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우 [Just Blues]

실력 있는 뮤지션과 대가의 만남. 그리고 김현식

실력 있는 뮤지션과 대가의 만남은 그 이름만으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적우와 신촌블루스의 엄인호가 만났다. 앨범엔 ‘트리뷰트’라는 문구가 보이지만 엄인호가 적우의 음반에 직접 참여하면서 일종의 ‘공동작업’과 같은 결과를 만들었다. 적우와 엄인호의 만남은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병마와 싸우고 있던 박인수를 위해 임희숙이 주관한 공연에 적우와 신촌 블루스가 함께 했고, 엄인호는 당시 적우의 무대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이후 적우는 엄인호의 부탁으로 같은 해 열린 신촌 블루스의 신촌 아트레온 공연과 2015년 앰프 라이브 클럽 공연에 게스트로 참가했고, 2020년 아예 정식 스튜디오 음반을 통해 다시 엄인호와 만났다. 이번에는 공연과 반대로 적우가 엄인호에게 먼저 연락을 취했다. 어쩌면 그 연락 이전에 이미 이번 앨범의 타이틀인 [Just Blues]는 결정되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적우는 초기 라운지 음악에서 헤비메탈 밴드 나티와 함께 했던 콜라보에 이르기까지 그 표현의 확장을 두려워하지 않는 적극적인 뮤지션이다. 적우가 직접 고른 이번 음반 수록곡들은 신촌 블루스, 혹은 엄인호의 솔로 앨범 수록곡 가운데 비교적 덜 알려진 노래들이다. 편곡을 맡은 엄인호는 굳이 기교를 통해 멋을 부리지 않고, 자연스레 흘러가며 노래 자체가 가진 매력을 충분히 살리는데 그 주안점을 뒀다. 악기 역시 더하는 것보다 빼는 데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고, 엄인호가 맡은 기타 외에 다른 세션들도 굳이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안정된 연주를 할 수 있는 멤버들로 꾸렸다. 기존 신촌 블루스 음반에서의 보컬은 철저하게 엄인호의 의도가 반영된 스타일을 요구했지만, 이번 음반에서는 약간의 분위기 설명 외에 모든 부분을 철저하게 적우에게 맡겼다. 적우는 몇몇 곡에서 가사를 수정하는 등 적극적으로 기존 곡들에 자신의 모습을 투영시키는 데 집중했다.

음반의 오프닝트랙 ‘그대 없는 거리’는 1985년 발표된 엄인호의 첫 독집과 1986년 한영애의 솔로 앨범에 ‘도시의 밤’으로 실렸고, 다시 1988년 신촌 블루스 1집에서 한영애가 ‘그대 없는 거리’로 발표했던 곡이다. 적우는 물론 악기파트의 어느 누구도 무리하는 법이 없이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흘러간다. 앞서 이야기했던 안정적인 스타일이 그대로 녹아있다. ‘내 맘속에 내리는 비’는 1992년 신촌 블루스의 4집과 엄인호의 3집에 해당하는 [Sweet & Blue Hours](1994)에 수록됐던 곡이다. [Sweet & Blue Hours]는 오케스트레이션이 삽입되고 엄인호의 기타 톤을 비롯해 전반적으로 부드러움이 강조된 음반이었다. 적우는 여기에 두툼한 중저역대의 매력적인 보컬로 자연스러움이라는 새로운 옷을 입혔다. 하몬드 오르간과 재즈 풍의 기타는 말 그대로 그 자체로 노래에 녹아든다. ‘그리워라 사랑아’는 ‘내 맘속에 내리는 비’와 마찬가지로 [Sweet & Blue Hours]에 ‘여자의 남자’라는 제목으로 담겼던 곡이다. 김한길이 작사한 이 곡은 원래 드라마의 주제곡으로 만들어진 만큼 엄인호의 곡 가운데 팝적인 성향이 가장 강한 곡 가운데 하나다. 그래서인지 마치 적우를 위해 새롭게 쓴 곡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녀에게 특화된 노래가 됐다. 적우 역시 약간의 가사와 제목을 수정하며 적극적으로 음악의 일부로 스며들었다. 향후 적우의 또 다른 대표곡이 될 만큼 깊은 인상과 커다란 여운을 남긴다.

 


이번 음반을 관통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키워드는 바로 ‘김현식’이다. 수록곡 가운데 ‘세월이 한참 흐른 뒤’는 김현식 추모앨범 [하나로](1991)에 담긴 곡이고 ‘어둠 그 별빛’은 1984년 김현식의 두 번째 음반에 담긴 대표곡이다. 적우는 2004년에 발표한 데뷔앨범에 이미 김현식의 노래 ‘기다리겠소’를 리메이크해 수록하기도 했고, ‘어둠 그 별빛’은 라이브 무대에서 꾸준하게 세트리스트에 오르는 레퍼토리다. 어찌 보면 2012년 엄인호와 적우의 첫 만남이 지금까지 이어질 수 있었던 것도 김현식이라는 공통분모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적우는 아르바이트로 번 돈으로 김현식의 63빌딩 공연 티켓을 사서 갔던 이야기를 엄인호에게 했고, 엄인호는 그런 그녀에게서 김현식과 같은 가수가 되고 싶어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처음엔 김현식 추모곡인 걸 몰랐지만 적우가 고른 노래가 ‘세월이 한참 흐른 뒤’였다는 점. 또 라이브 무대의 대표 레퍼토리로 자연스레 수록한 ‘어둠 그 별빛’이 엄인호가 프로듀스한 정경화의 4집 [화답](2005)과 신촌 블루스가 2016년 발표한 30주년 기념음반에 담길 정도로 엄인호가 가장 좋아하는 김현식의 노래 가운데 하나라는 점은 이들의 공동작업이 자연스러울 수밖에 없었던 또 하나의 이유가 될 듯싶다.

[Just Blues]는 적우와 엄인호 모두에게 일종의 외도, 혹은 실험이라고 할 수 있는 음반이다.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실력 있는 뮤지션과 대가의 만남이지만, 각자의 스타일을 상대편에게 조금씩 맞춰가면서 또 하나의 흥미롭고 매력적인 결과물을 뽑아냈기 때문이다. 엄인호는 인터뷰를 통해서 뭔가 변화를 시도하고 싶었을 때 부드럽고 감칠맛 나는 느낌을 살리는 가수를 만나 새로움을 찾을 수 있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그는 새로움을 위해 가수만 바뀐 신촌 블루스의 또 다른 음반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 최대한 적우의 톤에 맞춰 편곡과 연주를 했다. 적우 역시 기존 곡의 이해를 넘어 완벽히 자신의 또 다른 영역으로 신촌 블루스를 흡수했다. 이러한 배려와 이해가 낳은 결과는 앞서 이야기했듯 그 이름만으로 머릿속에 그렸던 많은 부분을 넘어서는 만족을 선사한다. 앨범을 끝까지 들은 누구라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할 것 같다. 일종의 외도, 혹은 실험이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 음반을 시작으로 그 작업이 또 다른 줄기로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 말이다. (20201030)

글 송명하 (파라노이드 편집장)


아쉽게도 앨범 발매 이후 신촌블루스와 적우의 합동 콘서트는 열리지 않았다. 코로나-19의 영향도 있고, 또 이외의 여러 이유가 있었다. 또 다른 줄기로 이어졌으면 했던 나의 바람은 결국 이루어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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