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신간 에세이를 산 게. 그것도 음악인이 낸 자서전이나 음악 관련 에세이도 아니고 카페와 커피, 그리고 사이드 디시에 관한 책이라니. 저자 오승해는 <핫뮤직>에 근무했던 기자 선배다. 내가 입사하기 전 퇴사한 저자는 이후 많은 사회 경험을 쌓았고, 커피 전문 매거진에 기자로 근무한 이력도 있다.
책을 읽으며 생각해 보니 지금까지 맛있는 커피를 마시기 위해 어떤 카페를 찾아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것 같다. 카페는 그냥 누군가를 만나기 위한 곳이나, 노트북을 가지고 가서 작업을 하는 공간 이외의 의미가 되지 못했다는 얘기다. 아, 예전에는 음악을 듣기 위해 음악다방을 찾기도 했다. 그래, 그땐 분명 ‘다방’이었다. 그 뒤엔 커피숍이었고. 요즘은 다방이나 커피숍이라는 용어 말고 카페라는 이름이 일반적이며 이름이 풍기는 느낌만큼 공간도, 커피도 많은 차이가 있는 것 같다.
다방에서는 그 명칭처럼 커피가 차의 종류 가운데 하나의 메뉴였다. 다양한 종류의 커피가 아니고 유자차, 쌍화차, 율무차… 와 함께 단 한 가지의 커피가 메뉴판에 있었고, 대개 인스턴트 가루 커피를 뜨거운 물에 타서 줬다. 커피를 서빙해 주는 종업원은 설탕 몇 스푼 크림 몇 스푼인지를 물어보고 테이블에 놓인 커피에 타 줬다. 하지만 ‘장소’로서의 다방은 그 매력을 잃어가고, 배달로 그 명맥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인스턴트커피가 일반 가정에 급속도로 보급됐기 때문이다.
1968년 5월에 설립한 동서식품 주식회사는 1970년 6월 미국 제너럴 푸드사와 커피 제조 기술 도입 계약을 체결하고, 인천시 계양구 효성동 대지 4,700여 평에 공장을 세웠다. 그리고 9월부터 국내 제조로는 최초인 ‘맥스웰 하우스 레귤러 그라인드 커피’를 생산하면서 인스턴트커피 시대를 열었다. 이렇게 시작된 인스턴트커피 시대는 1970년대 중반으로 접어들며 다방의 경영에 커다란 타격을 입혔다. 다방에 가지 않고도 끓는 물만 부어서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커피숍에선 드립커피를 내렸다. 흔히 커피잔이라고 부르는 비교적 작은 잔에 커피가 담겨 나왔다. 테이블마다 설탕과 크림이 따로 있어서 필요한 만큼 타서 마셨다. 다방과는 차별성이 있게 파르페, 비엔나커피, 아이리시커피 등 다양한 메뉴가 있었지만, 돈 아까워서 내 돈 내고 마셔본 기억은 없다. 그저 미팅에 나온 여학생들이 파트너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주문했던 걸로 기억되는 커피다. 제대한 뒤 커피숍에 가니 이전까지 소위 커피잔이라고 부르던 작은 잔이 아니고 큰 사이즈의 머그잔이 보였다. 여학생들은 설탕과 크림 대신 따뜻한 물을 주문해서 커피에 타 마시곤 했다.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선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은 1998년 6월 할리스커피 강남점이라고 한다. 같은 해 자뎅이 들어왔고, 1999년에는 스타벅스가 이대 앞에 처음 문을 열었다. 2000년대에 접어들며 탐앤탐스, 커피빈, 이디야, 투썸플레이스, 파스쿠찌 등 수많은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이 앞다퉈 입점했다. 에스프레소, 카푸치노, 라떼에서 헤이즐넛과 같은 향 커피에 이르기까지 생소한 단어가 메뉴판을 채웠다. 프랜차이즈 커피숍의 공격적인 세 넓힘 속에서 나름 유명했던 시내의 커피숍들은 하나둘씩 간판을 내렸다.
그 뒤론 나 역시 프랜차이즈 커피숍에 익숙해졌기 때문일까. 아니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누군가를 만나기 위한 장소, 혹은 작업을 하기 위한 공간으로서의 의미밖에 되지 못해서였다는 표현이 맞겠다. 어쨌든 주변에 개성 있고 커피 마니아의 마음을 사로잡는 카페가 있다는 건 이 책을 읽으면서야 알 수 있었다. 당연하겠지만 언급된 카페 가운데 내가 가 본 곳은 한 군데도 없다. 30곳의 장소를 기록한 30편의 일기와 7편의 인터뷰로 구성됐지만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은 단순히 커피, 혹은 디저트의 맛을 평가하거나 카페 대표나 바리스타의 성공 사례를 탐구하는 책이 아니라 에필로그에서 언급한 것처럼 저자가 다녀온 ‘서른 번의 추억 여행’이다.
얼마 전 게스트로 출연하는 방송에 커피나 카페와 관련된 노래를 선곡한 적이 있다. 그때 음악 소개와 함께 이러한 소재를 가진 노래 가사는 주로 이루어지지 않는 연인의 관계를 표현한 곡이 많은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물론 오승해의 <나의 카페 다이어리>에 이런 사연은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30편의 다이어리는 ‘라떼’에 대한 달콤하고 폭신한 사랑과 ‘카페’라는 공간에 대한 따뜻한 애정으로 차고 넘친다.
(중략) 특히 ‘빼빼로 데이’ 시즌마다 한정으로 생산되는 <굴림>의 뚱뚱한 페이스트리 초코스틱은 받고 싶은 선물 중 하나. 그러나, (내게) 줄 사람이 없는 관계로 내가 사서 (해마다) 먹고 있다. (후략)
만일 이 책을 샀는데 저자의 사인이 필요하다면 책에 언급된 <굴림>에 11월 11일 들러 보길 권한다. 어김없이 페이스트리 초코스틱을 주문할 저자를 마주칠 수 있을 테니까. 대신 스스로 사서 먹는 저자의 1년 만에 맞는 행복을 빼앗는 우를 범하지 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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