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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ER'S PRIVATE LIFE/PRIVATE LIFE

‘2’에 관한 몇 가지 에피소드

“두시 어떠세요?”
인터뷰를 하다보면 언제나 시간약속을 하게 마련이다. 개인적으로 약속을 하는 시간은 늘 오후 두시다. 물론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고 일종의 습관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습관이 시작된 것은 고등학교시절부터다. 정숙이라는 친구를 알게 되어 처음으로 약속시간을 잡게 되었는데, 도무지 시간약속을 몇 시에 해야할지 감이 오질 않았다. 마침 작은형에게 물어보니 두시가 적당하다고 했다. 점심시간이 지난 이후의 시간이니, 점심값을 걱정할 필요도 없고, 낮 시간이니 만나자마자 다른 곳으로 이동할 필요도 없이 경제적인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절호의 시간이라는 설명이었다. 이후로는 정숙이를 만날 때는 물론이고, 나의 낮 시간 약속은 무조건 두시로 굳어졌다. 또, 그 친구를 만나며 처음 드나들게 된 커피숍. 당시 나는 주문을 해서 나온 커피에 커피와 크림을 몇 스푼을 넣어야 할지도 몰랐다. 얼핏 돌아본 옆 테이블의 사람들이 각각 두 스푼씩을 넣는 것을 보고, 곧바로 따라했다. 지금도 난 인스턴트 커피를 마실 때 커피와 설탕, 크림을 모두 두 스푼씩 넣어서 먹는다. 맛을 떠나서 더 넣거나 덜 넣을 아무 이유도 없었고, 이유를 생각해본 적도 없었던 것 같다.

대학시절, 동아리 활동을 하며 알게된 정미는 눈이 몹시 나빴다. 길에서 마주치더라도 안경을 끼지 않았을 경우에는 바로 앞에 다가갈 때까지 앞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 제대로 분간하지 못했다. 지금 떠오르는 정미에 대한 기억은, 나를 알아 볼 정도의 거리에 왔을 때 손가락으로 ‘V’를 그렸던 모습이다. 물론 나를 알아봤다는 표시는 아니고, 그렇다고 승리를 의미했던 것은 더욱 아니다. “글세, 2년 만에 고향 친구가 찾아왔지 않겠어요?”, “아니, 주인 아주머니가 수박 두통을 잘라서 나눠먹자고 하시길래 그만” 내지는 “버스 두 대를 계속해서 놓치는 바람에...” 이렇게 2와 관련된 여러 가지 핑계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정미는 동아리의 정기모임 시간이나, 따로 스터디가 있을 때, 아니면 개인적인 약속들까지도 꼭 두시간이 늦었다. 처음에는 나무라던 친구들도 익숙해 진 후에는 오히려 가끔씩 시간에 맞춰 나오면 의아해했다. 결국 그녀는 시간을 잘 지키지 않는 것을 꼬투리 삼은 한 남자의 아내가 되었다. 지난 해 열렸던 산울림의 공연에서 우연히 정미를 만난 적이 있는데, 콘서트를 시작하기 이전에 만난 걸 보면 결혼과 함께 예전의 2시간 늦는 버릇은 고쳐진 듯 하다.

‘원샷’을 눈 여겨 보고있는 독자들이라면, 꼭 1년 전 희와 은정이라는 두 친구에 대해서 했던 이야기가 생각날 지도 모르겠다. 그때 곧 만나보리라고 글을 썼지만, 세상의 일들을 그렇게 내 마음대로 되지는 않나 보다. 은정이는 그 후로 몇 차례 만나 반가운 시간을 가졌지만, 희는 잠시 귀국을 마치고 미국으로 다시 돌아가 아직 만나지 못했다. 희와 은정일 처음 만난 건 벌써 지금부터 20년 전이다. 여러모로 적응하지 못했던 학과 생활, 허울 없이 지내던 여자 동기들은 그렇게 둘밖에는 없다. 다시 만나게 된 기념으로 은정이는 지난해 말 따뜻한 스웨터를 선물해 줬고, 희는 멀리 미국에서 내 생일날은 축하 카드를, 발렌타인 데이에는 초콜릿 두상자가 들어있는 두툼한 소포를 보내왔다.

사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숫자는 3이지만, 2라는 숫자는 어느 샌가 이렇게 내 생활 가까이에 와 있나보다. 어쩌면 매사에 소극적인 성격 탓인지도 모른다. ‘첫 눈’은 좋지만 그 전의 가슴 설렘이나 두근거림이 싫고, ‘마지막 잎새’, ‘막차’의 의미는 알지만 막상 마주할 때의 그리움과 안타까운 시간들은 무섭다. 그렇기 때문에 시작도 아니고, 과하지도 않은 2라는 숫자가 언제나 입 언저리에 걸쳐 있는 건 아닐까.

“그래도 2년은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핫뮤직에 입사할 때 면접 아닌 면접을 치르면서 사장님께 드린 말씀이다. HWP에서 따옴표 찍는 법, 전문, 타이틀, 부제, 꼭지명에서 핫뮤직식 맞춤법에 이르기까지 OJT를 받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이번 호로 입사 2주년을 맞았다. 물론, 2년이면 내가 하려고 했던 몇몇 일들을 끝마칠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기대감 이외에 특별한 이유 같은 것은 없었다. 언젠가 입버릇이 되어버린 2라는 이야기가 튀어나온 것 뿐 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지난 2년을 돌이켜 보면 짜릿한 성취감보다는 조바심이나 안타까운 감정들이 더 많았던 것 같다. 물론 스스로 생각해 봐도 무엇하나 이루어 놓은 것은 없다. 그저 가지고 있는 주소록에 뮤지션들과 음반사들의 전화번호가 늘어났고, 집안에서 굴러다니던 해 묵은 천덕꾸러기 다이어리들이 모두 빼곡한 글씨로 채워졌다는 것. 아니면 인터뷰 이후 정성스럽게 라벨을 붙여 보관하는 MD의 숫자가 많아졌을 뿐이다. 입사당시 내가 했던 말을 기억하는 누군가가 “2년이 다 되었는데, 이젠 무얼 할거니?”라고 물어본다고 해도 마땅히 대답할 말도 없다. 그저 눈치를 봐 가며 “2년이라뇨, 아직 시작도 못 한걸요. 앞으로 2년은 더 해봐야죠.”라고 해야할까.

밤 새워 글을 쓰는 동안 밖에 나가보니, 가는 겨울을 아쉬워하는 흰 눈이 쌓였다. 첫 눈도, 두 번째 눈도 아니지만, 이미 익숙해 질 법도 하지만 언제나 낯선 서울에서 맞는 마지막 눈도 아니리라 믿는다. 마감이 끝나면 입사 2주년을 자축하며 딱 소주 두 병만 마셔야겠다.

(월간 핫뮤직 2006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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