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기록한 로큰롤의 역사.
[Crosseyed Heart], 롤링 스톤스의 일원이자 얼굴인 키스 리처즈가 23년 만에 공개하는 세 번째 공식 음반.
어찌됐건 롤링 스톤스(The Rolling Stones)는 ‘악동’으로서의 이미지가 강하다. 그러한 이미지는 아무래도 밴드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보컬리스트 믹 재거(Mick Jagger), 그리고 기타리스트 키스 리처즈(Keith Richards)에서 만들어졌을 것이다. 특히 방탕하고 일탈된 행동으로 악명을 떨쳐온 키스 리처즈는 이미 2007년 <NME>와의 인터뷰를 통해 “나의 부도덕성에 대해 굳이 변명하지 않는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다”는 이야기를 한 바 있으며, 이러한 자신의 ‘로큰롤 탕아(Rock'n'Roll Hellraiser)’로서의 삶을 가감 없이 기록한 자서전 <라이프(Life)>(2010)를 출간하기도 했다. 그는 이 책으로 지난 2011년 영국 매거진 <지큐(GQ)>가 선정한 ‘올해의 남성들(The Men Of The Year)’ 시상식에서 ‘올해의 작가(Writer Of The Year)’를 수상했다. 또 이러한 외형적인 이미지는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Pirates Of The Caribbean)’ 시리즈에서 주연배우 조니 뎁(Johnny Depp)이 열연한 잭 스패로우(Jack Spparow)라는 캐릭터로 구체화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형상화된 이미지 때문에 결국 놓치게 되는 부분들이 있다. 바로 뮤지션, 즉 음악인으로서 그의 모습이다.
<롤링 스톤(Rolling Stone)> 매거진에서는 ‘100 베스트 기타리스트’ 가운데 4번째 위치에 키스 리처즈를 올려놓았으며, 믹 재거와 함께 만든 그의 곡 가운데 14곡을 ‘시대를 초월한 500곡의 위대한 곡(500 Greatest Songs Of All Time)’에 랭크시켰다. 브라이언 존스(Brian Jones), 믹 테일러(Mick Taylor)나 론 우드(Ronnie Wood) 등 롤링 스톤스를 거쳐 간 리드 기타리스트에 밀려 ‘리듬’ 기타리스트로서의 역할이 우리 뇌리에 박혔지만, ‘Paint It Black’, ‘Ruby Tuesday’, ‘Sympathy For The Devil’이나 ‘Gimme Shelter’와 같은 명곡들에서 들을 수 있는 명품 기타 연주는 온전히 그의 솜씨였다. 이렇게 키스 리처즈는 계속해서 롤링 스톤스의 일원이자 얼굴로 존재해왔다. 그것이 이미지건 그렇지 않으면 음악이었건 간에. 어쩌면 그 활동기간이나 이름에 비해 다소 초라한 개인 활동을 남긴 건 아마도 그 때문일 것이다.
[Crosseyed Heart]는 롤링 스톤스의 기타리스트 키스 리처즈의 세 번째 솔로앨범이다. [Talk Is Cheap]과 [Main Offender]가 각각 1988년과 1992년에 발표되었으니, 23년 만에 공개하는 공식 스튜디오 앨범인 셈이다. 2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이번 앨범 역시도 지난 두 장의 음반에서 키스 리처즈와 호흡을 맞춘 그의 밴드 엑스-펜시브 위노스(X-Pensive Winos)가 함께 했다. 특히 첫 음반부터 함께 해온 스티브 조단(Steve Jordan)은 이번 음반에서 드럼 연주는 물론 대부분의 곡에 작곡으로 참여했으며, 키스 리처즈와 함께 공동 프로듀스를 맡은 일등 공신이다. 물론 앞서 키스 리처즈가 롤링 스톤스의 일원이자 얼굴이라고 언급했지만, 지난 두 장의 음반과 마찬가지로 이번 음반 역시 롤링 스톤스 사운드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았다. 다만 시대의 조류를 다소 반영한 전작들과 달리 [Crosseyed Heart]는 오히려 더욱 완고해진 루츠록으로의 접근을 보여준다는 차이가 있다. 녹음 역시도 두텁지 않은 레이어에 선명하게 기록하는 방식을 택했다. 물론 초기 로큰롤, 컨트리, 레게, 블루스, 가스펠 등 다양한 메뉴들은 키스 리처즈, 아니 롤링 스톤스의 음악적 뿌리를 그대로 보여주며 이물감 없이 한 데 어울린다.
음반 발매 이전에 선공개된 싱글 ‘Trouble’의 기타 사운드나 리프 전개는 다분히 롤링 스톤스의 명곡 ‘(I Can't Get No) Satisfaction’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I Can't Get No) Satisfaction’과는 달리 그간 깊어진 키스 리처즈의 주름만큼의 여유와 원숙함이 겹친다. ‘Love Is Overdue’는 레게 뮤지션 그레고리 아이작스(Gregory Isaacs)가 1974년 처음으로 본국인 자메이카 차트 넘버원에 올려놓았던 싱글. 원곡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레게 리듬을 타고 있지만, 소니 롤린스(Sonny Rollins)와의 활동으로 잘 알려진 클립톤 앤더슨(Clifton Anderson)의 트롬본을 비롯한 세 명의 브라스파트, 그리고 아론 네빌(Aaron Neville)의 아들 이반 네빌(Ivan Neville)의 코러스와 하몬드 오르간으로 악센트를 더했다. 그런가하면 아버지 아론 네빌 역시 바로 다음 트랙인 ‘Nothing On Me’의 백 보컬로 참여했다. 이야기하듯 노래하며, 노래로 이야기하는 이번 음반의 특징이 그대로 드러나는 ‘Suspicious’, 혹은 어쿠스틱 기타와 피아노에 레리 캠벨(Larry Campbell)의 고즈넉한 페달 스틸 기타가 가세한 ‘Robbed Blind’의 여유로운 사색은 비슷한 계열이라고 할 수 있는 에릭 클랩튼(Eric Clapton)이나 마크 노플러(Mark Knopfler)의 근작들과 비교해도 흥미롭다.
초창기 로큰롤의 형태를 고스란히 간직한 ‘Blues In The Morning’, 자유분방한 잼 형식의 다소 거친 진행을 들려주는 ‘Substantial Damage’가 있는가하면, 홍키통크 스타일의 곡이지만 할렘 가스펠 코러스(Harlem Gospel Choir)가 참여하여 교회를 중심으로 퍼진 가스펠 사운드의 분위기를 들려주기도 한다. ‘Goodnight Irene’는 미국 전래 민요로, 리드 벨리(Lead Belly)가 1933년 처음 녹음한 이래로 위버스(The Weavers), 프랭크 시나트라(Frank Sinatra)에서 에릭 클랩튼(Eric Clapton)까지 수많은 뮤지션들이 발표했던 곡이다. 키스 리처즈의 버전은 컨트리와 블루스의 사이를 교묘하게 줄타기 하며 청자를 몰입시킨다. ‘Illusion’은 노라 존스(Norah Jones)와 호흡을 맞춘 곡이다. 노라 존스의 아버지 라비 샹카(Ravi Shankar)의 사상과 시타르 연주에 영향 받은 롤링 스톤스가 탄생시킨 명곡 ‘Paint In Black’을 떠올릴 수 있다면 50년에 가까운 인연이 탄생시킨 놀라운 듀엣곡이라고 할 수 있다. 역시 무리하지 않는 진행으로 편안하게 접근할 수 있는 곡. 브라스 파트와 함께 점진적으로 발전하는 ‘Lover's Plea’로 23년 만에 15곡이라는 적지 않는 트랙을 담은 키스 리처즈의 세 번째 공식 음반은 모두 끝을 맺는다.
키스 리처즈는 2007년 <NME>와의 인터뷰를 통해 “지난 10년간 나는 사망 가능자 명단에서 항상 첫 번째라고 생각해왔다”면서 “지금까지 거기서 빠져온 것에 대해 정말 실망하고 있다”고 덧붙인 바 있다. 1943년 12월 18일에 태어났으니 그는 우리나라 나이로 하면 벌써 73살이다. 그와 함께 음악을 시작했던 동료는 물론 그의 음악을 들으며 꿈을 키웠던 많은 뮤지션들 역시 그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경우도 많다.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그를 롤 모델로 삼으며 로커의 꿈을 키우고 있는 키즈들은 전 세계에서 악기점 앞 쇼 윈도우를 서성이고 있다. 살아온 인생, 그리고 현을 향해 내려 긋는 스트로크와 내 뱉는 말 하나하나가 로큰롤 그 자체인 키스 리처즈의 앞선 인터뷰를 액면 그대로로 받아들이는 이들은 아마 하나도 없을 것이다. 롤링 스톤스에서, 또 이렇게 자기 자신의 솔로 음반을 통해 정말로 멋지게 늙어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해외에선 이번 음반의 발매와 함께 넷플릭스(Netflix)를 통해 키스 리처즈의 다큐멘터리 ‘언더 더 인플루언스(Under The Influence)’가 개봉된다. 이미 발간된 자서전과 신보, 그리고 다큐멘터리까지 말 그대로 로큰롤의 역사를 되짚어볼 수 있는 키스 리처즈의 최근 행보. 그 가운데 우리가 가장 접근하기 좋은 게 바로 이번에 발매되는 [Crosseyed Heart]다. (20150924)
글 송명하 (파라노이드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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