 뮤지션들과 직접 인터뷰를 해도 밝혀지지 않을 경우가 많습니다 ㅠ 제가 2005년에 소찬휘씨랑 인터뷰한 내용 가운데, 이브에 대한 부분 첨부합나다;;;

      비트가 강한 댄스뮤직 가수로 알려진 소찬휘. 하지만 락 매니아들이라면, 그녀의 창법이 다른 가수들과는 달리 락적인 필이 가득차 있다는 것을 눈치챘을 것이다. 소찬휘가 본격적으로 음악을 시작한 것은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고등학교 2학년 시절, 여성들로만 이루어진 하드락 밴드 이브에서 기타를 담당하면서부터이다. 이브는 그다지 길지 않은 활동기간이었지만, 그때까지의 여성 락 밴드들 가운데에서 가장 강력한 락을 구사했던 그룹이었기 때문에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한번씩 락 팬들의 입에 오르곤 한다. 이브의 해산 이후 소찬휘는 몇몇 무명 그룹을 전전하다가 솔로활동을 결심하기에 이른다. 그녀가 솔로활동을 결정한 것은 어쩌면 무척이나 단순한 이유에서였다.
      “이브 활동을 하고 있을 무렵, 매니저를 하시는 분이 락에 있어서는 기타가 최고라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한창 기타에 빠져 있었죠. 그런데 막상 TV 프로그램인 ‘젊음의 행진’에 나가보니 그게 아니었어요. 분명 그룹으로 출연했는데 화면에 나오는 것은 보컬을 맡은 언니뿐이었죠. 그때부터 기타를 치면서 슬슬 보컬 자리를 넘봤죠. 하지만 막상 솔로로 전향할 것을 결심하고 오디션을 보는데, 찢어진 청바지나 헝클어진 머리로는 통과할 수가 없더군요. 그땐 모두 강수지, 하수빈 등과 같이 ‘여자 가수’를 원하던 시기였기 때문이었죠.”
      소찬휘가 댄스가수의 길을 택했던 것은 어쩌면 커다란 목적을 위한 우회적인 접근이라고 할 수 있다. 솔로 음반을 취입하면서도 예전부터 친분이 있었던 김종서 등 락계의 선배들과 접촉하며, 그들의 창법을 스스로 연구하고 자신에 대입시켜 하루 30분 이상씩 거르지 않고 발성 연습을 한 것이 지금의 독특한 그녀만의 발성을 갖게 한 원동력이었다.

  • BlogIcon 도도 2014.01.17 12:03

    감사합니다.지금와서 그런일들을 밝힌다는 것이 만약 사실이라 하더라도
    쉽진않겠죠.관련 당사자들만 알수있을 일일테니까요.그런데 그 댓글을 남기신분의 글을 보는순간 "아,이건 그냥 장난삼아 얘기하는건 아니다"싶은 감이 팍팍오더라구요 ^^그럼 올해에도 코너님께서 한국 대중음악씬을 위해 더 힘써주실거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