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ONER'S MUSIC LIFE/MUSIC LIFE

CONER'S MIXTAPE 'OLD & WISE'

처음 믹스테이프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떠오른 건 학창시절 듣던 라디오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정신을 집중하고, 레코드 버튼과 플레이 버튼에 동시에 손가락을 올려놓고 기다리던 그때. 그때의 소박한 긴장감에는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 절대 알 수 없는 그 무언가가 있었다. 대표적인 프로그램은 ‘황인용의 영팝스’와 ‘전영혁의 음악세계’다. 지방에 살고 있었던 까닭에 ‘성시완의 음악이 흐르는 밤에’의 혜택은 보지 못했고, 오히려 이 프로그램에서 나온 음악은 작은형이 서울에서 나와 같은 마음으로 녹음해온 테이프를 통해 듣곤 했다. 


‘황인용의 영팝스’는 저녁시간 프로그램이라서 그렇지 않았지만, ‘전영혁의 음악세계’는 심야 프로그램이었던 탓에 잠과 싸우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지금은 오히려 그 시간에 깨 있는 때가 더 많지만, PC나 스마트폰과 같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가지고 놀 수 있는 ‘장난감’이 없던 그 때는 요즘보다 잠자리에 드는 시간이 더 빨랐다. 때문에 아예 120분이 수록되는 공테이프를 사서 프로그램이 시작할 때 녹음버튼을 누르고 잠이 드는 때도 많았다. 그리고 그 다음날엔 녹음된 테이프를 복기하며 더블 데크 카세트로 필요한 곡을 다른 테이프에 옮겨 담았다.


이미 ‘황인용의 영팝스’도, ‘전영혁의 음악세계’도 송출을 중단한 지 꽤 많은 시간이 지났다. 하지만 ‘믹스테이프’라는 타이틀에서 그런 생각을 했다. 


만일 이 프로그램들이 지금까지 방송되고 있다면 어떤 음악이 나왔을까.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 프로그램을 통해 소개된 많은 뮤지션들의 꾸준한 활동은 언제나 초미의 관심사였을 것 같다. 예전과 달리 능동적으로 음악을 찾아 듣게 된 다음부터는 오히려 레이다의 파장이 닿지 않는 곳으로 밀려나고 있지만 말이다. 그래서 첫 번째 믹스테이프의 제목을 ‘Coner's Old & Wise Mix’라고 지었다. 코너는 천리안 시절부터 지금까지 쓰고 있는 내 아이디고, ‘Old & Wise’는 다들 알고 있는 것처럼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The Alan Parson's Project)의 대표곡 가운데 하나다.


SIDE A

1. Kayak - Ripples On the Water (3:40)

카약(Kayak)이 2018년 발매한 앨범 수록곡이다. 짧은 연주곡으로, 게스트로 참여한 앤드류 레이티머(Andrew Latimer)의 기타 연주가 나오는 부분에선 나도 몰래 탄성이 나왔다. 말 그대로 ‘Stationary Traveller’ 그 후의 이야기로 들린다.



2. Asia - Heroine (4:54)

2008년 원년 멤버로 다시 모인 아시아(Asia)가 발표한 [Phoenix]에 담긴 곡으로, 언뜻 2집의 ‘The Smile Has Left Your Eyes’를 떠오르게 만드는 도입부와 엔딩 부분 예스(Yes)의 명곡 ‘And You And I’에서 들을 수 있는 스티브 하우(Steve Howe)의 슬라이드 기타 사운드가 인상적이다.



3. Steve Hackett - West To East (5:14)

제네시스(Genesis)로, 또 스티브 하우와 함께 한 지티알(GTR)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스티브 해킷(Steve Hackett)은 지독하리만치 치열하게 꾸준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뮤지션이다. 그가 2017년 발표한 [The Night Siren]에 수록된 ‘West To East’는 그 구성이나 기타 톤 등 그의 나이를 무색하게 만드는 트랙이다.



4. Ken Hensley - Romance (4:36) 

정규앨범에선 글렌 휴즈(Glenn Hughes)가 보컬을 맡았지만, 2012년 베스트 음반 수록 버전은 켄 헨슬리(Ken Hensley)가 보컬까지 담당했다. 객관적인 자로 평가를 하자면 글렌 휴즈가 켄 헨슬리에 비해 보컬 실력은 월등하지만 이 곡에선 지나치게 감정을 남발하는 느낌이 없지 않다. 그런 면에서 솔직 담백하게 부르는 켄 헨슬리의 버전이 더욱 끌린다.



5. Glenn Hughes - Nothing's the Same (4:57) 

글렌 휴즈의 2016년 앨범 [Resonate]에 수록된 보너스 트랙이다. 차분한 나일론 줄 기타와 첼로 연주는 게리 무어(Gary Moore)의 원곡과 비교되며 숙연한 느낌을 자아낸다. 2018년 봅 데이즐리(Bob Daisley)가 기획한 게리 무어 트리뷰트 앨범엔 요 버전을 바탕으로 한 리메이크 버전이 담겼다.



6. Strawbs - The Familiarity Of Old Lovers (6:08)

가을이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이름 스트롭스(Strawbs). 스트롭스의 2017년 앨범 [The Ferryman's Curse] 수록곡이다. 전성기 때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데이브 커즌스(Dave Cousins)의 목소리가, 다소 현대적이지만 묘한 매력이 있는 트윈 기타의 하모니와 잘 어우러진다.




SIDE B

1. Dave Sinclair - Island (feat. Barbara Gaskin) (3:51)

캔터베리 패밀리들이 총 출동한 데이브 싱클레어(Dave Sinclair)의 2011년 음반 [Stream] 수록곡이다. 세월을 비켜간 스파이로자이라(Spirogyra)의 바바라 가스킨(Barbara Gaskin)의 청아한 목소리를 만날 수 있다.



2. Jon Lord - The Sun Will Shine Again (4:26)

아바(ABBA)와 만난 딥 퍼플(Deep Purple). 프리다(Frida)가 보컬을 맡은 존 로드(Jon Lord)의 ‘The Sun Will Shine Again’은 의외의 조합으로 색다른 감동을 전해주는 곡. 핫뮤직에 근무하던 시절, 라이선스로 나오진 않았지만 음악이 좋아 EMI 측에 어드밴스 음반을 요청해 기사로 만들었다.



3. Wetton Downes - Raven (3:57)

웨튼 다운스(Wetton Downes)는 라이브 외에 두 장의 스튜디오 음반만 남긴 줄 알았는데, 아시아가 재결합한 뒤에도 음반이 발매됐다. 안드레아스 볼렌바이더(Andreas Vollenweider)의 하프, 앤-마리 헬더(Anne-Marie Helder)의 보컬이 처연하다.



4. Squackett - The Summer Backwards (3:00) 

스퀘케트(Squackett)라는 독특한 이름은 예스의 베이시스트 크리스 스콰이어(Chris Squire)와 스티브 해킷이 함께 한 프로젝트다. 그걸 알고 프로젝트의 이름을 다시 보면 이들 두 멤버의 이름이 조합된 것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예스 음악에 있어서 크리스 스콰이어의 영향이 컸던 만큼 음악에서도 어느 정도 연장선적인 느낌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5. Roger Taylor With Jeff Beck - Say It's Not True (4:58)

폴 로저스(Paul Rodgers)와 함께 한 퀸의 [The Cosmos Rocks](2008)에도 담겼던 곡이지만, 개인적으로 로저 테일러(Roger Taylor)의 솔로 음반 곡을 즐겨 듣는다. 퀸의 음악에서 가장 고음역대의 보컬을 담당했던 로저 테일러지만 지난 세월은 그의 목소리에도 많은 흔적을 남겨 놓았다. 실제 대상이 누군지 확실하게 알진 못하지만, 음악을 들으며 한 사람의 모습을 떠올리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6. Anderson Wakeman - 23/24/11 (6:24) 

예스의 존 앤더슨(Jon Anderson)과 릭 웨이크먼(Rick Wakeman)이 모인 앤더슨 웨이크먼의 ‘23/24/11’은 2010년 발매된 [Living Tree]에 담긴 곡으로, 릭 웨이크먼의 단출한 피아노와 존 앤더슨의 목소리로 이루어졌다. ‘천상의 목소리’로 불리던 존 앤더슨의 성대도 이제 메마르고 여기 저기 갈라진 틈새가 보이지만, 그만큼 오히려 인간적인 그의 모습을 마주할 수 있다.



7. Virgil & Steve Howe - Leaving Aurora (3:43)

버질 앤 스티브 하우(Virgil & Steve Howe)의 2017년 음반 [Nexus]에 담긴 ‘Leaving Aurora’는 스티브 하우가 자신의 아들 버질 하우(Virgil Howe)와 함께 한 곡이다. 아쉽게도 이 음반이 발매되기 전 버질 하우는 세상을 떠났고, 아들을 잃은 비통함과 외로움이 음반의 크레디트에 등장해 가슴 뭉클하다.




당시에 소개됐던 뮤지션들은 그때도 거장이었지만 지금도 자신만의 방법으로 현명하게 세월의 무게를 이겨내며 꾸준한 활동을 이어오는 경우가 많다. 물론 그 가운데는 이미 세상을 떠난 뮤지션들도 있지만, 마지막 순간을 마주한 그 때 까지도 자신의 삶과도 같았던 음악을 우리에게 남겨 놓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녹음을 마치기 전에 또 다른 믹스테이프 소재가 떠올랐다. 이 역시도 학창시절에 했던 경험 그대로다. 언제 완성될 진 모르겠지만 이렇게 ‘중독’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아, 물론 이 믹스테이프에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의 곡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