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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ER'S PRIVATE LIFE/BOOKSHELF

양해남의 ‘그래서 가요 LP’

1990년대 말, 은행동 기신양복점 부근에 ‘스타레코드’란 가게가 들어섰다. 정말 좁았던 가게지만, 지금 생각하면 초 희귀 아이템으로 꼽힐만한 가요 음반들을 정말 싼 가격으로 살 수 있었던 곳. 가게 주인은 정상식 형님이었다. 정지영이라는 예명으로도 불린 상식이형은 김홍철과 친구들의 멤버와 함께 조직한 트라이앵글이라는 트리오의 일원으로 활동한 적도 있다. 

 

메시지도 두 명 이름으로... ^^

음반이 점점 늘어나며 스타레코드는 조금 한적하지만 살짝 넓은 가양동으로 자리를 옮겨 ‘아날로그 33’이란 이름으로 이전 개업했다. 그리고 가게를 즐겨 찾는 단골을 중심으로 같은 이름의 음악동호회가 만들어졌다. 고문 격으로는 키 보이스에서 드럼을 연주했던 노광일 형님과 나중에 ‘턴턴턴’이라는 레코드 가게를 열었던 고 김찬 형님이 있었고, 과거 르네상스, 파이오니아와 같은 대전 음악감상실의 대표 디제이였고 지금은 ‘전깃줄 위의 참새’를 운영하는 최평근 형님, 현재 은행동 ‘LP 창고’의 대표 김인호 형님, 그리고 아날로그 33의 사장 상식이형이 주축 멤버였다.

양해남 선배는 조직의 중간 보스(?) 정도 되는 포지션이었다고 생각한다. 사실 양해남 선배와 나는 아날로그 33 이전, 내가 대학시절 다녔던 대전극장 골목 레코드숍 ‘맑은소리’ 지열이형과 당시엔 ‘시티사운드’ 알바, 이후 ‘아우성’이라는 레코드 가게를 운영했던 지수씨 덕분에 먼저 알고 있던 사이였다. 양해남 선배는 그때 이미 국내 영화 포스터 수집에 있어서는 손꼽히는 콜렉터였고, 블루노트 레이블 음반 사냥꾼이었으며 오디오, 카메라 등 여러 방면에 자신의 관심을 내보이는 걸 주저하지 않았다. 그때 해남 선배를 보며 ‘한량’이라는 표현이 딱 어울린다고 내심 생각하기도 했다.

한번은 ‘금산인삼엑스포’를 기획했던 양해남 선배의 집에 놀러간 적이 있다. 당시 오디오는 마란츠 7과 B&W 매트릭스 801의 조합으로 기억나는데, 어쨌든 공간에 어울리는 예쁜 소리였다는 기억이 있다. 그리고 LP보다 CD에 관심이 생겨 거의 처분했다 들었던 LP장엔 다시 음반들이 들어차고 있었다. 가요 음반들이었다. 이후 난 핫뮤직에 출근하며 대전에서 알고 지내던 분들과는 점점 멀어지게 됐다. 양해남 선배를 다시 보게 된 건 2015년이다. 주다스 프리스트 공연 때문에 서울로 올라가려고 대전 복합터미널에 갔다가 말 그대로 우연히 만났다. 그때 난 경주에 설립될 한국대중음악박물관의 자문위원이 되며 이것저것 많은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는데, 양해남 선배의 막강한 데이터베이스가 생각나 최규성 선배에게 연결을 해드리기도 했다.

 

2015년 우연히 다시 만난 양해남 선배

며칠 전 LP 창고에 갔더니 인호형이 책 한권을 건넸다. <그래서 가요 LP>. 위에 주섬주섬 늘어놨던 이야기는 책의 표지를 보자마자 떠오른 기억 한 쪽에 밀려났던 이야기들이다. 책의 내용 역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런 식의 책을 보며 사람들은 ‘명반’이라는 부분에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이 책에 소개된 음반은 객관적인 잣대로 볼 때 결코 명반이라고 할 수 없는 음반이 많다. 가이드나 매뉴얼이 아니라는 얘기다. 오히려 오쿠다 히데오의 <시골에서 로큰롤>처럼 음반과 관련된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이며 소감이다. 앞서 얘기했던 포스터, 오디오, 카메라, 음반 등 양해남 선배의 관심이 자신의 성격처럼 꼼꼼하게 담겼다.

 

제가 격려할 만한 위치에 있지 않은데요;;;

어찌 보면 ‘명반’이란 모든 사람이 공감하기 힘든 단어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자신만의 명반이 있기 마련일 것이다. 오디오에 있어서 좋은 소리라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같은 오디오로 같은 음악을 같은 장소에서 들어도 그걸 받아들이는 느낌은 모두가 다르다. “이게 명반이야?” 혹은 “이 음반 소리가 좋다고?”라는 건 이 책의 의도를 잘 파악하지 못하고 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한 편의 가벼운 수필집을 읽어 내려가며 서술된 음악에 내가 가진 또 다른 기억을 끄집어내며 흐뭇해 할 수 있는 따뜻한 책이다.


 

그래서 가요 LP

1960년대부터 1990년대에 걸쳐 발매된 가요 명반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소개한다. 특별한 기준이나 원칙 없이 뛰어난 사운드를 들려주는 음반과 저자의 특별한 사연이 담긴 음반을 위주로 담아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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