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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ER'S PRIVATE LIFE/PRIVATE LIFE

다이어리

연말이나, 연초에는 어김없이 몇 개의 달력과 함께 다이어리가 생긴다. 한해의 날짜별로 무언가를 적게 되어있는 그런 공책 한 권.

작년에도 두 권의 다이어리를 가지고 있었다. 한 권은 사무실에서 하는 업무에 관해서 적으리라 생각했고, 또 하나는 개인적으로 웹사이트 관리나 업데이트 계획 등으로 정리 해 두려고 표지에 ‘아이디어 뱅크(Idea Bank)라고 제법 그럴 싸 하게 모양을 내어 글씨를 쓰고, 개인 신상을 쓰는 난을 정성스럽게 채웠다. 그리고, 1월 며칠까진 무엇을 하고, 또 언제까진 무엇을 하고 이 색깔 볼펜, 저 색깔 볼펜.. 알록달록 하게, 자를 대고 줄도 그어 가면서 정리했다.
맨 뒤쪽의 주소 쓰는 난은 예전과 달리 이메일과 휴대전화를 쓰는 칸이 생겼다. 그 전 같으면, 전 해의 다이어리를 보고 주소록을 하나씩 채워갔겠지만, 요즈음은 휴대전화에 메모리된 전화번호들을 찾아보면서 꼭 필요할 것 같은 전화번호들을 적어둔다. 휴대전화의 메모리 한계가 다 될 정도가 되면 어김없이 전화기를 잃어버리는 탓에 저장시킬 용량의 한계를 걱정할 필요는 거의 없다.
그 다음 순서는 문구백화점에 찾아가, 다이어리를 장식할 여러 스티커들을 사는 순서다. 여러 가지 캐릭터로 도안된 조그맣고 예쁜 스티커들과 색색깔의 포스트 잇들을 크기별로 준비한다. 조금 더 중요한 페이지의 인덱스를 남기기 위한 형광색의 포스트 잇은 물론 필수다. 문구백화점의 카운터에서 계산을 할 때 옆에 놓여진 필기구들에 눈을 돌리는 순간, 오기전에 줄을 긋고, 볼펜으로 정리하면서 “조금 더 얇은 팬과 형광팬이 있었으면 좋았을걸”이라고 혼자 생각했던 부분이 떠오른다. 계산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형광팬과 아주 얇은 팬들을 혹시나 싶어서 몇 자루씩 집어넣는다.
그리곤, 집에 돌아와 쇼핑하하느라 피곤해진 몸을 잠시 누인다. 사가지고 온 여러 가지 아이템들로 다이어리를 꾸미는 일은 내일 맑은 정신으로 하리라 다짐하고, 머리맡에 다이어리와, 오늘 사온 여러 학용품들을 놓고 깊은 잠의 세계로 빠져든다.

하지만, 지금 펴본 지난해의 다이어리는 그게 마지막 흔적이다. 사무실 책상 위의 주별로 넘기게 되어 있는 탁상 달력도, 3월 언제쯤인가의 날짜로 아직도 놓여있다. 그때 사온 여러 가지 팬들은 여기 저기 흩어져 있고, 스티커와 포스트 잇들에는 끈끈한 부분에 먼지가 보기 싫게 자리잡았다.
올해에도 어김없이 몇 권의 다이어리와, 주별로 넘기게 되어있는 탁상달력이 생겼다. 다이어리에는 해마다 하는 일처럼 마지막 페이지에 이름과 전화번호, 주소 등 신상명세를 채워 놓는다. 그리고는....

올해의 다이어리는 정말 알차고 행복한 일로만 채워지길 바라면서 노트를 덮는다. 이제 언제 또 다이어리를 펴고, 볼펜을 대는 일이 생길지 모르겠지만.

(월간 핫뮤직 2005년 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