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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ER'S PRIVATE LIFE/BOOKSHELF

이해경의 ‘머리에 꽃을’

요즘도 방송에서 관련 곡을 선곡할 때, 고등학교 동창과 했던 이야기를 늘어놓곤 한다.

우린 그때 들국화, 김현식 없었으면 나쁜 길로 빠졌을 거예요.”

뭔가 답답하지만, 위로받을 곳도, 하소연할 곳도 없었던 그때. 우린 다리 밑에서 들국화, 김현식의 노래를 목이 터지라 불렀다. 노래만은 우리 맘을 이해해 주는 것 같았다.

 

들국화의 노래를 처음 들은 건 고3 때로 기억한다. ‘젊음의 행진11’도 아닌 또 하나의 TV 프로그램이 생겼다. MBC-TV젊음의 광장이다. 오래 방송되진 않았지만, 방송이 생기고 초창기에 조동진 특집을 했던 것 같다. 출연한 조동진은 음반은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음악 잘하는 후배라며 게스트 밴드를 소개했다. 그때 들국화라는 이름이었는지, 아니면 이름이 없었는지 잘 기억나진 않는다. 하지만 그들은 첫눈에도 쉽사리 잊히지 않을 범상치 않은 외모를 가지고 있었고, 마치 해외의 음악을 듣는 것 같은 자작곡을 연주했다. 충격은 오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게스트 밴드의 앨범이 발매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마침 체력장을 마치고 일찍 끝난 날, 레코드숍에 들러 따끈따끈한 들국화의 음반을 집어 들었다. 바늘이 한 곡 한 곡 넘어갈 때마다 소름이 돋았다. 노래만 듣고 가사를 쉽게 알아채지 못해, 정말 내가 좋아하는 해외 록 음악을 듣는 것 같았다. 그때부터 난 들국화의 전도사가 되어 친한 친구에게 포교를 시작했다.

 

첫 대전공연 포스터

대학에 입학하고 오리엔테이션이 있던 날, 지금 성심당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던 컬처클럽에서 들국화의 대전 첫 공연이 열렸다. 시내엔 전인권, 최성원, 허성욱의 사진으로 만든 포스터가 곳곳에 걸렸다. 오리엔테이션을 도망쳐 나온 내 발길이 컬처클럽으로 향한 건 당연했다. 입장료는 아마 주스 한 잔 값이었던 것 같은데, 난 음반에 함께 들었던 공연 할인권을 이용해 싸게 들어갔다. LP에 할인권이 없는 건 그때 썼기 때문이다. 넓지 않은 카페, 그리고 포스터에 세 명의 사진만 있었기 때문에 어쿠스틱 공연이 되지 않을까 했는데, 전인권, 최성원, 허성욱은 물론 손진태, 주찬권까지 5인조 풀 밴드 편성의 공연이 관객을 압도했다. 1집에 담긴 노래는 물론, 스틱스나 홀리스의 노래까지. 공연이 끝난 뒤에도 여운은 오래갔다. 쉽사리 집으로 발걸음을 돌리지 못한 나는 주변을 서성이다 2회차 공연을 보러 다시 공연장으로 들어갔다. 입구에선 1회 공연을 봤는데 두고 온 게 있어서 잠시 들어간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렇게 난 들국화의 첫 대전공연을 두 번 봤다.

 

시민회관 공연 전단

대학 1학년 때 시민회관에서 열린 공연은 재수하던 친구들과 함께 봤다. 친구들은 들국화의 공연을 보기 위해 충남학원 2층에서 뛰어내렸다. 오리엔테이션을 도망친 나는 상대도 안 됐다. 그땐 최구희까지 가세한 6인조 라인업이었다. ‘쉽게’, ‘너랑 나랑등 라이브 앨범과 2집에 실리기 전 신곡을 들으며 기대를 부풀렸다. 마지막 공연은 충무체육관에서 본 것 같다. 마룻바닥에 앉아서 공연을 볼 때 저쪽 옆에 한 여학생이 울던 모습이 기억난다. 난 “왜 이 멋진 곡을 들으며 왜 눈물을 흘릴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 학생은 성원이 오빠가 날 한 번도 안 봤어.” 하며 계속해서 울었다. 그 뒤 들국화를 만난 건 1998년 여의도 KBS 홀에서 열린 들국화, 10년 만의 해후 It’s Our Exit’였다. 주축 멤버 허성욱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뒤였다. 2000, 학전 소극장 공연에서 만나긴 했지만, 신곡 발표로 이어지지 못한 해후는 다시 그들을 혼자로 돌려놨다. 2013, 합정의 인터파크 아트센터 공연과 신곡 발표, 방송 출연, 인천 펜타포트록페스티벌 공연 등 이제 정말 들국화가 다시 돌아왔구나!”하는 기대도 잠깐, 이번엔 주찬권이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행진은 이어지지 못했다.

 

며칠 전 방송 마치고 시간이 비어 알라딘중고서점에 들렀는데 머리에 꽃을이란 제목의 소설이 눈에 들어왔다. 전인권, 허성욱 추억 들국화의 타이틀.

행복했다. 소설을 읽는 내내 전인권의 들국화에 사로잡혀 있어서. 또한 고통스러웠다. 소설을 잠시 잠깐 놓아야 하는 순간조차도. 전인권의 들국화로부터 벗어날 수 없어서. (후략)”

책 제목과 소설가 함정임의 추천사를 보고 책을 들고나오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다. 그리고 홀린 듯이 하루 만에 읽어 내려갔다.

 

소설은 카투사 복무 중 인연을 맺은 화자이자 주인공 이상현, G.I. 코디어, 그리고 강임기를 둘러싼 이야기다. 사실 소설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을 얘기하자면, 책 자체는 큰 매력이 없었다. 내가 잘 알아채지 못했기 때문이겠지만, 글을 읽어 나가며 중요한 복선이 깔리고 나중에 아하!”하는 감탄사로 이어지는 게 아니고 그저 화자의 이야기만 기다리며 따라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교하게 짜인 구성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많은 우연이 글의 큰 줄기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도 아쉬웠다. 하지만 위 세 명의 등장인물, 또 관련 인물의 서사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들국화는 동시대를 살았던 들국화 세대의 한 사람으로 마치 당시 일기를 꺼내 보는 것처럼 아련하지만 흐뭇했고, 부끄러웠다.

 

(전략) 말한 뒤에 그녀는 둘 사이에 놓여 있는 우산을 집어 들어 접힌 사이사이 삐져나온 자락들을 가지런히 다듬고 있었다. 맵시 있게 움직이는 그녀의 하얀 손가락을 눈에 담으며, 나는 그림자처럼 나를 따라다니며 헐떡이던 목마른 개 한 마리가 꼬리를 내리고 저만치 물러가는 것을 보았다. 그날 종일토록 오지 않는 줄 알았던 예쁜 비는, 둥지에 내려앉은 작은 새처럼 다소곳한 모습으로, 말없이 내 우산을 쓰다듬고 있었다. (후략)

 

혹은

 

(전략) “그 노래에 이런 가사가 나오잖아요. 그러나 지금은 지난 얘길 뿐이라고...... 지금은 달라...... 될 수가 없다고......”
그러다가 미아는 안경을 벗고 나를 향해 밝게 웃어 보이고 나서는, 눈을 감고 작은 소리로 천천히 그 노래를 처음부터 부르기 시작했다. 미아의 약간 풀어진 발음이, 카페 전인권에서 나를 자꾸 형, 형, 하고 부르며 우리말을 더듬거리던 코디어를 생각나게 했다.
“형들이 모이면...... 술 마시며 밤새도록...... 하던 얘기 되풀이해도...... 싫증이 나질 않는데...... 형들도 듣기만 했다는...... 먼 얘기도 아닌...... 십여 년 전에 바로......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지구 안에...... 어떤 곳에...... 많은 사람들이...... 머리에 꽃을...... 꽂았다고......” (후략)

 

나보다 4년 전 태어나 2002<그녀는 조용히 살고 있다>로 제8회 문학동네 소설상을 받으며 정식 등단한 이해경 작가는 <머리에 꽃을>에서 이런 식으로 예고 없이 불쑥불쑥 들국화를 끄집어낸다. 등장인물과 함께 난 라디오에서 오후만 있던 일요일, 술을 마시며 매일 그대와를 들었고, 초기 날카롭던 들국화의 공연에서 한껏 들떴으며, 재결합 공연에서 허성욱의 영전에 흰 국화를 올리는 멤버를 보며 가슴 아팠다. 앞서 아쉽다고 이야기하긴 했지만, 이렇게 다시 들국화를 소환 시켜준 것만으로도 소설을 읽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며칠 뒤면 추석이다. 오랜만에 고등학교 동창을 만날 계획이다. 나와 들국화의 기억을 공유하는 친구들. 이제 다리 밑에서 목청껏 들국화의 노래를 부를 일은 없겠지만, LP 카페라도 가게 된다면 신청곡 메모지엔 들국화 노래를 빼곡히 적어야겠다. 가능한 만큼 볼륨을 크게 키워 틀어달라는 부탁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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