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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ER'S MUSIC LIFE/LINER NOTES (DOMESTIC)

동서남북 [N.E.W.S.]

원본과 동일하게 재발매되는 국내 아트록의 명반.

1980년대, 심야 라디오 방송은 음악 마니아들의 갈증을 풀어주는 오아시스와도 같은 존재였다. 특히 ‘성시완의 음악이 흐르는 밤에’와 ‘전영혁의 음악세계’를 통해 흘러나왔던 유럽의 아트록 넘버들이 이러한 올빼미 마니아들에게 준 충격은 대단했다. 처음 음반 발매 당시 여러 이유로 제대로 소개될 기회가 적었던 동서남북이라는 밴드의 ‘나비’ 역시 ‘전영혁의 음악세계’를 통해 뒤늦게 주목을 받게 됐다. 그것도 소수의 아트록 마니아들에 의해서. 화려한 신시사이저 연주를 동반한 이들의 사운드는 ‘한국의 일 볼로(Il Volo)’로 불릴 정도로 독특한 것이었다. 결국 이러한 관심은 1988년 ‘아주 오랜 기억과의 조우’란 부재를 앞세운 LP 재발매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로부터 30년 가까지 지난 지금 다시 한 번 우리 곁을 찾을 준비를 마쳤다. 1988년 재발매 버전이 아니라 1981년 처음 나왔던 그 음반 수록곡과 재킷 그대로.

동서남북을 이야기하기 전에 살펴볼 밴드가 하나 있다. 1978년 동양방송에서 주최한 ‘제1회 해변가요제’에서 ‘그대로 그렇게’로 인기상을 받은 피버스(Fevers)다. 피버스는 해변가요제 이후 몇 장의 음반을 발표하며 멤버가 교체된다. 우선 해변가요제에서 기타를 연주한 멤버는 피버스의 초기 멤버였던 김흥수다. 그리고 첫 번째에 해당하는 [젊은이의 우상 이명훈과 휘버스 Golden Parade](1979)에서는 ‘노란 샤쓰의 사나이’로 잘 알려진 한명숙의 아들 이일권이 녹음했다. 이일권은 당시 한양대 작곡과에 다니고 있었다. 아무래도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피버스의 음반은 ‘가버린 친구에게 바침’이 수록된 [열기들(Fevers) 걸작 모음, 젊음의 노래 / 가버린 친구에게 바침](1979)일 것이다. 이 음반에서 기타는 새로 영입된 박호준이 담당했다. 수록곡 가운데 슬로우 템포의 블루스 넘버 ‘내 마음 항상’은 그가 작곡한 곡이다.

피버스의 [열기들(Fevers) 걸작 모음, 젊음의 노래 / 가버린 친구에게 바침]에서는 ‘가버린 친구에게 바침’, ‘젊음의 노래’나 ‘그대로 그렇게’와 같이 대중적인 사랑을 한 몸에 받은 곡 외에 주목해야할 트랙이 하나 있다. 7분에 육박하는 대곡 ‘산(山)’이다. 기존 인기곡과는 다르게 분명 이 곡은 프로그레시브한 전개를 가진 곡이다. ‘산(山)’을 만든 건 당시 피버스의 브레인으로 대부분의 곡을 작곡한 정원찬이다. 정원찬에 따르면 1978년 곡에 대한 구상을 시작했지만 결국 완성시킨 건 박호준이 가입한 이후인 1979년 1월이라고 한다. 머릿속의 복잡한 구상을 실체로 만드는 데 박호준이라는 새로운 멤버의 역량이 발휘되었다는 얘기다. 실제로 정원찬은 박호준이 스스로 기타가 들어가야 할 부분을 찾아내어 곡의 흐름에 맞는 연주를 찾아낼 능력이 있었고, 가성의 코러스 부분까지 잘 소화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음반이 발표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피버스의 멤버는 재정비 된다. 대부분의 멤버가 교체됐고, 박호준 역시 밴드를 떠났다. 그리고 피버스를 떠난 박호준을 중심으로 또 하나의 밴드가 결성된다. 바로 동서남북이다.

초기 동서남북의 멤버는 박호준(기타), 이태열(기타), 김득권(드럼), 이동훈(키보드), 이관형(키보드) 그리고 김준응(보컬)이었다. 이 가운데 이관형의 친형인 이치형은 T.S.S.(생각하는 돌들의 모임 Thinking Stones Society)라는 영어회화 클럽에서 활동했던 양병집의 후배다. 동서남북과 양병집의 인연은 이렇게 밴드 결성 후 당시 ‘청개구리’라는 카페를 운영하던 양병집을 이관형이 찾아가 박호준을 소개하면서부터 시작됐다. 박호준은 친구들과 함께 밴드를 만들어 연습하고 있으니 한 번 봐줬으면 하는 뜻을 전달했고, 이들의 연주에서 국내가 아니라 해외 하드록이나 프로그레시브록 밴드가 갖춘 그 무언가를 갖고 있다는 것을 찾아낸 양병집은 결국 그들의 매니저를 자처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이관형이 탈퇴하고 그 자리에 김광민이 가입했다. 결성 당시에는 밴드의 이름이 결정되지 않았었는데, 멤버들이 다니는 학교가 고려대(박호준), 국민대(이태열), 명지대(김준응, 김광민), 서울대(김득권) 등 각각 동서남북에 흩어져 있다는 이유로 ‘동서남북’으로 결정됐다. 1981년 초반에서 볼 수 있는 영문 표기인 ‘N.E.W.S’는 각각 ‘North’, ‘East’, ‘West’, ‘South’의 이니셜을 딴 단어로, ‘뉴스’라는 중의적 의미 역시도 엿보인다.

동서남북의 유일한 음반인 이 앨범은 이렇게 양병집의 지휘 아래 지금은 사라진 강남의 영동 스튜디오와 서울 스튜디오에서 보름을 텀으로 두 번에 걸쳐 진행됐다. 음반에 ‘친구들이’로 표기된 재킷 디자인은 멤버들이 미팅에서 만난 서울여대 학생들이 맡아줬고, 김광민과 교체된 초기 멤버 이관형도 녹음에 참여해 ‘하나가 되어요’, ‘빗줄기’, ‘밤비’에서 일렉트릭 피아노로 함께 했다. 오프닝 트랙 ‘하나가 되어요’는 다중 키보드군(群)에 의한 풍성한 사운드와 매력적인 코러스를 가진 곡이다. 그나마 음반 수록곡 가운데 어느 정도 대중성을 띠고 있어, 몇 차례 되지는 않았지만 방송을 통해서도 동서남북이라는 이름을 올려놓을 수 있게 만든 곡이다. ‘빗줄기’는 앞서 이야기한 동서남북 사운드의 특징을 그대로 가진 곡. ‘나비’는 말 그대로 동서남북 사운드를 대표하는 트랙이다. 초반부 고음과 저음을 종횡무진 휘저으며 공간감을 극대화하는 신시사이저, 오르간, 기타의 어우러짐, 다시 주위를 환기시키는 날카로운 신시사이저의 도발 등 아름다움과 몽환적 느낌을 고스란히 간직한 한국 프로그레시브록의 명곡이다. 그런가하면 도발적인 기타 사운드와 넘실대는 오르간의 공격적인 연주가 경쟁하듯 펼쳐지는 ‘모래 위에 핀 꽃’의 하드록적인 접근은 유럽발(發) 헤비 심포닉록 밴드들의 사운드를 연상시킨다. 이 외에도 양병집의 음반에도 이후 수록된 바 있는 어쿠스틱 기타가 리드하는 보사노바풍 연주곡 ‘밤비’, 단순한듯하지만 계속해서 청자를 나른한 몰입으로 몰아가는 ‘바람’의 후주 연주 등 어느 한 곡 녹록하게 넘길 트랙이 없다. 비록 제작자 양병집이 자신의 자서전 <두바퀴로 가는 자동차>(2012)를 통해 잠도 제대로 못 잔 멤버들에 의해 녹음되었다는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1981년, 음반이 발매됐을 당시 국내 음악계 상황은 ‘진보적’인 동서남북을 수용하는 데 무리가 있었다. 물론 KBS에서 주관했던 ‘국풍 81’에는 기성밴드로 출연한 이들에게 심사위원들이 1등상을 주는 등 해프닝이 있을 정도로 그 실력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했던 밴드라는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시상이 있기 전 정정되어 1위 입상은 이용에게 돌아갔다). 하지만 어쨌거나 본격적으로 방송국을 돌며 홍보에 매진했던 양병집에게 돌아왔던 대답은 ‘시기상조’라는 공허한 메아리뿐이었다.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김득권을 필두로 한 명 두 명 멤버들이 이탈하게 되고, 동서남북은 해체의 수순을 밟는다. 키보드를 맡았던 김광민은 ‘국풍 81’ 당시 ‘을지문덕’으로 연주상을 받으며 함께 활동했던 다른 밴드 시나브로의 멤버로 다시 MBC 대학가요제에 참가해 ‘안개’로 동상을 받은 바 있다. 시나브로 이후에는 위대한 탄생의 멤버로 잠시 활동하다가 미국유학 이후 재즈/뉴에이지 피아니스트로 현재까지 꾸준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박호준 역시 작곡, 편곡과 프로듀서 겸 디렉터로 활동하며 드라마나 영화 OST를 통해 계속해서 우리와 만나고 있다. (20160222)

글 송명하 (파라노이드 편집장)


양병집 선생님을 공식적으로 만난 건 두 번이다. 예전 핫뮤직 시절 기사를 위한 인터뷰가 한 번 있었고, 동서남북과 양병집 선생님의 [넋두리] 재발매 음반을 위해 한 번 더 만났다. 2015년 12월 23일이다. 그리고 2019년엔 산본역 근처에서 우연히 만나 패스트푸드점에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2021년 크리스마스에 생각도 못한 부고를 페이스북에서 접했다. 하루 전날인 12월 24일 세상을 떠나셨다고.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2015년 12월 23일, 합정역 부근 양병집 선생님 인터뷰 마치고.

 

 

양병집 [The Sounds of Yang Byung Jip 1974-1993]

한국 포크의 독보적 존재 양병집, 초기 걸작의 집대성 양병집, 그의 이름엔 언제나 ‘김민기, 한대수와 함께 국내 3대 저항가수’라는 표현이 붙는다. 하지만 그러한 표현보다 오히려 ‘넋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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