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고 스타(Ringo Starr), 본명은 리처드 스타키 주니어(Richard Starkey Jr.). 스타키라는 성에서 알 수 있듯, 후(The Who)과 오아시스(Oasis)의 드러머로 활동했던 잭 스타키(Zak Starkey)의 아버지다. 물론, 이러한 이야기들보다 링코 스타를 이야기할 땐 그냥 비틀스(The Beatles)의 드러머라는 표현이면 끝난다. 영화 ‘러브 액추얼리(Love Actually)’ 가운데 꼬마 샘(Sam)이 조아나(Joanna)의 사랑을 얻기 위해 방에 틀어박혀 드럼 연습을 할 때, 그의 방 앞에 걸린 ‘Ringo Rules’라는 분필 글씨를 기억하는지. 초창기 신중현의 밴드였던 퀘스천스(Questions)의 라이브 음반에서 사회자는 드러머 김대환을 “드럼을 맡고 있는 링고 스타 김대환씨!”라고 소개한다. 이렇게 때로 비틀스의 드러머라는 그의 이력은 링고 스타라는 이름을 ‘드러머’란 단어와 동격의 대명사로 만들었다.
링고 스타는 1940년 7월 7일, 해산달보다 거의 한 달 늦게 태어났다. 난산이어서 죽을 고비를 넘기고 태어난 까닭인지 어려서는 두 차례의 힘든 고비를 넘기는 등 건강이 무척 안 좋았다. 건강 때문에 공부를 하지 못해 학창시절 언제나 다른 학생들보다 성적이 뒤처졌다. 그 무렵 비틀스의 나머지 멤버들이 그러했듯, 링고 역시 스키플(skiffle) 음악에 푹 빠져들었고 용접공으로 함께 일 했던 기타리스트 에디 마일즈(Eddie Miles)와 첫 번째 밴드 에디 클레이턴 스키플 그룹(The Eddie Clayton Skiffle Group)을 조직했다. 드러머라고 하긴 힘들지만 어쨌든 링고는 그 밴드에서 열쇠를 흔들거나, 의자나 상자를 두드려 리듬을 넣으며 로컬 씬에서 몇 차례의 공연을 펼쳤다. 그리고 1957년 크리스마스이브, 새아버지가 사 준 중고 드럼세트는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1959년 링고 스타는 로리 스톰 앤 허리케인스(Rory Storm and the Hurricanes)에 가입한다. 당시 가입 조건은 ‘드럼 세트를 가진 드러머일 것’이었다. 로리 스톰 앤 허리케인스는 화려한 의상과 무대 매너로 순식간에 리버풀을 대표하는 밴드로 떠올랐다. 무대에서 팔찌나 반지 같은 링(ring)을 많이 착용한 것에 착안한 링고라는 그의 이름이 붙여진 건 바로 이 때다. 그리고 ‘스타 타임(Starr Time)’을 통해 솔로 타임을 가질 만큼 드러머 링고 스타 역시 확실한 자신의 자리를 잡는다. 1960년 결성됐지만, 아직 온전한 비틀스가 되기 전의 비틀스보다 링고가 먼저 그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이다. 링고 스타와 비틀스가 만난 건 1960년 로리 스톰 앤 허리케인스가 함부르크에서 공연을 할 무렵이었다. 이미 함부르크로 진출해 명성을 얻고 있던 허리케인스에 비해 뒤늦게 건너 온 비틀스의 출연료가 쌌던 건 당연했다.
링고 스타와 나머지 비틀스 멤버들(존 레논, 폴 매카트니, 조지 해리슨)은 당시 허리케인스의 보컬리스트였던 루 월터스(Lu Walters)의 싱글 녹음에서 처음으로 함께 연주했다. 그리고 존 레논(John Lennon)은 1962년 8월 14일 링고 스타에게 밴드 가입을 요청했고 링고가 승락했다. 이틀 뒤엔 비틀스의 매니저 브라이언 엡스타인(Brian Epstein)이 “밴드는 네가 나가고 링고가 가입하길 원하고 있고, 프로듀서 조지 마틴(George Martin)과 밴드 멤버들은 네가 밴드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이유를 들어 당시 드러머였던 피트 베스트(Pete Best)를 해고했다. 물론 이러한 이유들보다 비틀스 멤버들과 피트 베스트의 사이 마찰이 잦았다는 이유가 더욱 컸겠지만, 어쨌든 다시 이틀 뒤인 8월 18일 링고 스타가 비틀스에 정식으로 가입하며 우리가 알고 있는 비틀스의 라인업이 갖춰지게 된다. 말 그대로 최고(best)의 자리에 스타(star)가 들어간 것이다.
밴드에 가장 마지막에 참여한 까닭에 언제나 막내로 보였지만, 링고 스타는 비틀스의 멤버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았던 존 레논과 동갑이었고 태어난 건 오히려 그보다 좀 더 빨랐다. 개성있는 다른 멤버들에 비해 음악적으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던 까닭에 비틀스에서 그의 위치는 가장 작아 보였고, 실제로 팬들은 물론 밴드 멤버들에게까지 애정 어린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존 레논은 누군가 링고가 세계 최고의 드럼 연주자인지 물었을 때 “비틀스 내에서도 최고의 드럼 연주자라 할 수 없다.”라고 했지만, 결국 “링고가 없었다면 비틀스는 결코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라는 이야기를 남긴 바 있다. 링고 스타는 드럼 연주 외에도 비틀스 내에서 따뜻하고 원만한 인간성으로 어디로 튈지 모르는 다른 멤버들 사이에서 균형을 잡았다. 앞서 언급한 존 레논의 언급은 바로 이러한 그의 성격에 관한 이야기일 것이다. 어쩌면 그 성격은 그가 비틀스 시절 직접 불렀던 ‘With a Little Help from My Friend’나 ‘Yellow Submarine’ 혹은 미국시장을 겨냥해 커버했던 초창기 버전인 ‘Act Naturally’에서 들을 수 있는 음색과도 닮았다. ‘Don't Pass Me By’나 ‘Octopus's Garden’처럼 비틀스에서 링고 스타가 직접 작곡했던 곡도 있긴 하지만 이 역시도 공동작곡으로 이름을 올린 ‘What Goes On’이나 ‘Flying’처럼 다른 멤버들의 많은 도움을 받았으리라는 추측을 하는 사람들도 많다. 어쩌면 음악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비틀스에서 그의 역할은 철저하게 드럼파트에 국한 되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드럼 연주에 있어서 링고 스타는 스스로 밝힌 것처럼 테크니션이 아니었다. 하지만 최대한 밴드에 어울리는 연주로 초창기 록 드럼의 기본을 개척했다. 그리고 사이사이 특유의 번뜩이는 유머감과 재치로 예상치 못한 패턴을 늘어놓기도 했다. 이는 단순히 왼손잡이인 그가 오른손 잡이용 드럼세트를 사용했기 때문에 그런 것만은 아니고, 타고난 그의 성품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비틀스는 일종의 맬러프라피즘(malapropism: 우습게 잘못 쓰인 말)이라고 할 수 있는 ‘링고이즘(Ringoism)’이란 단어를 만들어냈다. ‘Hard Day's Night’, ‘Eight Days a Week’, ‘Tomorrow Never Knows’와 같은 비틀스의 대표곡은 엄밀히 말해서 문법적으로 어긋난 제목들이다. 바로 이 제목들을 만든 멤버가 바로 링고 스타다. 이렇게 문법이 맞지는 않지만 특유의 재치로 만들어 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드는 링고의 또 다른 재능을 특히 존 레논이 높이 샀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낙천적이고 온화한 성격으로 언제나 비틀스를 화합으로 감싸던 링고 스타도 1968년 경 밴드에서 비공식적으로 이탈했다가 다시 합류할 정도로 비틀스의 상태는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았다. 그런 상황 아래서 비틀스가 해산한 1970년 링고 스타는 두 장의 앨범을 발표하며 조지 해리슨(George Harrison)과 존 레논에 이어 멤버 가운데 세 번째로 솔로로 독립했다. 두 장의 앨범은 각각 스탠더드 팝 성향과 컨트리 성향의 [Sentimental Journey]와 [Beaucoups of Blues]다.
솔로 활동 가운데 링고의 진가가 가장 잘 드러난 음반은 세 번째 앨범인 [Ringo](1973)다. 물론 이 앨범은 빌보드 싱글차트 넘버원을 차지한 ‘Photograph’, ‘You're Sixteen’ 등 지금까지도 링고 스타의 대표곡을 군림하는 넘버들을 담고 있으며, 앨범차트에서도 2위를 기록할 만큼 숫자상으로도 그가 발표한 최고의 앨범이란 걸 증명한다. 하지만, 앞서 그의 진가라고 표현한 것은 비틀스에서 화합을 담당했던 그의 성격이 다시금 비틀스 멤버들을 한 자리에 모이게 만든 앨범이란 데 있다. 잠시 앨범 재킷을 보자. 관객석에 만화로 그려진 인물들을 살펴보면, 중앙에 존 레논과 오노 요코(Ono Yoko),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와 린다 매카트니(Lindal McCartney) 그리고 조지 해리슨의 모습이 보인다. 그런가 하면 비틀스 시절 제5의 멤버라 불리던 빌리 프리스턴(Billy Preston), 함부르크 시절부터 비틀스와 인연을 맺어왔던 크라우스 부어만(Klaus Voormann)도 등장한다. 이 모든 멤버가 한 장의 음반을 통해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이 외에도 수많은 스타들이 링고 스타의 세 번째 음반에 참여했다. 인기의 여세는 다시 존 레논이 참여한 다음 앨범 [Goodnight Vienna](1974)로 이어졌다. 국내에도 ‘No No Song’으로 잘 알려진 이 앨범 역시 앨범차트 8위에 랭크되며 준수한 성적을 낚았다. 하지만 이후 링고 스타의 음반들은 그렇게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음악적 혹은 상업적 할 것 없이 링고 스타란 별의 밝기는 점점 약해져 갔다.
인기의 사정권에서 멀어지며 링고 스타는 질병에 시달리기도 했고, 집이 화재로 불타기도 하는 악재에 시달렸다. 발표하는 음반의 실패는 그에게 알코올 중독이라는 성가신 이름표마저 달아줬다. 이런 그를 추스르게 만든 건 그의 이름을 딴 링고 스타 앤 히즈 올 스타 밴드(Ringo Starr & His All-Starr Band)였다. 이 밴드의 아이디어는 데이빗 피쇼브(David Fishof)에게서 나왔다. 초기 올 스타 밴드의 공연 프로듀서를 담당하게 되는 그는 ‘링고 스타를 중심으로 클래식 록 시대부터 가장 유명하고 재능 있는 뮤지션들이 어우러져 함께 공연하는 것’이라는 아주 단순한 구상을 세웠다. 하지만 이는 앞선 링고 스타의 활동에서 볼 수 있었던 타고난 친화력과 인간성을 통해 놀라운 결과로 이어지게 된다. 동시대에 활동했던 뮤지션들은 함께 활동했던 인연으로 밴드에 참여했고, 그의 활동을 바라보며 뮤지션으로서의 꿈을 키웠던 후배 뮤지션들은 그저 링고와 같은 무대에 서는 영광을 위해서라도 밴드의 일원이 되길 자처했다. 1989년, 그렇게 공연으로 시작된 링고 스타 앤 히즈 올 스타 밴드는 숱한 화제를 뿌렸고, 참여한 뮤지션들은 빛을 잃어가던 링고 스타라는 별의 밝기를 그 어느 때보다 환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1983년 [Old Wave]를 발표한 후 끊겼던 링고 스타의 활동은 든든한 동료들과 함께 다시 시작됐다. 그리고 그 활동은 2000년대 들어서도 평균 2년에 한 장씩의 신보를 발표할 정도로 그에게 활력을 더해줬다. 그리고 2015년, 또 한 장의 새로운 앨범 [Postcards from Paradise]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링고 스타는 2015년, 비틀스의 멤버 가운데 개인적으로는 마지막으로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다. ‘개인적’이라는 단서를 붙인 이유는 이미 1988년에 비틀스의 멤버로서 한 차례 헌액된 적이 있기 때문이다. 한 번도 힘든 자리에 두 번째 오르게 된 것이다. 그렇게 보면 시기적으로 [Postcards from Paradise]이라 이름 붙여진 18번째 앨범은 어쩌면 4월 18일로 입성이 예고된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에 대한 자축과도 같아 보인다. 그리고 자신에게 스스로 하는 축하에는 당연히 예전부터의 활동에 대한 회고가 있을 터. 그런 의미에서 이 음반은 링고 스타가 써 내려간 또 다른 자서전이다. 오프닝 트랙을 보자. ‘Rory and the Hurricanes’다. 알려진 바와 같이 링고 스타가 본격적인 프로활동을 시작한 밴드고, 비틀스와 만나게 되는 다리를 놓은 밴드 이름이다. 그리고.
‘Here, There And Everywhere’, ‘I Saw You Standing There’, ‘8 Days A Week’, ‘Getting Better’, ‘Don't Pass Me By’, ‘Yesterday’, ‘Let It Be’, ‘All My Loving’, ‘Here Comes The Sun’, ‘Nowhere Man’, ‘I Want To Hold Your Hand’, ‘When I'm 64’, ‘We Can Work It Out’, ‘Twist And Shout’, ‘Love Me Do’...
그저 비틀스 히트곡의 나열 같지만, 그렇지 않다. 바로 위 제목들은 이번 음반의 타이틀 곡 ‘Postcards from Paradise’의 가사를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이다. 다시 말해서 이 곡은 비틀스 시절 히트곡을 가사로 엮어나간 곡이다. 함께 수록된 ‘Let Love Lead’를 비롯한 많은 곡들이 타이틀 후보에 올랐지만, 어쩌면 당연하게도 타이틀의 운명을 지닌 ‘Postcards from Paradise’가 음반의 타이틀로 결정됐다. 링고 스타 앤 히즈 올 스타 밴드의 초창기부터 함께 했던 든든한 조력자 토드 룬드그렌(Todd Rundgren)과 링고가 함께 만든 이 곡은 덤덤한 진행과 차분한 목소리로 아련한 비틀스의 화려했던 시절을 회고한다. 어쩌면 링고에게 있어서 바로 그 때가 천국이었으며, 그 제목들을 되새기는 건 마치 그 때로부터 온 엽서를 읽는 것과 같은 떨림이 아니었을까. 앞서 언급했던 링고의 재치를 다시금 떠오르게 만드는 타이틀 곡이다.
우리에겐 ‘Right Here Waiting’과 같은 발라드 넘버로 친숙한 리처드 막스(Richard Max)가 링고와 함께 작곡에 참여한 ‘Right Side Of The Road’는 살짝 살짝 당겨주는 레게 리듬이 무리하지 않는 보컬, 깔끔한 연주들과 어우러진 곡. 듣는 동안 시종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편안한 느낌이다. ‘Not Looking Back’은 초기 링고 스타의 솔로 앨범에 수록됐던 컨트리 넘버들을 살짝 떠오르게 만드는 무난한 팝 넘버다. 전체적인 음반의 연주는 현재 함께 활동하고 있는 올 스타 밴드가 맡고 있다. 작곡에도 참여했다고 언급했던 토드 룬드그렌, 리처드 막스 외에도 토토(Toto)의 스티브 루카서(Steve Lukather), 페이지스(Pages)와 미스터 미스터(Mr. Mister)의 리처드 페이지(Richard Page), 이글스(Eagles)의 조 월시(Joe Walsh), 산타나(Santana), 저니(Journey)를 거친 그렉 롤리(Gregg Rolie), 피터 프램튼(Peter Frampton) 등 이루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화려한 멤버들이 그의 뒤를 받치고 있다. 그리고 이 음반에서 만큼은 연주에 있어서의 화려한 기교를 배제하고 흘러가는 듯 편안하게 진행되는 링고의 진행에 보조를 맞추는 정도로 최대한 ‘전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듯 들린다. 마치 링고 스타가 비틀스 시절에 해 왔던 드럼 연주처럼.
이제 네 명의 비틀스 멤버 가운데 살아남은 건 두 명의 멤버밖엔 없다. 폴 매카트니는 이미 지난 해 건강 때문에 내한공연을 비롯한 비슷한 시기 일정들을 취소한 적이 있고, 링고 스타 앤 히즈 올 스타 밴드 역시 3월에 한 차례 갑작스러운 건강 문제로 공연을 연기한 바 있다. 나이가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상이지만, 부디 건강을 잃지 말고 계속해서 우리 곁에 있었으면 하는 마음 가득하다. 그 어느 때 보다도 따뜻한 음성으로 들리는 [Postcards from Paradise]를 듣는 누구라도 나와 같은 생각에 잠길 것 같다. 혹시 비틀스에 대해 아련한 추억이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더. (20150405)
글 송명하 (파라노이드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