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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ER'S PRIVATE LIFE/BOOKSHELF

사사키 조의 ‘경관의 피’

 

 

이 핑계, 저 핑계... 책 읽은지 참 오랜만이다. 오랜만이라 그런지 속도도 잘 나지 않고... 

 

어쨌거나 이번 설 연휴동안 읽은 소설은 사사키 조의 '경관의 피(警官の血)'다. 사실 책을 읽기 전에 '피'는 말 그대로 블러드(blood)를 의미하는 줄 알았는데, 내용을 읽고보니 리니지(lineage)다. 말 그대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화자들인 안조 세이지, 안조 다미오 그리고 안조 가즈야, 이렇게 삼대어 걸친 경찰관 가족의 이야기들. 두 건의 살인 사건을 조사하던 안조 세이조가 의문의 추락사를 하고, 그 아들 안조 다미오는 그 진실에 다가가기 직전 총에 맞에 순직한다. 그리고 그 사건들의 진실들은 결국 손자인 안조 가즈야에 이르러 드러난다. 이렇게 삼대라는 한 가족의 시간은 전후 일본의 황폐한 배경에서 거품 경제로 들뜬 시대를 거쳐 우리와 동시대로 흘러온다. 한 편의 역사 드라마를 보듯 중일전쟁 이후 생필품을 배급받던 시대를 거쳐 맞이한 경기 회복과 함께 구 군인 추방해제. 또 사토 에이쿠의 방미를 저지하기 위한 전공투의 운동, 적군파와 일본 극좌익 테러 조직을 향한 공안의 활동 등 많은 사건들이 주인공 가족 주위에서 픽션과 넌픽션의 경계를 계속해서 넘나든다.

 

사실 2008년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에서 1위를 했다고는 하지만, 미스테리 소설의 즐거움인 '반전의 쾌감'을 주는 부분은 없다. 의문의 죽음을 파해치는 과정은 두 권으로 이루어진 분량이나 삼대라는 일족의 시간 속에서 느슨하게 진행되고, 결론은 어쩌면 독자들이 이미 머릿속에 생각하고 있던 내용을 확인시켜주는 장치 밖에는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앞서 피의 의미가 혈통의 의미라고 이야기한 것 처럼, 시간의 흐름 가운데서 어떤 것이 정의이고 경찰로서 어떤 판단이 옳을 지에 대한 미묘한 차이들은 그 다음 세대가 자신의 아버지의 모습을 회상하는, 혹은 다시 조사하는 과정에서 큰 힘을 얻는다. 그래서 어쩌면 이 소설은 미스테리물이기보다 가족물이라고 보는 편이 더욱 설득력을 가질지도 모르겠다.

 

처음엔 진도가 잘 나가지 않아서 다음으로 미루고 다른 책을 읽을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다 읽고 드는 생각은 가족을 한번쯤 다시 생각하게 되는 설날 연휴에 읽은 게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나와 등장인물들의 배경 가운데서 일치하는 점이란 한 부분도 찾아보기 어렵지만, 어차피 우리는 모두 아버지라는 존재 또 가족이라는 존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니 말이다...


손자인 안조 가즈야의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푸치니의 투란도트 중 '공주는 잠 못 이루고'다. 그의 상관 가가야가 언제나 자신의 카오디오에 넣고 듣던 곡. 하지만, 가사 내용처럼 계혹해서 "나의 승리여"를 들을 기회는 그렇게 오래 가지 못한다.

 

 


 

경관의 피

2008년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1위를 차지한 사사키 조의 장편소설. 두 건의 살인과 한 건의 의문사를 추적하는 정통 미스터리의 틀 위에 일본의 근현대사에서 가장 뜨거웠던 시기의 격변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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