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동 작업실에서 인터뷰 중
팀 버튼 감독의 영화 ‘가위손’은 외딴 성에 살고 있던 에드워드가 한 화장품 외판원에 의해 우연히 마을로 내려오게 되는 사건으로 시작한다. 처음 에드워드를 본 사람들은 호기심으로 그에게 가까이 접근하려하지만 그 호기심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순진한 에드워드를 이용하려는 마음으로 이어지고, 결국 에드워드는 마을 주민들에 쫓겨 자신이 살던 성으로 되돌아간다. 비유가 적절할 지는 모르겠지만, 지난해 은퇴공연을 마친 신중현의 모습을 보면 가위손 에드워드가 떠오른다.1990년대 중반 이후 양적인 팽창을 거듭하던 우리 가요계는 ‘한국 락 역사 바로 세우기’라는 미명 하에 역사 속으로 사라진 한 뮤지션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일간지나 잡지들은 앞을 다투며 신중현의 인터뷰를 다뤘으며, 그의 음악을 처음 들어본 가수들도 최초로 제작되는 헌정음반에 참여하여 신중현의 곡을 따라 불렀다. 그러면서 신중현에게는 ‘한국 락의 대부’라는 별칭이 생겼다. 떠들썩했던 매스컴의 영향인지 이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를 막론하고 락의 대부가 누구냐는 질문에 서슴없이 신중현이라는 이름을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과연 처음에 의도했던 대로 과연 ‘한국 락 역사 바로 세우기’라는 명제는 어느 정도 실현이 된 것일까. 아쉽지만 10여 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도 그 대답은 ‘No’다.
매스컴에서 떠들썩하게 대서특필했다고는 하지만 그들의 인터뷰 내용은 거의 동일하다. 그의 음악적 성과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보다는 군부독재시절 억눌리고 핍박받던 이야기들에 그 포커스를 맞췄기 때문이다. 누구나 국내 락의 대부가 신중현임을 이야기하지만, 정작 그들에게 신중현의 대표곡을 물어본다면 ‘미인’과 ‘아름다운 강산’이외에 다른 곡의 제목을 떠올리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물론 그 두 곡이 신중현의 음악 활동에 있어서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말 그대로의 대표곡임에는 분명하지만, 그 이외에 숨겨져 있는 보석 같은 음악들은 그를 매스컴에서 중점적으로 다루기 이전에 그랬듯이 지금도 좀처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없다.
신중현은 사람들의 말을 그렇게 믿지 않는다. 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주변에 몰려든 많은 사람들은 유명해진 그의 이름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주머니만 채웠을 뿐, 공연과 음반발매 이후 신중현에게 돌아온 것은 엄청난 빚더미뿐이었기 때문이다.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단양에 있는 폐교를 사들였지만, 그 시작도 하지 못하고 운영비에 쪼들려 꿈을 접어야했고, 문정동의 클럽 ‘우드스탁’ 역시도 개점 휴업상태로 지금은 그저 신중현의 개인 연습실 정도로 전락해 버렸다.
신중현은 1950년대 말 첫 번째 음반을 발표하고 1964년 애드 포(Add 4)라는 그룹을 조직하여 국내에 우리 손으로 만든 최초의 락 넘버 ‘빗속의 여인’을 발표했던 뮤지션이다. 또 장미화, 김추자, 김정미, 장현, 박인수, 펄 시스터즈, 김상희, 임성훈, 토끼 소녀, 함중아 등 당대의 슈퍼스타들을 조련했던 유능한 작곡가며 프로듀서였다. 또 1980년 이후 묶였던 활동이 풀리면서 정수라, 강승모, 신정숙, 이문세, 김완선을 통해 새로운 곡을 발표하며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고, 조관우, 김건모, 신계행, 인순이 등에 의해 예전의 곡들이 리메이크되며 또 한번의 생명을 부여받았다. 지난 해 개봉했던 영화 ‘라디오 스타’에 나오는 박민수(안성기 분)은 언제나 ‘미인’을 입버릇처럼 부르고 다닌다. 이렇듯 신중현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한국 락의 대부’라는 뜬구름 잡는 막연한 개념보다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진정한 그의 음악을 듣고 부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는 일이 아닐까.
인천에서 시작해서 대구, 제주 등을 거쳐 서울에서 마지막으로 치러진 그의 은퇴공연. “괜찮았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생각보다’라는 단서가 붙는다는 사실을 주지해야할 것이다. 어쨌거나 신중현은 이제 은퇴공연을 마치고 처음의 자리로 돌아갔다. 돌아간 에드워드가 얼음조각을 하며 날리던 하얀 눈송이처럼, 은퇴한 신중현의 음악이 과연 계속해서 우리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까. 뮤직파워와 함께 한 그의 곡 가운데에서 ‘저무는 바닷가’가 떠오르는 밤이다.
... 나만이 여기에서 무엇을 기다리나 / 밀려오는 파도만이 발 밑을 적시네
올 사람 갈 사람 아무도 없는데 / 나만이 홀로 서서 파도 소리 들어보네...
(월간 쎄씨 2007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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