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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ER'S PRIVATE LIFE/PRIVATE LIFE

태안 바라길 트레킹+백패킹. 그리고 반성문

올 초 다이어리에 첫 기록을 남기며 써 놓은 몇 가지 버킷 리스트 가운데 트레킹+백패킹이 있다. 봄부터 조금씩 백패킹 장비를 구매했고, 몇 군데 캠핑도 다녀왔다. 그리고 가장 날씨가 좋을 때를 맞춰 일정을 잡았다. 두 달 전부터 방송국에 사정을 얘기해 생방송을 녹음으로 돌리고, 맡은 라이너노트도 모두 끝냈다. 첫 일정은 제주로 잡고 비행기 티켓도 예약했다. 하지만 바로 전 주에 태풍 예보가 떴다. 월요일 출발을 예정으로 했는데, 일요일까지 기다리다가 결국 비행기 티켓을 취소했다. 플랜 B를 가동해서 태안 바라길로 일정을 다시 잡았다. 그리고 9월 13일 월요일 태안으로 떠났다.

원래 2박에서 3박을 목표로 잡았다. 모두 야영을 할 계획이었고, 3박은 바라길을 지나 소원길까지 완주할 수 있으면 그렇게 하려고 했다. 하지만 일정은 모두 2박 3일로 마쳤다. 첫날은 학암포 오토캠핑장에서 야영을 했지만 둘째 날은 계획과 달리 신두리 사구의 펜션에서 잤다. 트레킹을 하기엔 배낭이 너무 무거워서 시간을 너무 잡아먹었고, 어깨가 너무 아파서 다음날 트레킹에 자신이 없어서였다. 날씨는 너무 좋았다. 한적해서 트레킹엔 더 없이 좋은 조건을 뒤로하고 돌아오는 발길은 정말 무거웠다. 앞으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이번 여행에서 느낀 점 몇 가지를 기록한다.

  1. 백패킹과 트레킹을 함께 하는 건 무리다. 물론 가능하긴 하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장비의 무게를 최소한으로 줄여야 한다.
  2. 내가 가진 장비 가운데 가장 무게가 많이 나가는 건 반고 침낭이다. 지금 침낭의 무게는 2kg. 그냥 캠핑이면 몰라도 트래킹을 함께 하려면 반 이하로 가벼운 침낭을 새로 장만해야한다. ㅠㅠ
  3. 캠핑가면 무언가 만들어 먹는 게 제일 큰 재미 중 하나다. 하지만 트레킹과 함께 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가능하면 간단한 밀키트 혹은 그냥 라면 정도로 식단을 짜자.
  4. 이소가스 110g 짜리는 1박 이상 할 경우 부족하다. 크기와 무게가 좀 더 나가도 230g 짜리를 챙기는 게 나을 듯.
  5. 오히려 트레킹엔 간단한 고체연료를 사용하는 것도 고려해보자.
  6. 의자는 필요하지만, 테이블은 베른 트레킹패드나 라이프 테트라 테이블 중 하나만 있어도 되겠다. 인디안 행어나 랜턴 걸이도 놓고 가자.
  7. 에어매트가 너무 푹신해서 좀 불편하다. 백패킹용 니모 자충매트 하나를 더 장만할까 생각 중이다.
  8. 이번에 해 보니 냄비나 프라이팬 모두 가능한 제로그램 라면팬 하나면 조리용기는 더 필요 없을 것 같다. 햇반 데우는 건 스테인리스나 법랑 컵으로 해결하자.
  9. 에너지 바. 이건 필수다. 이번에도 네 개 챙겨 갔는데, 정말 요긴했다. 
  10. 20,000짜리 보조 배터리도 잘 샀다. 앞으로도 이거면 충분할 것 같다.

태안공영버스터미널. 대전에서 오전 10시 우등고속을 탔다. 2시간 정도 소요.
터미널에서 바로 시내버스로 학암포까지 이동했다. 버스에서 내리는 데 기사님이 해안길을 안내해주셨다.
학암포탐방지원센터. 한 눈에 들어오는 예쁜 집이다.
이렇게 생긴 이정표가 수시로 있어서 길 찾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학암포를 상징하는 조형물.
학암포
학암포
야영장에 도착했다. 야영장 입구까지 바로 오는 버스도 있는데 시간이 잘 맞지 않았다.
텐트 피칭 마치고 근처 편의점에서 두부 한 모, 달걀 네 개, 얼음, 생수... 등 필요한 몇가지를 사왔다. 물론 맥주도. 편의점이 가까워서 좋았다.
저녁 반찬은 두부 부침과 볶은 김치, 달걀말이.
학암포의 일몰. 하마터면 놓칠 뻔 했다.
UCO 랜턴과 DIVOOM 라디오/블루투스 스피커, 미래소년 코난 법랑컵으로 살짝 분위기 있는(?) 힐링 타임을 가져본다.

이때 흐르던 BGM은 김광희의 '나 돌아가리라'.

 

둘째 날 아침. 전날 남은 두부를 넣고 라면을 끓였다. 슬슬 짐 챙겨서 떠날 시간이다.
하루종일 날 괴롭힌 ㅠ 배낭이다. 12시 퇴실 시간에 거의 맞춰 트레킹을 시작했다.
야영장에서 바로 바라길로 들어가는 길이 시작된다.
해변길의 사구습지.
학암포 해변길로 가는 길이다.
사설 야영장과 펜션을 운영하는 별빛바다의 어린왕자 조형물 사이로 보이는 등대가 예뻐서 한 컷.
날씨가 너무 좋아서인지 계속해서 참 비현실적인 풍경이라는 생각을 했다.
전날 지나쳤던 학암포탐방지원센터 2층엔 간단한 전망대가 있다.
해안을 따라가는 길은 왼쪽과 오른쪽이 전혀 다른 느낌이다. 정말 예뻤다.
구례표 해면. 데크로 평지를 만들어서 몸이 불편한 분의 트레킹에 도움을 준다고 한다.
학암포를 떠나니 상점이나 식당은 커녕 인적도 없었다. 준비한 에너지바로 체력을 보충했다.
먼동전망대. 햇빛이 너무 강해서 풍경을 한 눈에 담기 힘든 시간이었다.
모재쉼터. 널브러져 있는 배낭이 당시 내 몸 상태를 대변한다;;;
신두리 사구 입구에 도착했다. 역시 비현실적 풍경이 시선을 압도했다.
이 길로 걸어가면 신두리 사구에 도착한다.
신두리 사구의 개방시간은 오후 6시 까지였다. 시간이 빠듯해서 얼른 통과해서 지나갔다.
다음 날을 기약하며... 지는 해와 소의 실루엣이 예뻐서 사진을 남겼는데 너무 멀어서 잘 안보인다 ㅠ
셋째 날 아침. 배낭 모두 챙기고 짐은 잠시 펜션에 둔 채 일찌감치 신두리 사구를 둘러봤다.
배낭에서 해방되니 이렇게 편하구나 ㅠ
방목해서 키우는 소. 눈망울이 꼭 사람 눈 같다.
카카오맵을 보고 시내버스 정류장을 찾아왔는데... 밭일 하는 어르신이 여긴 버스가 한참 있어야 온다고 더 위로 올라가라고 하셨다.
그렇게 다시 걸어서 큰 길로 올라와 태안공용버스터미널이 종점인 시내버스를 탔다. 대전으로 가는 한 시 30분 차를 탔다. 대전에 도착하자마다 약국에 들러 제일 큰 파스를 샀다 ㅠ


예전에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룬 '스페인 하숙'에서 누군가 그런 말을 했다. "짐은 두려움이다. 두려움을 버려라."라고. 또 그런 얘기도 있다. "장비와 멀어질 수록 자연과는 가까워진다." 다음 여행도 가능하면 날씨 좋을 때 빨리 다시 떠나려 한다. 한 번의 실수가 있었으니 이번 보다는 덜 힘든 트레킹+백패킹이 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