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애호가의 입장에서 뮤지션의 실제 이야기를 소재로 한 영화는 언제나 반갑다. 불꽃같은 인생을 살다 간 짐 모리슨(Jim Morrison)을 담았던 올리버 스톤(Oliver Stone) 감독의 ‘도어스(The Doors)’(1991)가 그랬고, 스튜어트 서트클리프(Stuart Sutcliffe)를 통해 비틀스(The Beatles)의 함부르크 시절 이야기를 엿볼 수 있는 이아인 소프틀리(Iain Softley) 감독의 ‘백비트(Backbeat)’(1994), 브라이언 존스(Brian Jones)가 당한 의문의 죽음을 파헤치는 스테픈 울리(Stephen Wooly) 감독의 ‘스톤드(Stoned)’(2005), 6명의 배우가 밥 딜런(Bob Dylan) 아닌 밥 딜런을 연기하는 토드 헤인즈(Todd Haynes) 감독의 ‘아임 낫 데어(I’m Not There)’(2007)는 물론 ‘레이(Ray)’, ‘앙코르(Walk The Line)’나 최근의 ‘겟 온 업(Get On Up)’, ‘지미: 올 이즈 바이 마이 사이드(Jimi: All Is By My Side)’에 이르기까지. 영화의 완성도가 높으면 금상첨화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이렇게 만들어진 영화는 우리 영웅들의 모습들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것 외에 음악 외에 그들의 숨겨진 이야기들을 알려준다. 어찌 본다면 ‘러브 앤 머시(Love & Mercy)’는 그 제작이 다소 늦은 감도 없지 않다.
‘러브 앤 머시’는 비치 보이스(The Beach Boys)의 브라이언 윌슨(Brian Wilson)에 대한 이야기다. 사실 비치 보이스는 우리에게 ‘Surfin' USA’, ‘Fun Fun Fun’이나 ‘California Girls’ 혹은 ‘Kokomo’와 같은 소위 ‘캘리포니아 사운드’를 정의한 밝은 이미지가 강하다. 영화 ‘러브 앤 머시’ 역시 이렇게 상큼한 캘리포니아 사운드의 대표곡을 연주하는 비치 보이스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과잉치료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던 브라이언 윌슨의 모습은 비치 보이스의 음악을 익히 아는 사람들이 보기에도 상당부분 불편할 정도로 안타깝다. 이렇게 영화는 승승장구하던 시절의 브라이언 윌슨(폴 다노 분)과 신경쇠약으로 스스로를 잃어버린 40대의 브라이언 윌슨(존 쿠삭 분)을 계속해서 교차시키며 진행된다. 비치 보이스의 활동이 중단될 정도의 신경쇠약 증세를 보인 브라이언 윌슨을 보여주기 위해 빌 포래드 감독은 명반 [Pet Sounds](1996)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스크린에 늘어놓는다.
[Pet Sounds]는 비틀스의 [Rubber Soul](1965)에 자극을 받은 브라이언 윌슨이 작정하고 만든 음반이다.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가 이 음반에 대해 “[Pet Sounds]를 듣지 않고 음악 공부를 했다고 하지 마라”는 이야기를 남기고 다시 한 번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1967)로 응수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이들의 음악을 좋아한다면 대형 스크린과 현장감 있는 사운드로 재현된 [Pet Sounds]를 영화관에서 감상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커다란 행운이다. 이렇게 영화 내용도 내용이지만, 음악 애호가의 입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몇몇 장면을 꼽아보면.
- 영화의 시작과 함께 흘러나오며 브라이언 윌슨이 순회공연에서 이탈해 혼자 곡 작업에 몰두하기 전을 설명하는 초기 비치 보이스의 공연 모습.
- 40대의 브라이언 윌슨이 첫 만남부터 끌리게 되는 멜린다(엘리자베스 뱅크스 분)과 함께 갔던 공연장에서 울려 퍼진 무디 블루스(Moody Blues)의 ‘Night In White Satin’.
- 세션 그룹 레킹 크루(Wrecking Crew)의 재현과 다양한 악기, 짐승의 울음을 비롯 당시에 표현 가능했던 수많은 ‘소리’들이 취합되는 [Pet Sounds]가 만들어지는 과정.
- 브라이언 윌슨이 아버지 앞에서 피아노 반주만으로 부르던 명곡 ‘God Only Knows’.
- 멤버간의 갈등을 딛고 비치 보이스 특유의 화음을 겹겹이 쌓아가며 또 다른 명곡 ‘Good Vibrations’을 탄생시키는 모습.
을 들 수 있다. 특히 엔딩 크레디트와 함께 등장하는 실제 브라이언 윌슨의 ‘Love & Mercy’ 라이브와 영화가 완전히 끝난 뒤 그가 영화를 위해 헌정한 ‘One Kind Of Love’까지. 비록 영화가 브라이언 윌슨이나 비치 보이스의 일대기가 아니고, 특정한 부분만을 스크린에 옮겼음에도 특별한 음악선물을 받는 것과 같이 푸짐한 혜택으로 가득하다. 물론 비치 보이스의 음악만을 머릿속에 생각하고 영화를 본다면 다소 지루할 수도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 특히 일반적인 ‘팝 밴드’로만 치부되던 비치 보이스, 아니 브라이언 윌슨의 음악성에 대해 한 번쯤 다시 생각하게 만들 만한 영화임에는 분명하다. 영화를 본 누구라도 아마도 나와 같이 오랜만에 비치 보이스의 음반의 먼지를 털어내고 어떤 곡부터 들을까 하는 행복한 고민에 휩싸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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