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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ER'S MUSIC LIFE/LINER NOTES (DOMESTIC)

정서용 [정서용 1집]

신촌블루스의 음반 데뷔에 함께했던 프론트우먼 정서용의 첫 독집

정서용의 첫 독집이다. 정서용이 우리에게 알려진 건 1988년 공개된 신촌블루스의 데뷔앨범에 담긴 대표곡 ‘아쉬움’을 엄인호와 듀엣으로 부르면서 부터지만, 음반데뷔는 신촌블루스의 앨범이 발표되기 2년 전인 198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규형 감독의 첫 작품인 ‘청 블루스케치’의 O.S.T.에 이광조, 김승덕, 오선과 한음과 함께 참여했다. 당시 이규형 감독은 1980년대를 대표하는 젊은 문화공동체 ‘태멘’을 거점으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천호진, 조민수, 허준호 등 첫 영화의 신인배우들과 마찬가지로 음악 역시 주변의 젊은 뮤지션을 규합했다. 음반 재킷에 적힌 문구 가운데 “우리 20대의 가슴이, 우리 20대의 영혼이 얼마나 무섭도록 아름다운가를 보여주고 싶다.”에서 보이는 패기는 많은 점을 시사한다. 오선과 한음의 김선민이 맡은 음악 가운데 정서용은 ‘애정의 묘연’과 스캣 송 ‘그대를 사랑할 수 없고’를 수록했는데, 신촌블루스의 데뷔앨범과는 2년이라는 간극밖에 없지만, 스타일이나 창법에서는 많은 차이를 보인다. 정서용의 음악적 출발이 블루스가 아니고 포크기 때문이다.

 


정서용은 1980년부터 무교동 다운타운에서 포크 싱어로 활동하며 다운타운가를 중심으로 점점 인지도를 높여갔다. 그리고 단 두 장의 앨범에만 참여했지만 그녀의 커리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신촌블루스와의 인연은 우연히 찾아왔다. 정서용이 1985년 비가 내리는 어느 날 신촌 거리를 지나고 있는데, 1층의 생맥주집에서 기타연주와 함께 노래 소리가 흘러나왔다. 음악에 이끌려 들어간 그 곳에서는 엄인호와 조덕환이 노래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즉석에서 자신도 노래를 하겠다고 해서 즉석 잼을 펼쳤고 얼마 후 신촌 블루스를 함께 하지 않겠냐는 연락을 받고 합류하게 되었다. 정서용은 인터뷰를 통해 “신촌블루스에 합류 할 때 블루스가 뭔지도 모르고 그냥 좋아서 가입했다. 이정선은 어렸을 때부터 기타의 교본이었고, 블루스가 좋았다기보다는 김현식이나 한영애, 이정선을 만나는 것 자체가 너무나 좋았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돌리 파튼이나 에밀루 해리스 스타일의 포크/컨트리 음악을 즐겨 하던 정서용의 스타일은 당시 신촌블루스의 얼굴과도 같았던 객원 싱어들인 김현식, 한영애가 가진 저음의 매력이나 허스키한 특징과는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정서용이 가진 고음의 미성은 조금 더 대중적인 접근에 용이했다. 신촌블루스가 발표한 가장 대중적인 히트곡 ‘아쉬움’은 원래 엄인호가 박인수와 정서용의 듀엣을 염두에 두고 작곡했지만 뜻하지 않게 스스로 정서용과 화음을 맞추며 발표와 동시에 신촌블루스의 대표곡이 됐다. 정서용의 스타일과는 완전히 반대편에 있는 엄인호의 목소리가 오히려 정서용의 매력을 돋보이게 만드는데 효과적으로 작용한 것이다. 정서용 역시 이 곡에 대해 ‘가장 한국적이고 대중적인 곡’이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정서용은 이정선이 마지막으로 참여한 신촌블루스의 두 번째 음반까지만 활동하고 밴드를 떠났다. 신촌블루스 활동에 대해서는 “잃은 것이 있기도 하지만, 얻은 게 훨씬 많다. 처음 가입할 때는 포크음악을 하다가 블루스를 한다는 이야기에 말리는 사람도 많았지만, 최고의 뮤지션들과 함께 만나고 음악을 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좋았다.”는 이야기를 남겼다. 잃은 것이라면 아무래도 이정선, 엄인호, 김현식, 한영애의 음악에 묻혀있었고, 밴드활동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신의 개성보다는 밴드의 사운드에 맞춰야했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신촌블루스에서 활동하며 한영애나 김현식의 허스키한 창법을 따라 하기 위해 피를 토하기도 했다는 일화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1989년 신촌블루스의 2집 음반이 나오고 동아기획의 김영 대표는 정서용에게 이제 독집 음반을 발표할 때가 되지 않았냐며 제작에 대한 제안을 했다. 어차피 신촌블루스와 정식 계약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신촌블루스와 활동하며 잠시 놓고 있었던 자신의 원래 스타일을 찾을 기회라고 생각한 정서용은 밴드를 떠나 다시 혼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예상했던 대로 독집 음반은 신촌블루스 활동의 연장이 아니라는 생각에 초점을 맞추고, 어렸을 때부터 했던 음악이 포크였기 때문에 그 부분을 염두에 두고 예전의 톤을 찾기 위해 노력하며 작업했다. 하지만, 정서용 역시도 자신의 첫 독집에 대해서 “결과적으로 볼 때는 신촌블루스에서 헤어나지 못한 음반이었다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던 것처럼 신촌블루스에서 프론트우먼으로 활동하며 혹독하게 몸에 밴 스타일을 인위적으로 벗어나는 건 그리 녹록한 일이 아니었다. 대신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스타일은 오히려 팔색조처럼 다채로운 색깔로 음반에 흔적을 남겼다.

 


‘휴가’는 초기 김현철 특유의 곡 전개와 편곡이지만, 돌리 파튼을 연상시키는 정서용의 목소리는 신촌블루스 이전, 포크와 컨트리풍의 스타일로 돌아가고픈 그녀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 들린다. 물론 전체적으로는 역시 신촌 블루스의 영향력을 느낄 수 있다. 로커빌리 풍 ‘비의 춤’이나 ‘혼자서도’는 그녀 스스로 작곡한 곡들로, 신촌블루스시절 정서용의 창법을 그대로 빼다 박은 곡들이다. 실제로 ‘혼자서도’와 같은 곡은 신촌블루스에서 정서용이 독립하기 전에도 라이브 무대를 통해 선보였던 곡이기도 하다. 이정선과의 시너지 효과가 돋보이는 나른한 느낌의 ‘여인 #4’, 투정 부리는 듯한 ‘누가 또 날 울릴까’ 등 수록곡마다 조금씩 차별화된 창법 등 신촌블루스 활동에서 듣기 어려웠던 아기자기한 구성 역시 돋보인다. 포크 혹은 블루스나 재즈로 한정시킬 수 없는 스타일의 공존, 또 김현철을 비롯해서 조동익, 이정선이 참여한 편곡 라인이 자칫 산만하게 흘러갈 수도 있었지만, 이미 이름 석 자만으로도 충분한 믿음을 줄 수 있었던 확고한 중심은 전체적인 통일성을 부여한다.

정서용은 신촌블루스를 탈퇴한 후 개인 공연에서는 일부러 블루스 레퍼토리를 빼는 등 꾸준하게 목소리에서 힘을 빼는 활동을 이어갔다. 이후 1994년에 발표한 두 번째 솔로 앨범에서는 스무 살 무렵부터 알고 지내던 친한 친구들인 함춘호, 윤명운, 박성식, 장기호, 장재환 등 자신의 음악성을 가장 잘 알고 있는 뮤지션들과 함께 1집보다 더 자신이 원하는 스타일로 접근한 음반을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청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길지 않은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데뷔와 함께 신촌블루스의 얼굴로 등극한 정서용과 신촌블루스를 따로 떼어 생각한다는 건 애초부터 무리였다. 정서용의 음반을 들고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미 자신의 머릿속에 영역을 그어 둔 신촌블루스의 흔적을 찾아내는 데 촉각을 세웠다. 다시 말하지만 이 음반은 신촌블루스가 아닌 정서용의 첫 독집 앨범이다. 음반의 처음부터 끝까지 한 바퀴 돌리고 나면 소박하지만 음향시설은 잘 되어있는 작은 카페의 어두운 조명 아래서 노래 부르는 정서용의 모습이 절로 그려진다. 옴니버스 음반을 제외한다면 신촌블루스와 함께한 두 장, 그리고 솔로 두 장이라는 수적으로 아쉬운 정서용의 디스코그래피 가운데서도 꼭 챙겨 들어야할 매력 넘치는 앨범이다. (20210910)

글 송명하 (파라노이드 편집장)

 


작년과 올핸 참 신촌블루스와 인연이 깊었던 것 같다. 작년 이정선의 10집 LP 재발매 음반과 적우+엄인호, 올해는 현재 보컬리스트 제니스와 강성희, 박완규+신촌블루스 콜라보 그리고 정서용의 LP 재발매 음반까지 꾸준하게 소개 글을 썼다. 글을 쓰는 내내 신촌블루스의 음악을 들으며 함께 나이먹을 수 있었던 게 정말 고맙단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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