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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ER'S PRIVATE LIFE/BOOKSHELF

김호연의 ‘나의 돈키호테’

김호연 작가의 소설은 재미있다. 망원동 옥탑방에 어쩌다 보니함께 살게 된 네 명의 남자 이야기 <망원동 브라더스>가 그랬고, 마치 심야 식당의 편의점 버전과도 같이 여러 군상의 이야기가 교차하고 합쳐지는 <불편한 편의점>이 그랬다. 신기하게도 소설의 배경도 <망원동 브라더스>는 홍대 근처에 있던 <핫뮤직> 사무실, <불편한 편의점>은 출퇴근을 위해 매일 거쳐 갔던 서울역 근처라서 더 친밀감이 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나의 돈키호테>는 아예 대전이다. 주인공의 동선 역시 원도심을 중심으로 한 내 동선과 거의 겹친다.

 

김호연 작가 소설의 등장인물은 일상적이고 평범하다. 어디서든 결코 주연은 되지 못할 캐릭터들. 우리와 똑같이 욕심은 있지만 제대로 채우는 데 서툴고, 남몰래 상처받은 일을 오랜 외상으로 품고 살며, 소소한 반응에 쉽게 감동한다. 그리고 이런 인물들은 눈에 보이건 그렇지 않건 서로에게 커다란 위안을 주는 소모임의 구성원이 된다. <나의 돈키호테> 역시 외면적으로 학창 시절 돈키호테 비디오라는 비디오 대여점을 매개로 모였던 라만차 클럽의 찐산초(진솔)가 비디오 대여점의 주인 돈 아저씨(장영수)를 찾는 여정에 관한 이야기다.

 

영상 콘텐츠 제작 회사에서 PD로 근무하다가 퇴직한 진솔은 고향 대전으로 내려와 우연히 자신의 학창 시절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예전 돈키호테 비디오자리를 찾게 되고, 지금 커피숍이 들어선 1층은 아니지만 비디오 대여점의 모든 물건이 지하실에 보관된 걸 알게 된다. 당시 비디오는 물론 간판까지 남아 있었지만, 사장 돈 아저씨의 행방은 묘연한 상황에서 진솔은 그 자리에서 찍은 영상으로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고 콘텐츠 제작과 함께 돈 아저씨의 행적을 퍼즐 조각처럼 맞춰 나간다.

 

앞서 소설의 배경이 대전이었다고 한 것처럼 처음 진솔이 계획한 유튜브 채널 기획은 성심당 11빵 도전기’, ‘대전 칼국수 맛집 섭렵기’, ‘타슈 타고 어디까지 가보셨슈’, ‘대전 블루스-대전에서 시작하는 기차 여행이렇게 네 가지다. 여기에 유성 온천 탐방 로드마리한화 응원 대작전은 우선 탈락했다. 탈락 이유는 유성에 온천이 많아도 얼마 못 가 콘텐츠가 동날 것이고, 한화 야구를 응원하는 건 그 자체로 스트레스가 많을 듯하기 때문이라고. 어쨌거나 모든 기획 내용은 내 생활권이다. 참고로 타슈는 대전의 공영 자전거다. 엊그젠 소설에 직접 등장하는 몇몇 장소를 자전거로 돌며 사진에 담았다. 이번 출사에는 타슈 말고 내 자전거 브레인 콘돌과 함께했다.

 

진솔이 이사 내려와 전학온 선화초등학교
한빈을 우연히 만나 찾은 진로집
대전 관련 소설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성심당
진솔이 머리 식히러 한 번씩 들르던 양지공원
유튜브 개설을 준비하며 들른 신도칼국수
내용에 직접 등장하진 않지만 표지를 보고 대전여중이 떠올랐다.

 

진솔은 돈키호테 비디오라는 유튜브 방송이 돈 아저씨에게 바치는 헌사이자 그를 찾아 떠나는 모험이라고 첫 콘텐츠에서 언급한다. 그리고 내용은 돈 아저씨와 그 시절 나눴던 영화와 책을 리뷰하는 내용으로 초반 콘텐츠를 제작한다. 그 가운데 와나라고 운동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솔직히 처음 보는 단어였다.

 

2001년 한국 영화계에서는 ‘와나라고 운동’이 벌어집니다. 여러분 와나라고 운동 아세요? 새마을 운동도 아니고 금 모으기 운동도 아닌 와나라고 운동은, 흥행은 못했지만 완성도가 뛰어난 한국 영화를 응원하고 지지하기 위해 영화인과 영화 팬들이 자발적으로 벌인 운동입니다. 그즈음 개봉은 했으나 대형 제작사의 영화와 유명 감독과 스타 배우의 영화에 밀린 작은 영화 네 편을 대상으로 이 운동이 일어난 겁니다.

 

와나라고2001년 개봉한 와이키키 브라더스’, ‘나비’, ‘라이방’, ‘고양이를 부탁해의 이니셜을 딴 단어란다. 예전 리플렛을 찾아봤다. 아쉽게도 라이방은 없었다.

 

'와나X고 운동' 관련 리플렛

 

글의 처음에 김호연 작가의 소설은 재미있다.”라는 말로 시작했듯 <나의 돈키호테> 역시 이전에 읽은 소설과 마찬가지로 적절한 위로와 위안을 주며, 마지막은 어김없이-진솔이 좋아하는- ‘해피 엔딩으로 마무리된. 개인적으로 우리 노래 가운데 돈키호테가 떠오르는 노래는 두 곡이 있다. 한 곡은 1979년 발표된 이청의 돈키호테’, 또 한 곡은 패닉이 7년 만에 재결합해 발표한 20054집 앨범의 타이틀곡 로시난테. 완독 다음 날 청주방송에서 내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데, 마침 길원득 디제이가 선곡해 틀어 깜짝 놀랐다.

 

라만차의 풍차를 향해서 달려보자. 언제고 떨쳐낼 수 없는 꿈이라면 쏟아지는 폭풍을 거슬러 달리자.”

 

 

“자, 보렴. 솔아. ‘라만차’ 하면 누가 딱 떠오르니? 돈키호테지? 돈키호테의 고향이 라만차거든. 그럼 여기 보자. 대전은 뭐다? 라만차를 거쳐 돈키호테인 거네. 그러니까 대전은 돈키호테. 똑같은 디귿이지. 어떠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