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튼 존을 위한 변명, 혹은 ‘레지 보완 계획’, ‘로켓맨’

기대하고 있던 영화 한편이 개봉했다. 엘튼 존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주크박스 뮤지컬 ‘로켓맨’이다. 기대와는 달리 개봉관에서 이 영화를 보는 건 힘들었다. 하루에 두 번 정도, 그것도 시간대가 맞지 않아 영화관을 찾는 게 힘들었고 힘들게 찾아간 영화관에서도 관객이 그렇게 많지 않은 걸로 봐서 그나마 얼마 지나지 않아 종영할 것 같다. 영화는 개봉된 뒤 입소문에 따라 흥행이 많이 좌우된다. 아쉽게도 ‘로켓맨’의 입소문은 그렇게 좋지 않다. 아마도 지난해 개봉했던 ‘보헤미안 랩소디’의 여파로 보인다. 그래서 이 영화가 ‘보헤미안 랩소디’의 ‘광풍’이 지난간 뒤 개봉한 건 여러모로 아쉽다.

천만에 육박하는 관람객 수가 알려주듯 일반적인 관객들은 ‘로켓맨’을 보기 전 음악영화에 대한 눈높이를 ‘보헤미안 랩소디’에 맞췄다. 오히려 ‘로켓맨 홍보문구나 사전 보도조차 “보헤미안 랩소디의 감동을 이어가는...”이라는 문구를 의도적으로 삽입하는 등 앞선 음악영화 흥행에 밥숟가락을 올려놓으려는 의도를 내비치며 관객을 선동했다. 물론 앞서 언급한 ‘눈높이’가 영화 자체의 완성도나 플롯의 뛰어남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단어 그 자체로서의 ‘눈높이’, 말 그대로 관객들이 ‘로켓맨’을 과녁에 두고 맞춘 ‘영점’을 의미한다. 이 ‘영점’이 흐트러졌을 때 관객은 당황하고 그 영화는 완성도에 관계없이 함량미달이 되어버린다. 

 

 

‘로켓맨’과 ‘보헤미안 랩소디’는 어느 정도 평행선을 이루는 부분이 있다. 인정받지 못하던 어린 혹은 젊은 시절을 지나 데뷔와 함께 스타덤에 등극하고, 갑작스런 성공에 뒤따르는 갈등과 매니지먼트의 문제, 또 사랑과 배신 그리고 극복이라는 이야기의 전개가 그렇다. 하지만 이는 비단 음악영화가 아니라 어떤 극영화라도 공통적으로 끌고 갈 수 있는 아니, 끌고 가고 있는 보편적인 시나리오가 아닐까. 이렇게 시나리오로 접근한다면 ‘로켓맨’의 이야기 전개가 썩 훌륭하다고 볼 순 없지만, ‘보헤미안 랩소디’ 역시 마찬가지다. ‘보헤미안 랩소디’의 경우 오히려 취약한 서사의 전개를 보완하기 위해 마지막 라이브 에이드 장면에 영화의 많은 부분을 할애한 듯 보이기도 한다. 

어차피 ‘보헤미안 랩소디’를 먼저 본 이상 두 영화를 비교하는 건 필연적이겠지만, 한가지는 분명하게 생각하고 ‘로켓맨’에 접근하자. 바로 ‘로켓맨’은 주크박스 뮤지컬이란 점이다. 주크박스 뮤지컬은 기존에 나와 있는 노래의 가사로 시나리오의 전개와 인물의 대사를 만든다. 아바의 노래로 이루어진 ‘맘마미아’를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우리가 아는 엘튼 존 노래의 발표순서가 잘못 되었다느니, 원곡이 지나치게 편곡되어 알아차리기 어려웠다느니 하는 이야기들은 이 영화가 애초에 주크박스 뮤지컬이란 점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기존의 가사들로 이루어진 시나리오를 그 상황에 따라 주연을 맡은 테런 에저턴은 노래로 연기하고 이야기하듯 노래한다. 

개인적으로 70년대 누구도 흉내 내기 어려웠던 엘튼 존의 감성과 목소리를 대신할 수 있는 건 없다고 생각한다. 애니메이션 ‘씽’에서 불렀던 노래 덕분에 엘튼 존 역을 맡을 수 있었던 테런 에저턴이 노래를 잘 하는 건 맞지만 특유의 텁텁한 목소리와 엘튼 존의 그것은 많은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보헤미안 랩소디’처럼 립싱크를 택하지 않고 직접 노래를 부른 건 앞서 이야기했던 주크박스 뮤지컬인 까닭에 분위기에 따라 많은 편곡을 했기 때문이란 점을 들 수 있지만, 이후 브로드웨이 뮤지컬로 만들려 하는 엘튼 존의 포석이 깔려있을 거라는 추측 역시 가능하게 만든다. 이렇게 다양한 모습의 엘튼 존의 모습을 만나는 건 그의 팬으로 무척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영화에서는 엘튼 존의 화려한 무대와 코스튬 의상, 그리고 뮤직비디오의 완전한 재현이 반가웠지만 아쉬운 부분이 없는 건 아니었다. 엘튼 존이 제작에 참여를 한 까닭에 이 글의 제목으로 써 놓을 것처럼 엘튼 존을 향해 쏟아졌던 많은 비난들을 향해 “난 그때 그럴 수밖에 없었어.”라고 이야기하는 변명, 혹은 어린 레지가 왜 그렇게 행동해야했는지에 대한 구차한 설명이 시나리오의 줄기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마치 ‘인류보완계획’이라는 거창한 단어가 결국 ‘신지보완계획’이었던 에반게리온의 결론 아닌 결론처럼 말이다. 물론 이는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 본 사소한 아쉬움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그의 음악과 함께 할 수 있어 행복했고, 스크린을 통해 교감하는 캡틴과 카우보이를 볼 수 있어 흐뭇했다.  

 

영화는 이제 극장에서 다시 보기 힘들겠지만, 지난번 읽고 포스팅했던 책 한권도 다시 꺼내 읽고, 빠진 음반들도 라이브러리에 채우고... 한동안 또 바빠질 것 같다.

 

2017/02/05 - [CONER'S MUSIC LIFE/EXTERNAL CONTRIBUTIONS] - 팝스타 엘튼 존, 그 디렉터스 컷 혹은 스페셜 피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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