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mmy]는 1964년 결성되어 비틀즈(The Beatles)나 롤링 스톤즈(the Rolling Stones)와 동시기 활동을 시작했던 영국을 대표하는 하드록 밴드 후(the Who)가 남긴 최초의 록오페라 음반이다. 물론 최초의 록오페라로 기록되는 음반이지만, 갑작스럽게 하늘에서 뚝 떨어진 작품이 아니라 꾸준하게 활동을 있던 후의 활동의 연장선 아래에 있는 음반이다. 잠시 이 음반 이전 상황에서 [Tommy]로 이어지는 인과관계에 대해 살펴보자. 1967년, 피트 타운젠드(Pete Townshend)와 존 엔트위슬(John Entwistle)은 지금까지 자신들의 역량을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 있는 음반을 구상한다. 그러한 구상 아래 발표된 음반이 정규 3집에 해당하는 [The Who Sell Out](1967)이다. 수록곡 ‘I Can See For Miles’로 유명한 이 앨범은 이전 후가 발표했던 비트 스타일이나 모드 스타일이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지만, 싱글 위주의 전작들과 뭔가 다른 구석이 있다. 전체적으로 일관적인 콘셉트가 있진 않았지만, 마치 비틀즈의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1967)처럼 사회의식을 담은 가사로 화제가 되었고, 브라스 파트의 등장이나 테이프의 역회전을 통한 백워드 마스킹 또 그 길이에 관계없이 복잡한 구성을 갖춘 곡들이 배치되었다. 그 과격한 무대 매너로 인해 ‘라이브 밴드’로 정평 있는 후지만, 음반에서는 아기자기한 스튜디오 후반 작업에도 공을 들여, ‘Real’을 비롯 대부분의 수록곡들이 당시에도 미니 오페라라고 불릴 정도로 혁신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다. 또 어쿠스틱 사운드와 일렉트릭 사운드의 조화, 확실한 보컬 하모니 등 후의 음악적인 지위를 한 단계 끌어 올리는 혁혁한 공훈을 세우며 대작의 탄생을 예고한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 피트는 밴드의 운명을 바꿔 놓을 또 한 명의 인물을 만난다. 인도의 영적 스승이라고 할 수 있는 종교 지도자 메헤르 바바(Meher Baba)다. 비틀즈와의 교류로도 유명한 그의 철학은 오직 노력이었고, 피트에게도 많은 노력이 필요함을 주지시키는 한편 록오페라를 만들 것을 권유한다. 이렇게 1968년 3월부터 피트는 시간만 나면 메헤르 바바와 함께 ‘토미'라는 타이틀의 앨범을 구상한다. 그리고 순회공연 중 호텔방이든 집이든, 탈의실에서든 틈만 나면 떠오른 아이디어를 음악으로 옮기는 작업을 계속한다. 롤링 스톤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피트는 “그(메헤르 바바)는 대단한 집념의 소유자며 무한한 상상력을 지녔다. 우리가 오페라니 라이브 앨범이니 혹은 비즈니스니 하고 의견이 분분하던 때 그가 들어왔다. 그는 한마디로 우리의 의견을 통합시켰다. 우리가 만들어야 할 앨범은 다른 것이 아닌 후의 미래가 담긴 앨범이라고.”라고 밝히기도 했다. 피트 그리고, 밴드의 멤버 모두가 그에 대해 얼마만큼의 신뢰를 가지고 있었는지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일화다. 당시 나이 70을 넘긴 메헤르 바바는 어쩌면 자신의 마지막 인생 여정일지도 모를 작업을 후의 멤버들과 함께 진행했다(실제로 메헤르 바바는 [Tommy]가 발매된 해인 1969년 세상을 떠났다). 멤버들은 그에 대해 ‘강제적이지 않으면서도 체계를 잡아가는 통솔력’이라 얘기하기도 했다. 6월부터 3개월 동안 이어진 미국 순회공연을 마친 뒤 후는 본격적인 음반 녹음에 들어간다. 그리고 연말에 이어진 많은 공연들에 출연을 자제하는 대신 새로운 음반을 위해 내실을 다진다. 미국 활동이 이어지는 동안 전작들의 영국 판매실적은 저조했지만, 메헤르 바바는 후에게 낙심하지 말고 더욱 노력할 것을 종용한 이유 역시도 무시할 수 없었다.
1969년은 로저 달트리(Roger Daltrey)의 교통사고와 함께 시작된다. 가벼운 사고였지만, 후의 스케줄은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었다. “[Tommy] 제작에 본의 아니게 빠지게 되어 다른 멤버들에게도 몹시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특히 피트는 [Tommy]의 제작에 심혈을 기울였다. 매일 데모 테이프를 가져와 우리와 의견을 나눴다. 각 싱글의 트랙 순서를 잡는 데만도 몇 주씩 걸리곤 했다.”는 로저의 이야기나 “피트는 [Tommy]에 인생을 건 사람 같았다. 이미 2년 전부터 제작에 손을 댄 셈이다. 송 라이팅에서도 그렇게 심혈을 기울인 때는 없었다. 스튜디오에 들어가면 그는 언제나 머리를 싸매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에게 아이디어를 물어봤다. 결국 [Tommy]의 제작 과정을 통해 우린 피트를 더욱 신임하게 됐고, 팀워크도 어느 때보다 좋아지고 있었다.”는 키쓰 문(Keith Moon)의 이야기는 [Tommy]라는 작품이 피트에게, 아니 후에게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음반이었는지를 부연한다. 음반 발매 전인 3월, 첫 싱글 ‘Pinball Wizard’가 발매된다. 이 곡은 피트와 프로듀서 키트 램버트(Kit Lambert)의 친구이자 핀볼 광이었던 저널리스트 닉 콘(Nik Cohn)을 위해 작곡된 곡으로, ‘I Can See For Miles’ 이후 18개월 만에 미국차트 19위와 영국차트 4위에 오르는 성공을 거두며 피트에게 ‘세계 제1의 리듬 기타리스트’라는 닉네임을 안겨주고, 이어질 앨범에 대한 멤버들의 기대치 역시 끌어올리게 된다. 그리고 3월과 4월, 후는 모든 스케줄을 정리하고 음반의 마무리 작업에 돌입했고, 마침내 5월 23일 두 장의 LP와 피트와 키트의 동창인 마이크 맥키너니(Mike McInnerney)가 디자인한 트리플 게이트폴드 자켓, 그리고 7페이지의 가사와 그림을 포함한 12페이지의 부클릿으로 구성된 호화판 음반이 세상에 선보이게 된다.
“촛불을 켜고 ‘토미’를 들어보렴. 네 미래를 볼 수 있을 거야.”
카메론 크로우(Cameron Crowe) 감독의 ‘올모스트 페이모스(Almost Famous)’(2000)에서 윌리엄 밀러의 누나 아니타 밀러가 집을 떠나며 그에게 물려준 음반들 사이 쪽지에 남긴 메모다. 그리고 윌리엄 밀러는 15살이 되어 레스터 뱅스(Lester Bangs)를 만난다. 미래를 볼 수 있을 거라는 이야기. 메헤르 바바가 피트 타운센드에게 했던 후의 미래가 담긴 앨범을 만들라는 이야기와 일맥상통한다. 과연 [Tommy]에는 어떤 내용이 수록되었기에 자신의 동생에게 미래를 볼 수 있을 거라고 누나는 얘기한 걸까. 잠시 음반의 내용을 살펴보자.
영국 장군 워커(Walker)는 전쟁에 참전 중 행방불명되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Overture’). 미망인 워커부인은 그 뒤 그들의 아들을 낳았고, 그가 바로 토미다(‘I’ts A Boy’). 몇 년 뒤 워커 장군은 집으로 돌아오게 되고, 자신의 아내가 새로운 연인이 생겼음을 알게 된다. 그 새로운 연인은 워커 장군을 침입자로 오해하고 그를 공격했고, 언쟁 끝에 워커 장군이 그를 살해하게 된다(‘1921’). 토미는 이 장면을 거울을 통해 목격하게 되지만, 그의 부모는 그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토미에게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한 것으로 하라고 얘기한다. 결국 반 미치광이 상태로 기억을 봉인한 토미는 귀머거리에 벙어리, 봉사가 되고 만다. 몇 년이 지나고 외부 세계와 정신적으로 차단한 그는 음악을 통해 내면적으로 놀라운 시각을 가지게 된다(‘Amazing Journey’).
그의 부모는 외형적으로 보이는 토미의 격리된 상황에 대해 그가 종교를 가지지 못하게 될 것을 걱정한다(‘Christmas’). 그 가운데 삼촌 어니(Ernie)와 조카 케빈(Kevin, ‘Cousin Kevin’)은 토미를 계속해서 괴롭힌다(‘Do You Think It’s Alright?’, ‘Fiddle About’. 주변의 전문가들을 찾아 여러가지 방법으로 토미를 원상태로 돌아오게 하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하지만 (‘Hawker’, ‘Eyesight To The Blind’, ‘The Acid Queen’, ‘Underture’) 토미는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다. 그 가운데 토미는 핀볼 게임에 뛰어난 재능이 있음을 확인하게 되고, 그로 인해 대중의 관심 가운데 놓이게 된다(‘Pinball Wizard’).
결국 워커 부부는 토미의 불구가 육체적이 아니고 정신적인 문제임을 확신한 명망 높은 의사(‘There’s A Doctor’)를 찾아간다. 워커 부인은 거울로 가라(‘Go To The Mirror’)는 의사의 이야기대로 토미가 보고 있던 거울을 깨뜨리고, 토미는 잃어버렸던 시력과 청력 그리고 목소리를 되찾게 된다(‘Sensation’, ‘I’m Free’). 이러한 기적의 치료(‘Miracle Cure’)는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다. 순식간에 토미를 따르는 추종자들이 생겼고, 그를 괴롭혔던 삼촌 어니는 그 가운데 쾌락주의의 인생을 약속한 제자들을 대상으로 값비싼 토미의 홀리데이 캠프(‘Tommy’s Holiday Camp’)를 연다. 하지만 토미는 그의 청중을 무뚝뚝하게 대하며 그가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귀와 눈, 입을 막고 핀볼 게임을 하는 것을 요구한다. 그는 그가 회복된 것보다는 그가 불구였던 시절 봐왔던 것들을 나누는 데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We’re Not Gonna Take It’). 결국 그의 추종자들은 캠프를 떠나게 되고, 토미는 다시금 그의 환상 속으로 그를 가두게 된다(‘See Me Feel Me’).
영화 속에서 누나가 동생에게 했던 이야기는 어쩌면 내면 세계로의 놀라운 여행을 의미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후가 [Tommy]를 발표하면서 세웠던 목표는 앞서 언급했던 비틀즈의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였다. 비록 음반 발매 후 평론가들의 반응은 극단적으로 양극화 되었지만, 어쨌거나 음반의 발매와 함께 NME의 커버스토리를 장식할 정도로 그 파급력은 컸다. 말 그대로 피트 타운젠드의, 아니 후의 역량이 총 집결된 ‘마스터피스'라고 하기에 충분한 음반인 까닭이다.
가사가 담고 있는 내용 이외에 음악적 측면에서 접근해도 밴드의 영민한 센스를 읽을 수 있다. 키쓰 문(D)과 존 엔트위슬(B), 또 피트 타운센드(G)라는 세 명으로 이루어진 악기파트. 물론 멤버 개개인의 능력이야 의심할 필요 없는 최고의 뮤지션들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 세 명만으로 애초에 계획했던 장대한 콘셉트를 만들기에 많은 무리가 있었다. 특히 피트의 기타는 ‘세계 제1의 리듬 기타리스트'라는 닉네임에서도 알 수 있듯 화려한 플레이를 자랑하는 뮤지션들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때문에 [Tommy]에는 기본적으로 피트의 어쿠스틱 기타를 뿌리로 밴드의 기본 편성 외에 관악파트를 비롯 다양한 타악군 등 많은 악기를 배치하고 다중 코러스로 그 의도를 더욱 구체화시켰다. 이는 전작인 [The Who Sell Out]을 통해 밴드가 스스로 개척한 방법론이었으며, 그 목표로 세웠던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를 벤치마크하며 터득한 또 다른 지혜였다. 록오페라라고는 하지만 애초에 시각적인 측면을 고려하지 않고(원래 영상을 목적으로 한 음반은 아니었지만 [Tommy]는 결국 1975년, 켄 러셀(Ken Russell)감독에 의해 스크린으로 옮겨졌고, 이후에는 브로드웨이 뮤지컬로 제작되었다. ‘토미’라는 타이틀의 음반이 여럿 존재하는 건 바로 그 때문이다.), 음악으로만 이야기를 전개하는 것을 염두에 뒀기 때문에 ‘하드록’이라는 한정적인 틀에 갇히지 않고, 팝/록에서 사이키델릭, 하드록에서 모던 재즈까지 폭 넓은 스펙트럼을 음반에 담았다.
[Tommy] 발매 이후 후는 2개월간의 전미 투어에 들어가 음반의 콘셉트를 실연으로 펼쳐 보였다. 하지만, 당시로 되돌아갈 수 없는 상황에서 후가 가지고 있던 일종의 콤플렉스를 타계하기 위해 스튜디오 작업으로 표현했던 시도들이 공연을 통해 어떻게 구현되었을지 의문이 든다. 울론 우드스탁 페스티벌을 담은 영화를 통해 대표곡인 ‘See Me, Feel Me’를 접하기는 했지만, 그 역시도 단편적인 음반의 한 파트였을 뿐이었을 터. 이번에 발매된 딜럭스 에디션은 그러한 의문을 풀기에 더 없이 좋은 자료다. 오래도록 묻혔던 당시의 미공개 라이브 음반이 함께 수록된 까닭이다. 이번 딜럭스 에디션에 수록된 또 한 장의 음반인 ‘Live Bootleg’에는 1969년 캐나다의 오타와에 있는 캐피톨 극장에서 1969년 10월 15일 펼쳐진 공연실황 18곡이 담겼다. 그리고, 당시에 미처 테이프에 담기지 못했던 세 곡의 트랙(‘I’m Free’, ‘Tommy’s Holiday Camp’, ‘We’re Not Gonna Take It’) 역시 비슷한 시기에 행해졌던 공연 가운데 추려져 스튜디오 음반과 거의 흡사한 진행으로 감상할 수 있다. ‘부틀랙’이라는 명칭이 붙긴 했지만, 정식으로 녹음된 음원인 까닭에 깔끔한 음질로 떠나는 놀라운 여행(Amazing Journey)이 아닐 수 없다. 앞서 스튜디오 음반에서 밴드의 기본 편성 외에 여러 시도들을 벌였다고 언급했지만, 이 라이브 앨범은 이러한 시도들을 무대에서 네 명의 멤버로만 표현하기 위해 또 다른 접근을 택했다. 정교한 스튜디오 음반과 달리 에너지가 넘치는 본연의 하드록 밴드 후로 거듭난 것이다. 특히 마지막 트랙 ‘See Me, Feel Me / Listening To You’을 통해 전해지는 현장의 뜨거운 에너지는 압권이다. 대부분의 트랙이 피트 타운젠드의 아이디어를 표출한 것이었지만, [Tommy]는 분명 멤버 네 명의 합으로 만들어진 걸작임이 증명되는 순간이다.
이제 다시 촛불을 끌 시간이다. 어린 시절 윌리엄 밀러처럼 놀란 눈이 동그랗게 떠지진 않겠지만, 거칠 것 없고 패기만만하던 한 밴드의 모습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 45년도 더 지난 그 당시 자신이 가진 콤플렉스를 이려내고 만들어 낸 ‘마스터피스’는 이제 비슷한 시기에 녹음된 라이브 음원이 추가됨으로 더욱 진솔하게 우리의 곁에 함께 하게 되었다. 비록 그 기록에 함께 했던 두 명의 멤버는 이미 이 세상에 없지만. (20131115)
글 송명하 (파라노이드 편집장)
역시 파라노이드 마감이 언제나 들쭉날쭉이라, 마감과 겹쳐 고생했던 라이너노트. 원래 CD로 가지고 있지 않고, LP로 가지고 있던 음반이라서... 오랜만에 바깥구경 시켜줬다. 라이너노트를 쓰기 위해 오랜만에 이 음반 전후 음반들까지 감상. 다시금 대단한 밴드임을 확인해준 음반. 물론 두 장의 음반을 처음부터 끝까지 듣는 데는 느긋한 마음과 흔들리지 않는 지구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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