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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 이사와 리셋 증후군 군 생활 32개월을 제외한다면 한번도 대전을 벗어나 살아본 적이 없는 내가 서울에서 가장 많이 가 본 곳이 바로 홍대 근처에 있는 핫뮤직 사무실이다. 원래 길눈이 어둡고 지리에 대한 감각이 무디지만, 이제 전철역에 내려서 사무실까지는 헤매지 않을 정도로 익숙해졌다. 3년이 조금 넘는 시간에 의해 길들여진 것이다. 주변의 식당 아주머니들께도 이제 눈치보지 않고 점심시간에 공기 밥 한 공기쯤은 얻어먹을 만큼 어색한 느낌이 없어질 즈음, 또 한번 모든 것이 생소한 곳에서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되었다. 개인용 컴퓨터가 필수품으로 보급되고, 전화를 사용하는 시간보다 인터넷에 매달리는 시간이 많은 요즘. ‘리셋 증후군’이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어지럽게 흩어진 컴퓨터의 모니터 화면, 어떤 키를 눌러도 말을 듣지 않는 ..
어른이 된다는 것 남자의 경우 어린 시절 아버지의 옷을 꺼내 입고 거울을 보며 어서 어른이 되길 바라던 시절이 있을 것이다. 물론 여자의 경우에는 어머니의 화장품을 몰래 바르면서 숙녀가 된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곤 한다. 하지만, 막상 어른이 된 이후에는 화장대의 거울을 바라보던 그 때를 다시 부러워한다. 꼬맹이시절 읽었던 동화책 ‘피터 팬’의 영원히 어른이 되지 않는 모습이 동화를 읽던 당시에는 전혀 부럽지 않았다가 이제 와서야 부러워지는 것. 아마도 피터 팬을 만들어낸 원작자 자신도 어른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캐릭터를 등장시켰던 듯 하다. 이런 사실에 관심을 갖고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면 흥미로운 점 몇 가지를 발견할 수 있다. 어린 시절, 학교에 가지 않는 일요일 아침에도 어김없이 일찍 일어났던 것은 ‘은하철도 999’를..
다이어리 연말이나, 연초에는 어김없이 몇 개의 달력과 함께 다이어리가 생긴다. 한해의 날짜별로 무언가를 적게 되어있는 그런 공책 한 권. 작년에도 두 권의 다이어리를 가지고 있었다. 한 권은 사무실에서 하는 업무에 관해서 적으리라 생각했고, 또 하나는 개인적으로 웹사이트 관리나 업데이트 계획 등으로 정리 해 두려고 표지에 ‘아이디어 뱅크(Idea Bank)라고 제법 그럴 싸 하게 모양을 내어 글씨를 쓰고, 개인 신상을 쓰는 난을 정성스럽게 채웠다. 그리고, 1월 며칠까진 무엇을 하고, 또 언제까진 무엇을 하고 이 색깔 볼펜, 저 색깔 볼펜.. 알록달록 하게, 자를 대고 줄도 그어 가면서 정리했다. 맨 뒤쪽의 주소 쓰는 난은 예전과 달리 이메일과 휴대전화를 쓰는 칸이 생겼다. 그 전 같으면, 전 해의 다이어리를 보..
아키라와 카멜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이다. 음악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 음악을 들을 때마다, 그 음악 속에 묻어있는 추억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군 생활을 하던 곳은 그래도, 나름대로 자유로운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곳에 속한다. 일단 내무반 생활을 하지 않고, 자신이 근무하는 곳에서 잠을 자는 직감 생활을 하는 곳이었는데, 그곳 2층으로 몇 명의 대기병이 온 적이 있었다. 막 훈련을 마친 그들이 대기병으로 온 이유는, 그들이 미술 특기병들이었기 때문에 당시 부대에 있을 어떤 행사를 위해서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였다. 난, 일과 후에 특별히 할 일도 그렇게 많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의 감독관이 없을 틈을 타서 그들에게 자주 놀러가곤 했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군에 있을 때 물론 육체적으로 받는 스트레스도 많겠지만, 좋..
8월호 편집후기 가운데서... 시애틀에 사는 희가 잠시 귀국한 틈을 타서 극적인(?) 상봉을 했다. 만나서 곰곰이 따져보니, 근 20년이 된 것 같다. 짧은 시간이지만, 마치 20년이라는 시간의 간극은 존재하지 않았던 듯 풀어놓던 이야기 보따리는 이내 우릴 풋풋한 대학시절로 옮겨놓았다. 계속해서 나누던 즐거운 이야기들로 우리 테이블에선 웃음소리가 끊어지질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눈꺼풀은 뜨거워지고 가슴은 답답해왔다. 희는 귀국하며 손목시계 한 개를 선물로 사 가지고 왔다. 노티카에서 나온 크로노스 시계. 뜻하지 않은 선물은 코너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난 전혀 준비한 것이 없었는데... 게다가 희가 건네준 시계는 내 주변의 사람들이라면 내가 직접 샀다고 해도 그대로 믿을 만큼 내가 좋아하는 색깔과 모양이다. 시간을 볼 때마다 짧은 해후가..
‘2’에 관한 몇 가지 에피소드 “두시 어떠세요?” 인터뷰를 하다보면 언제나 시간약속을 하게 마련이다. 개인적으로 약속을 하는 시간은 늘 오후 두시다. 물론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고 일종의 습관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습관이 시작된 것은 고등학교시절부터다. 정숙이라는 친구를 알게 되어 처음으로 약속시간을 잡게 되었는데, 도무지 시간약속을 몇 시에 해야할지 감이 오질 않았다. 마침 작은형에게 물어보니 두시가 적당하다고 했다. 점심시간이 지난 이후의 시간이니, 점심값을 걱정할 필요도 없고, 낮 시간이니 만나자마자 다른 곳으로 이동할 필요도 없이 경제적인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절호의 시간이라는 설명이었다. 이후로는 정숙이를 만날 때는 물론이고, 나의 낮 시간 약속은 무조건 두시로 굳어졌다. 또, 그 친구를 만나며 처음 드나들게 된..
‘카세트 테이프’ 녹음하기 영화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를 이끌어 가는 주된 테마는 바로 ‘Best 5’다. 물론 영화는 전체적으로 주인공으로 나오는 존 큐잭이 멀어졌던 자신의 애인과 다시 친해지기까지의 이야기지만, 그 외에도 그는 생활의 모든 것은 ‘Best 5’와 연관지어 생각한다. 또 배경으로 나오는 중고 음반샵과 함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 이 영화를 볼 때 가장 눈길을 끄는 장면은 바로 자신의 ‘Best 5’를 카세트 테이프에 녹음하는 주인공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요즈음은 친한 친구에게 음악선물을 할 때 인터넷 접속을 해서 휴대전화를 통해 보내거나, mp3 파일을 직접 이메일로 보내는 것이 대부분이다. 한때 카세트 테이프 대신 CD에 자신의 베스트 음악을 담아 선물해 주기도 했지만, 이제 그것도 ‘예전의 풍습’이 되어버린..
제자리에 있다는 것... 어렸을 때 부터 우린, 부모님들께나 또 다른 어른들 한테서 제자리에 놓지 않은 물건들에 대해서 꾸중을 듣기 십상이었다. 제자리에 있다는 것... 그건 정말 중요한 일 같다. 어쩌다 마음먹고 들어 보려던 음반 한장도 제자리에 꽂혀있지 않으면, 제대로 듣지 못하고 마음속으로만 음악을 듣게 된다. 오늘은... 새장 속에 새가 없다. 아침에 운동 시키려 밖에 꺼내 놓은 새가, 전화벨 소리에 놀라서, 날아올라 베란다와 거실 사이의 유리창에 자기 몸과 꼭 같은 자국을 선명하게 남기고, 거실 바닥으로 떨어져 옴싹달싹 못하고 엎어져 있었다. 엄마는 새를 두손으로 감싸안고, 새가 죽은거 같다며 화장실에 있던 나를 재촉 했다. 울지도 못하고, 평소처럼 손가락을 가져다 대도 장난을 치지도 못하고, 날개를 퍼득이지도 못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