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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ER'S PRIVATE LIFE/BOOKSHELF

정진영의 ‘왓 어 원더풀 월드’

자전거 타는 걸 좋아한다. 언제가 될 진 모르지만 국토 종주 자전거 여행 역시 꼭 해보려고 마음먹고 있다. 2007년, 퇴원할 때 병원에서 정기적인 운동을 권했다. 하지만 특별히 운동에 취미가 없었던 난 마땅한 운동 거릴 찾아 취미를 붙이지 못했다. 그러던 차에 국환이가 마침 자전거가 두 대 있다며 철티비 자전거 한 대를 줬다. 받아서 타고 집에 돌아오는 동안 몇 번이나 넘어질 뻔했다. 사실 자전거는 초등학교 때 잃어버리고 난 뒤 제대로 타본 기억이 없다. 하지만 조금씩 조금씩 자전거 타는 거리를 늘여가며 재미가 붙었다. 자동차를 타고 보는 창밖 풍경도 좋지만, 자전거를 타며 바라보는 풍경은 사각의 프레임을 모두 걷어버린 새로운 세상이었다. 완주하진 못했지만 금강 자전거길을 달리기도 했고, 작년엔 버킷리스트 가운데 하나였던 제주 환상 자전거길 종주를 했다.

그런데, 자전거 국토 종주를 소재로 한 소설이라니. 일찌감치 펀딩에 참여했고, 책이 나오자마자 받을 수 있었다. 장편이라고는 하지만 술술 읽히는 가벼운 전개와 볼륨으로 순식간에 완독했다. 작가 정진영은 일간지 기자 출신 작가다. 책 속에는 저자의 본업이었던 문화부는 물론 사회, 경제 쪽에서 몸으로 경험했던 해박한 실전 지식이 녹아있고, 일간지에 연재했던 <식물왕>, 에세이집 <안주잡설> 등에서 만날 수 있었던 섬세하고 구수한 입담 역시 반가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책을 읽어 내려가며 마치 내가 자전거를 타고 함께 국토 종주를 하는 것 같은 대리만족도 빼놓을 수 없겠고. 

 

(전략) 엉덩이가 몹시 아파 자리에 앉기조차 힘들었다. 손바닥은 마치 회초리를 여러 대 맞은 것처럼 저렸다. 온몸이 그야말로 만신창이였다. 이재유와 임정연뿐만 아니라 자전거길을 잘 안다고 떠들었던 우희철의 모습도 나와 다르지 않았다. (후략)

 


자전거를 타본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는 문장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실제로 작가 정진영은 회사를 그만둘 무렵 미니벨로를 한 대 사서 무작정 국토 종주에 올랐다고 한다. 그 내용은 개인 블로그를 통해서도 볼 수 있고, 이 소설의 모태가 되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을 거다. 내용은 로또 1등에 당첨된 뒤 사라진 직원을 찾기 위한 박상익, 우희철, 이재유 그리고 임정연의 자전거 추격을 주된 내용으로 한다. 그들은 출발할 때 마음과는 달리 라이딩 중에 자신을 과거를 떠올리며 잃어버렸던 꿈에 대해 생각한다. 사실 작가 정진영과는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는 사이다. 본인은 아니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주인공 상익은 여러모로 작가와 닮았다. 때문인지 책을 읽는 동안 머릿속엔 마치 영화와 같이 작가가 자전거를 타는 모습이 그려졌다. 책 마지막에 가사만 등장하는 ‘도시의 밤’이라는 노래에 작가의 또 다른 자아(?) 육지거북 버전의 멜로디가 붙을 것 같기도 하고.

그러고 보니 이번에 읽은 책의 제목도 노래 제목이다. 루이 암스트롱(Louis Armstrong)이 1967년 발표했던 노래. 아름다운 원곡의 가사와 대조적으로 ‘What A Wonderful World’는 참혹한 상황을 설명할 때 역설적으로 쓰이곤 한다.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책 제목을 보고 로빈 윌리엄스(Robin Williams)가 주연을 맡았던 1987년 영화 ‘굿모닝 베트남’에서 디제이가 선곡한 ‘What A Wonderful World’가 흐를 때의 상반된 화면이 떠오를 것 같다. 소설 속 인물들에게 ‘원더풀 월드’의 의미가 각각 다른 것처럼, 독자 역시 개인만의 ‘멋진 세상’이 따로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공감할 구석이 많아 마치 내 일기처럼 읽어 내려간 책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페달을 밟으며 머릿속에 떠오르는 많은 것들. 내 경우엔 미래 보다 과거의 것이 많았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니 다시 온몸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요즘 이상하게 자전거에서 잡음이 들려 다음 주엔 자전거 정비를 맡기기로 했는데, 자전거를 찾으면 또 계획 없이 한 번 훌쩍 떠나볼까 한다. 혼자 타는 게 좋지만 지금까지 그렇게 했으니 이번엔 함께할 파트너 한 명쯤 있어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소설 속 등장인물 가운데 임정연 정도면 어떨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