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바네센스(Evanescence)가 메이저 음반사와 계약을 맺고 공식적인 첫 번째 앨범 [Fallen](2003)을 발표한 것도 벌써 10년이 넘었다. 전 세계에 1,70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고, 이듬해 48회 그래미 어워즈에서 5개 부문 노미네이트된 가운데 베스트 하드락 퍼포먼스 부문과 베스트 뉴 아티스트 부문을 안겨주는 기폭제가 되었던 앨범. 사실 이 앨범이 나올 무렵, 에바네센스의 음악에 대해선 매체들 마다 의견이 분분했다. 발매 첫 주에 14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며 빌보드 앨범차트 7위에 안착한 이들은 다루는 기사들에 따라 고딕메틀, 뉴메틀, 클래시컬메틀, 얼터너티브메틀에서 CCM메틀이 되었다. 어찌 본다면 에바네센스의 음악에 대해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 전 너무도 갑작스럽게 인기몰이를 한 이유도 있을 것이며, 한 장의 음반을 통해 보여준 음악적 스펙트럼이 넓었던 것 역시 그 이유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앨범을 들어보면 전반적인 기타 리프나 음악적인 스타일은 뉴메틀이었고, 에이미 리(Amy Lee)의 검은 머리와 드레스는 다분히 고쓰락(Goth-Rock)을 연상시켰으며, 가사에는 CCM적인 요소도 많았으니 이렇게 분분한 의견들이 나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을지도 모른다. 또 클래시컬한 요소를 부분 부분 차용한 영민한 센스 역시 마찬가지였고. 어쨌든 지금은 뉴메틀로 이들을 분류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또 다시 음반을 꺼내 들어봐도 이렇게 다양한 음악들이 공존하는 독특한 음악성은 여전히 신선하고 독특하다. 이는 무엇보다 밴드의 두 주축 멤버인 에이미 리와 벤 무디(Ben Moody)의 조화가 완벽한 시너지 효과로 작용하며 만들어진 새로운 브랜드의 음악이었기 때문이다.
에바네센스는 보컬과 피아노를 맡은 에이미 리와 기타리스트 벤 무디에 의해 결성된 밴드다. 이 두 명의 멤버가 처음 만난 건 1994년, 각각 13살과 14살 때였다. 당시 이들의 거주지였던 아칸사스의 리틀록에서 열린 청소년 캠프에서 우연히 벤이 에이미가 미트 로프의 ‘I'd Do Anything For Love (But I Won't Do That)’를 피아노로 연주하는 것을 보고, 서로 음악이라는 공통 관심사를 두고 얘기를 시작한 것이 밴드 결성의 모태가 된 것이다. 이렇게 음악적 교류를 하던 가운데 자연스레 듀오 체제로 활동하게 된 이들은 만난 지 채 몇 달이 되지 않아 아칸사스의 서점이나 커피숍에서 어쿠스틱 공연을 펼치는 한편 창작곡으로 1998년과 1999년 [Evanescence]와 [Sound Asleep]이라는 타이틀의 EP를 만들어 공연장에서 판매하기도 했다. 밴드명인 ‘Evanescence’는 ‘사라져간다’는 의미를 가진 단어로, 신비하고 흔하지 않은 이름을 찾다가 사전을 뒤져 발견한 이름. 그리고 2000년, [Origin]이라는 CD가 만들어졌다. 벤의 아파트에서 에이미와 벤이 모든 곡을 만들고 연주와 녹음까지 했던 데모 음반으로, 2,500장 가량 한정 생산된 이 음반은 정식 데뷔앨범 [Fallen]의 차트 강타와 함께 이베이에서 400달러 이상에 거래될 정도로 몸값이 부풀려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에바네센스의 음악에 매료된 이들에게 [Fallen]에 수록된 ‘Whisper’, ‘Imaginary’, ‘My Immortal’ 그리고 ‘Where Will You Go’의 데모버전이 담겨있다는 유혹은 뿌리치기 힘든 것이었을 터. 결국 벤과 에이미는 한 라디오 프로그램을 통해 [Origin]은 ‘자켓이 있는 데모 음원일 뿐’이라며 비싼 음반을 사지 말고 인터넷을 통해 다운로드 해서 듣는 것을 권유하기도 했다.
2001년 에바네센스는 그들의 진가를 알아차린 와인드업(Wind-up) 레코드와 계약했고, 밴드에게는 LA에 숙소와 리허설 공간이 제공됐다. 체육관도 등록하고 클래식 피아노를 전공했던 에이미는 연기와 보컬 트레이닝을 받았다. 그리고 어글리 키드 조(Ugly Kid Joe)의 기타리스트 였으며 프로듀서로 활동하던 데이브 포트먼(Dave Fortman)와 함께 지난 8년간의 작업을 정리해 정식 데뷔앨범의 구상에 들어가게 된다. 2002년 8월에서 12월까지 진행된 레코딩 밴드의 연주와 함께 실제 코러스와 현악 연주가 삽입되었다. 벤 무디는 이후 인터뷰를 통해 일렉트로닉 음악이나 디지털 작업을 좋아하긴 하지만 첫 번째 음반은 실제 악기를 쓰고 싶었다고 밝힌 바 있다. 음반에 참여하기도 했지만, 벤과 에이미의 친구였던 존 르콤프트(John LeCompt), 록키 그레이(Rocky Gray) 그리고 윌 보이드(Will Boyd)를 정식 멤버로 영입한 것은 녹음을 마친 2003년 초였다. 트웰브 스톤즈(12 Stones)의 폴 맥코이(Paul McCoy)가 게스트 보컬로 참여한 첫 번째 싱글 ‘Bring Me To Life’는 에바네센스의 음반이 공개되기 한 달여 전에 개봉된 ‘데어데블(Deardevil)’에 ‘My Immortal’과 함께 수록된 곡이다. 음반의 OST에 두 곡의 트랙을 수록한 뮤지션이 에바네센스밖에 없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당시 와인드업이라는 레이블이 이 신인 밴드에 대해서 얼마나 큰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었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가능성은 현실로 이어져 영국차트 1위, 미국 빌보드 차트 5위 등 15개국 이상에서 차트 10위권에 오르며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그리고 그 뒤를 ‘Going Under’, ‘My Immortal’과 ‘Everybody's Fool’이 이었다. 결과적으로 음반에 수록된 1번에서 4번 트랙까지가 모두 싱글히트를 기록했다는 얘기다. 흥미로운 점은 또 하나 있다.
핫 100이라는 통합적인 싱글차트 외에 다른 차트를 살펴보면 ‘Bring Me To Life’는 빌보드 얼터너티브 차트에서 넘버원에 올랐고, ‘My Immortal’는 빌보드 어덜트 차트 넘버원을 밟았다. 이 차트 성적이 말해주는 것은 이들의 음악을 수용하는 층이 넓다는 것이다. 음반이 발매될 당시 스무살을 갓 넘은 이들의 나이, 그리고 에바네센스가 추구하는 메틀이라는 장르의 한계를 극복하고 두터운 팬층을 만들어낸 것이다. 또 에이미 리의 고쓰 프린세스(Goth Princess)를 연상시키는 검거나 흰 드레스와 짙은 스모키 화장으로 만들어낸 이미지는 말 그대로 그녀를 순식간에 메틀계의 여성 아이콘으로 등극시켰다. 물론 에바네센스의 [Fallen]이 발표되었던 2003년이라는 시기에 여성을 프론트에 내세운 메틀 밴드들이 없던 건 아니다. 하지만 언더그라운드의 한정된 집단에만 어필했던 태생적 한계를 극복했던 건 에이미 리가 유일했다. 한 장의 정식 음반밖에는 발표하지 못한 이들이지만 에바네센스를 카피하는 수많은 아마추어 밴드들이 생겨났다. 에바네센스의 데뷔앨범 이후, 다른 우먼 프론티드 밴드들에 대한 얘기를 할 때는 빠지지 않고 에이미의 이름이 거론되었다. 서정미와 공격성, 빛과 어둠, 심오함과 편안함, 그리고 락과 클래식이라는 상반된 구성요소들이 황금비로 엮인 밴드의 음악성이 이러한 에이미의 이미지 메이킹과 맞물린 결과일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빼 놓을 수 없는 부분은 바로 앞서 언급한 벤 무디와 에이미 리의 시너지 효과다.
물론 벤 무디는 음반이 발매될 당시 했던 인터뷰를 통해, 8년이라는 시간동인 실제로 에이미와 한 방에서 곡 작업을 함께 한 건 두세 번 밖에는 되지 않는다고 밝히기도 했지만, 그 8년이라는 기간 동안 쌓아왔던 신뢰와 교감이라는 부분은 한 장의 음반 가운데 그대로 녹아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러한 시너지 효과는 그렇게 오래 가지 못했다. 에이미와 함께 밴드의 모든 것을 담당했던 벤이 2003년 순회공연 중 돌연 탈퇴해버린 것이다. 또 벤의 뒤를 이어 나머지 멤버들도 하나씩 둘씩 밴드를 등졌다. 결국 에이미 중심 체제로 돌아가게 된 에바네센스는 [The Open Door](2006)를 차트상에 올려놓았지만, 데뷔앨범 만큼의 파괴력을 보여주진 못했다. 에이미 역시 훌륭한 송라이터였지만 벤이 빠진 에바네센스는 무언가 허전한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고, 에이미 스스로가 데뷔앨범의 스타일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결과를 담았던 이유도 있을 것이다. 오히려 벤 무디가 밴드를 탈퇴한 뒤 아나스타샤(Anastacia)와 함께 발표했던 ‘판타스틱 포(Fantastic 4)’의 ‘Everything Burns’를 팬들이 기다렸다는 것도 이러한 추측에 힘을 더해준다.
개인적으로 재발매와 함께 정말 오랜만에 이 음반을 다시 꺼내 들었다. 음악적으로 볼 때 앞서 새로운 브랜드의 탄생이라고 했지만, 이들이 만든 브랜드는 다시 트렌드가 되어서 자신의 사운드 메이킹에 응용한 밴드들이 속속 뒤를 이었다. 또 상업적으로 볼 때도 신진 메틀 밴드의 데뷔음반 가운데는 유례없이 글의 앞머리에 언급했던 판매고에 힘입어 2000년에서 2009년까지를 결산하는 디케이드 엔드 차트에서 팝과 락을 통틀어 19위에 랭크되었다. 말 그대로 음악성과 상업성을 겸비한, 2000년대 초반을 대표하는 메틀음반이다. (20140108)
글 송명하 (파라노이드 편집장)
예전에 EMI를 통해 발매되었던 음반들, 이제 그 배급권이 유니버설로 넘어가면서 당시를 대표하는 음반들이 유니버설 뮤직을 통해 속속 재발매되고 있다. 그 가운데 맡았던 에바네센스의 메이저 데뷔앨범. 음반이 발매될 당시에 MD에 녹음해서 열심히 들었던 기억때문에 라이너노트를 쓰는 내내 추억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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