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쩌다 로맨틱 소설을 읽게 됐을까. 습관처럼 방송 시간 전에 들른 알라딘 중고 서점에서 제목과 표지 그림에 끌려 책 한 권을 집어 들었다. ‘로맨틱 파리 컬렉션’ 3부작 가운데 첫 번째 이야기라고 한다. 지은이 레베카 레이즌은 작가이기 이전에 애서가였고, 책에 대한 사랑이 직접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첫 소설의 주요 무대가 책방인 것도, 그리고 그 책방이 중고 서적을 파는 중고 책방인 것도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을 것이다. 이 책도 중고 서점에서 샀지만, 개인적으로 헌책방을 좋아한다.
대전 원동 네거리의 헌책방에 자주 갔다. 초등학교 시절엔 마블이나 DC 코믹스 만화를 구경하러 갔고, 팝 음악을 듣기 시작한 중, 고등학교 시절에는 팝과 관련된 책을 보러 갔다. 대학 시절엔 책과 함께 한 번씩 나오는 중고 LP를 사는 재미도 있었고, 형이 치과를 개업한 뒤에는 치과에 비치할 <아이큐 점프>를 사러 종종 들렀다. 헌책방에서는 때로 나만의 보물과 같은 책이나 LP를 만날 수 있었고, 퀴퀴한 곰팡내도 좋았다. 물론 원동의 헌책방도 예전 같진 않다. 단골 책방은 하나둘씩 문을 닫았고, 지금은 오히려 전업으로 LP를 파는 가게가 더 많아졌다. 요즘도 시간 나면 한 번씩 들르지만, 책은 알라딘 중고 서점에서 더 많이 사는 것 같다.
앞서 책 제목과 표지 그림에 끌렸다고 이야기했는데, 사실 파리에 가본 적은 없다. 그저 영화나 티브이 여행 프로그램에서 보며 멋진 곳이라고, 한 번쯤 꼭 가보고 싶다고 생각만 하던 곳이다. 거기에 ‘작은 책방’이라니 끌리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소설은 미국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책방을 운영하는 새라와 프랑스 파리에서 책방을 운영하는 친구 소피가 6개월 동안 책방을 맞바꿔 운영하며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담았다. 저자가 소설을 쓸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친구 삼고 싶은 인물을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미국과 프랑스에서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개성 강하고 입체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원래부터 파리에 꽂혔어요. 길 잃은 세대의 거처였고 수많은 보헤미안들의 보금자리였으니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여기였죠. 소피한테 연락했더니 취직시켜 주겠다기에 그 길로 당장 집에서 나왔어요. 여기로 왔더니 허파 가득 제대로 숨을 쉬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나를 이해하고 평가하지 않는 마음이 맞는 친구들도 찾았고요. 절대 돌아갈 일 없다는 걸 알 수 있었어요. 여기가 내 집이고 내 심장이고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여기예요. 시집을 출간하려면 힘들 테고 극빈자에 가깝게 살아야 할지 모르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어요. 여긴 길 잃은 영혼들을 위한 도시이고 새라, 당신도 그중 한 명이에요. 하지만 그게 이 도시의 매력이죠. 나를 휙 품에 안고 벌거벗겨서 ‘길을 잃었다’는 게 ‘길을 찾았다’의 다른 말임을 깨닫게 하는 거.”
“낭만적이네요.” 나는 미소를 지었다. TJ와 소곤소곤 대화를 나누면 항상 기운이 났다. 그는 다정한 사람이었다.
새라가 큰오빠처럼 생각했던 TJ와 새라의 대화 내용이다. 이 외에도 새라의 동선에서 마주하는 풍경이나 대화에서는 파리에 대한 매력과 애정이 한껏 묻어난다. 조금 느낌은 다르지만 1995년에 개봉했던 영화 ‘프렌치 키스’가 떠올랐다. 과정은 달랐지만 <센 강변의 작은 책방>의 주인공 새라와 ‘프렌치 키스’의 주인공 케이트(맥 라이언 분)는 파리에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여권과 소지품이 든 가방을 도둑맞는다. 바람난 약혼자 찰리를 찾는 새라가 비행기에서 만난 뤼크(케빈 클라인 분)와 함께 벌이는 좌충우돌 이야기는 믿고 보는 전형적인 ‘워킹 타이틀’ 표 로맨틱 코미디다. <센 강변의 작은 책방>을 읽으면서 배경음악으로 ‘프렌치 키스’ OST를 걸어 놓았는데, 그렇게 잘 어울릴 수가 없다. 오랜만에 꺼낸 내지에서 만난 성우진 선배의 라이너 노트도 반가웠고.
책을 다 읽기 전에 다시 알라딘 중고 서점에 들러 나머지 시리즈인 <에펠탑 아래의 작은 앤티크 숍>과 <샹젤리제 거리의 작은 향수 가게>도 마저 샀다. 역시 책 제목도, 표지 그림도 너무 예쁘다. 이 책들은 또 어떤 파리의 아름다운 거리로 날 안내해 줄지 궁금해진다.
'CONER'S PRIVATE LIFE > BOOKSHELF'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모리사와 아키오의 ‘무지개 곶의 찻집’ (0) | 2025.03.14 |
---|---|
김호연의 ‘나의 돈키호테’ (0) | 2025.03.08 |
오승해의 ‘나의 카페 다이어리’ (0) | 2024.10.08 |
구효서의 ‘빵 좋아하세요?: 단팥빵과 모란’ (2) | 2024.09.17 |
이해경의 ‘머리에 꽃을’ (0) | 2024.09.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