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슬라이드 기타의 명인이 회고한 자신의 블루스 여정.
윤명운은 싱어 송 라이터 겸 기타리스트다. 신촌 블루스의 데뷔앨범을 비롯해서 여러 차례의 세션 활동, 또 4장이라는 자신의 독집음반을 발표했지만 기타 연주인 혹은 보컬리스트로서 윤명운을 기억하는 이는 그다지 많지 않다. 그나마 그의 이름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한영애의 ‘누구 없소?’를 좋아해서 그녀의 음반을 유심히 관찰했던 부류일 것이다. 윤명운은 바로 ‘누구 없소?’를 작사, 작곡한 인물이며, 자신의 음반에도 수록했던 뮤지션이다. 또 그는 이정선 등 많은 기타리스트들은 국내 래그타임(Ragtime) 기타의 일인자로 이름을 거론할 정도로 블루스 기타리스트 가운데 일찌감치 자신의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했던 연주인이다. 래그타임은 1880년대부터 미국의 미주리주를 중심으로 유행한 피아노 음악이다. 당김음이 많은 것이 특징이고 재즈의 전신으로 보는 이론이 많다. 그의 동생 윤명환 역시 자신의 음반은 물론 이태원의 히트곡 ‘솔개’를 비롯해 이연실의 음반에 참여하기도 했던 싱어 송 라이터다.
윤명운의 음반 데뷔는 198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후일 보헤미안과 같은 이미지는 아니지만, 엄숙한 느낌마저 드는 경건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그의 흑백사진으로 등장한 음반. 번안곡인 ‘서울로 가는 길 (원곡: City of New Orleans)’을 제외하고는 온전히 자신의 자작곡만을 수록한 이 음반은 그의 음악적인 방향이 뚜렷하지는 않았던 음반으로, 블루스라기 보다는 포크에 가까운 음악을 들려줬다. 하지만, ‘신인 가수’의 데뷔음반이었던 만큼 음반사의 보이지 않는 간섭이 적지 않았을 것을 감안한다면, 충분히 ‘수작’의 반열에 올려놓을 만한 음반으로, 수록곡 가운데 몇몇 곡은 이후 발매되는 그의 음반에 감칠맛 나는 새로운 편곡으로 다시 녹음된 바 있다.
1989년에 발표된 두 번째 음반은 블루스라는 명확한 자신의 방향을 설정한 음반이었다. 배수연, 김효국, 임인건, 김영진 등 국내의 대표적 세션맨들이 참여한 이 음반에서는 특유의 블루스적 감성으로 소화해낸 한대수의 ‘바람과 나’, 역시 트로트의 고전을 맛깔스럽게 다시 만들어낸 ‘나그네 설움’ 등이 마니아들 사이에서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물론 타이틀곡인 ‘명운이의 Blues’를 필두로, ‘할머니 Blues’, ‘상사타령’이나 ‘김치 Rag’ 등 그를 대표하는 거의 모든 곡들이 수록된 필청 음반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의 새로운 시도들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게 만들기에는 ‘관계자’들의 그릇이 너무 작았던 탓일까. ‘국적불명’이라는 어이없는 통보 앞에 음반은 방송 금지의 낙인이 찍혔고, 힘들게 만들어 제대로 판매대에 한번 올라보지도 못하고 사장되어 버렸다. 하지만, 두 번째 음반의 이러한 시선들은 해가 지나고 새로운 음반이 발매되어도 그 사정이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아침 기다리며 / 김치 Rag]은 1991년에 발표한 윤명운의 세 번째 독집이다. 첫 번째 음반은 오아시스, 두 번째 음반은 지구 레코드, 그리고 세 번째 음반은 대성음반을 통해 발매된 것을 보더라도, 그의 음악적인 여정이 그다지 순탄치 못했음을 알 수 있다. 이전 두 장의 음반이 제대로 된 홍보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사장된 탓인지, 세 곡을 제외한 모든 곡은 이미 발표된 두 장에 음반에 수록됐던 곡이다. 물론 전작에 실렸던 곡이라고 하더라도, 이 음반의 모든 곡은 새로운 연주와 편곡으로 실렸다. 1983년 데뷔앨범에 실렸던 ‘아침 기다리며’는 브라스파트와 현악파트를 대거 수용하며 사운드에 있어서의 변신도 꽤했다. 2집의 대표곡 ‘명운이의 Blues’는 도브로 기타의 매력을 살렸다는 점은 동일하지만, 중반부 폴카 리듬으로의 변화를 생략하고 전체적으로 나른한 진행으로 일관한다.
한영애가 히트시킨 ‘누구 없소?’의 작곡자 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 윤명운의 버전은 그의 래그타임 스타일 어쿠스틱 기타연주 만으로 이뤄졌다. 한영애의 히트곡에 비해 늦게 녹음되긴 했지만 원곡의 편곡 이전 버전을 엿볼 수 있는 매력이 있다. 제3회 한국 노랫말 대상에서 밝은 노랫말상을 받은 ‘누구 없소?’는 2011년 MBC-TV ‘나는 가수다’에서는 장혜진이 불렀으며 2012년에는 밴드 국카스텐, 2015년 시즌 3에서는 양파가 다시 불렀다. 또 2015년 ‘불후의 명곡’에서는 손승연이, 2015년 ‘복면가왕’에서는 ‘사모님은 쇼핑 중’으로 분한 1987년 강변가요제 대상 수상자 문희경이 불렀을 정도로 세대를 초월한 명곡으로 군림하고 있다.
윤명운은 <GMV>와 했던 인터뷰에서 2집이 심의에서 ‘국적불명’의 음악으로 낙인 찍혔고, 다른 음반들 역시 홍보를 제대로 하지 못해 사장됐다고 이야기했다. [아침 기다리며 / 김치 Rag] 역시도 ‘누구 없소?’가 실리긴 했지만 전작들과 같은 운명을 겪었다. 4년 뒤에 4집이 킹 레코드를 통해 CD로 발매됐는데, 이 음반은 앞서 사장된 석 장의 음반을 다시 녹음한 음반이었다. 4집의 라이너노트에는 다음과 같은 윤명운의 이야기가 담겼다.
“... 지난 기간 이 나라의 진정한 예술인들은 ‘자기표현’을 마음대로 하지 못했던 긴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블루스는 ‘용서’의 음악이기에 이제부터라도 창작물을 두려워하는 정부를 가진 대중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다시 새롭게 연주, 녹음하여 여러분께 돌려드립니다.”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음악을 알리려했던 소박한 욕심에도 불구하고, 이 음반 역시 이전에 발표했던 LP들과 같은 운명을 겪었다. 이후 윤명운은 1996년 개봉한 정병각 감독의 영화 ‘코르셋’의 음악을 맡기도 했다. (20200106)
글 송명하 (파라노이드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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