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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ER'S MUSIC LIFE/EXTERNAL CONTRIBUTIONS

그들의 소리 그녀가 되다. 강허달림 [Beyond the Blues]



한 장의 음반을 오롯이 리메이크로 꾸미는 작업은 종으로 흐르는 역사를, 음반을 녹음하는 시점에 횡적으로 다시 정리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한 번의 해프닝으로 끝나게 될지, 그렇지 않고 원곡들까지 재조명 받는 우수한 결과가 되느냐는 선곡과 정리 과정에 의해 결정될 문제일 것이다. 단순히 노래 잘 하는 가수가 멋진 곡을 다시 불렀다는 것만으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란 얘기다. 앞서 얘기한 우수한 결과물 가운데는 김광석의 [다시 부르기], 윤도현의 [한국락 다시 부르기], 혹은 이은미의 [Nostalgia]와 같은 음반들이 있겠다. 그리고 그 음반들에는 각각 조동익, 유병열 그리고 오승은이라는 든든한 조력자들이 있었다.


강허달림이 리메이크 음반을 내 놓겠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참 멋진 음반이 나오겠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자칫 잘못하면 소위 ‘7080’ 스타일의 음반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들었다. 후자가 잘못되었다는 얘기가 아니라 그렇게 될 경우 음악보다는 추억의 잔재에 의존하는 단편만을 기억으로 남길지 모를 거라는 걱정이었다. 그건 강허달림의 음악에 충성도가 높은 팬들의 연령층이나 라이프스타일을 볼 때 어쩌면 당연한 우려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니터를 위해 받은 음원들은 그런 걱정들을 기우로 만들었다.


강허달림의 [Beyond the Blues]는 기본적으로 1970년대 초의 송창식부터 1990년대와 2000년대의 김두수와 윤선애까지 메이저에서 언더그라운드에 이르는 국내 포크의 역사를 관통한다. 그리고 국내 블루스가 포크와 뗄 수 없는 상관관계를 가지게 만들었던 신촌 블루스의 이정선, 엄인호, 윤명운 그리고 토속적인 블루스 기타리스트 고 채수영이 이 한 장의 음반에서 공존한다. 그런가하면 다소 전체적인 정서에서는 비켜있는 숙자매와 최백호까지 횡적으로 일직선상에 배열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질감 없이 한 번의 흐름으로 이어지는 건 흉내 낼 수 없는 음색을 가진 강허달림의 목소리와 든든한 조력자 서영도의 능력일 것이다.


[Beyond the Blues]라는 음반의 타이틀. 블루스를 넘어선(beyond)이지만 어쩌면 그 아래(beneath) 혹은 다른 음악과 블루스 사이(between)가 될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을 했다. 지난 두 번째 정규 음반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도 언급한 부분이지만, 분명한 건 그 어느 제목을 붙이든 강허달림의 음악은 블루스로 한정할 수 없다는 점이다. 아니, 이 음반엔 어쩌면 블루스가 없을 수도 있다. 블루스의 위, 아래 혹은 평행선상의 또 다른 음악이 하나의 튠으로 어우러진다. 포크, 월드뮤직, 레게, 소울에서 트로트까지. 이렇듯 여러 장르들은 악기 소리들이 비교적 현대적으로 매끈하게 뽑혔음에도 불구하고 때로 초기 ‘마카오 신사’들이 다녔을 법한 음악 살롱에서 싸구려 선술집, 근사한 재즈바 혹은 통금이 있던 시절 나이트클럽으로 청자들을 공간이동 시킨다. 원곡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멜로디를 부르고 있지만, 개성은 확실하게 살렸다. 말 그대로 그들의 소리가 그녀가 되었다.


사실 지난 음반 추천사를 쓰며 ‘강허달림 술친구’라고 썼지만, 그 뒤로 지금까지 강허달림과 술 한 잔 제대로 할 시간이 없었던 것 같다. 그게 미안했는지 강허달림은 이렇게 오랜만에 멋진 술상을 가지고 찾아왔다. 술이 있으면 더 좋겠지만, 술이 없더라도 그저 음악만으로도 거나하게 취할 것만 같다. 앞서 정서나 튠을 언급했지만, 그건 바로 회한이나 한숨과 직접적으로 연관된다. 왜, 그렇지 않은가. 술 맛 떨어진다고 타박하곤 하지만, 언제나 술자리에선 빠지지 않는, 그래서 또 술자리를 찾게 되는 단어들 말이다. 어쩌면 그 이상으로 다시 찾게 만드는, 음악 들으며 생각에 몰두했다가 어느 새 다음 트랙으로 넘어가버려 다시 리와인드 버튼을 누르게 만드는 그런 음반이다.


글 송명하 (강허달림 술친구)



2012/01/05 - [CONER'S MUSIC LIFE/EXTERNAL CONTRIBUTIONS] - 강허달림 2집 [넌 나의 바다] 추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