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쿠이 도쿠로. 이 작가 정말 무섭다. 지난번 <통곡>의 엄청난 반전 트릭도 놀랍지만, 덤덤하게 전개되는 <우행록(愚行錄)>에서 보이는 인간 심리에 대한 관조는 혀를 내두르게 만든다.
6명과 나눈 인터뷰 내용이 책의 주요 골자인데, 화자는 등장하지 않고 인터뷰이의 이야기만 담겨있다. 대화체긴 하지만 대화가 아니라 인터뷰이의 이야기다. 나도 인터뷰를 많이 하고 있지만, 인터뷰 할때 내가 생각했던 내용들이 이 책에도 고스란히 있다. 화자의 이야기에는 언제나 ‘자기 방어’와 ‘자기 과시’가 중심이 된다. 결국 모든 대답은 ‘자기 중심’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피살자에 대해 객관적으로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따지고 보면 자신들의 필터에 의해 걸러진 이야기들. 때문에 인터뷰의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서 피살자는 ‘사람 좋은’ 캐릭터가 되기도 하고, 그와 정 반대의 ‘재수 없는’ 캐릭터가 되기도 한다. 결국 그 결과에 대한 판단은 당연히 독자의 몫이기 때문에 그 결과 역시도 독자의 필터에 의해 걸러지게 될 것이다. 분야는 다르지만, 글을 쓰는 나 역시도 마찬가지일테고. 최대한 객관적으로 쓰려고 하지만, 결국은 나라는 가장 무서운 필터가 존재한다. 그러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지만, 쉽사리 헤어날 수는 없는 일종의 틀이다.
어쨌든 흩어져 있는 듯 보였던 6명의 인터뷰 내용들... “결국 그래서 어떻게 된 건데?”라는 결말이 보고 싶어서 쉽사리 책을 덮을 수 없던, 무서운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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