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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ER'S MUSIC LIFE/LINER NOTES (DOMEST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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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현 [그동안 / 겨울공원] 엽전들, 세 나그네의 하드록 성향을 계승하는 신중현의 마지막 창작 앨범. 신중현은 1979년 12월 해금과 함께 외압에 의해 중단됐던 음악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우선 대 편성 밴드 뮤직파워를 결성해 기존에 발표했던 곡을 새롭게 편곡한 첫 독집을 1980년 발표했다. 신중현과 뮤직파워는 더 멘 시절의 명곡을 다시 부른 ‘아름다운 강산’으로 티브이 순위 프로그램 ‘가요톱텐’ 상위권에 오르며 대부의 귀환을 확실하게 신고했다. 인기의 여세를 몰아 1981년에는 ‘국풍 81’, 강변가요제 게스트 등 커다란 무대를 통해 관객과 직접 소통했다. 함중아와 결별하고 한 장의 음반을 더 발표한 인순이는 신중현과 뮤직파워를 지원군으로 펄 시스터즈의 대표곡 ‘떠나야할 그 사람’을 디스코 풍으로 편곡해 히트 차트에 상륙했..
김지연과 리바이벌 크로스 [내 마음 흔들려] 퇴폐적이고 관능적인 가수와 만난 1970년대 초중반 화려했던 국내 밴드 사운드의 모습을 대변하는 호연 김지연과 ‘황소가수’김지연은 몇 해 전만 하더라도 베일에 싸인 가수였다. 신중현의 더 멘과 함께 [나만이 걸었네 / 그대 있는 곳에](1973)를 발표한 지연이 김지연과 동일 인물이냐 그렇지 않냐도 확실하게 밝혀지지 못했다. 다른 많은 이유도 있겠지만, 우선 김지연의 활동 기간이 무척 짧았고, 지연의 음반이나 김지연의 음반 모두 희귀음반이었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얼마 전 지연의 음반이 44년 만에 재발매되며 궁금증은 많은 부분 해소되었다. 김지연은 한양여고와 서라벌예대를 나온 무용 전공의 가수였으며, 문공부 주최 전국민속 예술제 등에서 16회 입상했다. 이후 신중현에게 보컬 트레이닝..
김목경 [김목경 2 Blues] 블루스의 대중화를 선언한 김목경의 문제작 국내 블루스의 독보적인 존재 김목경의 두 번째 음반 [Blues]는 그의 음반 가운데 가장 구하기 어려웠던 음반 가운데 하나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대표적인 것은 음반을 발표한 회사가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1990년대 중반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케이블TV 채널을 중심으로 음반제작 참여 열기가 활기를 띤 적이 있다. 진로그룹을 모기업으로 하는 여성 전문채널인 GTV 역시 ‘글로벌 미디어’라는 레이블을 설립하고 발라드 듀오 오츠, 애니메이션과 영화음악 앨범 [아마게돈], [나에게 오라]에 이어 김목경의 두 번째 음반을 발매했다. 하지만 다른 대기업에서 만들었던 레이블처럼, 아니 그보다도 글로벌 미디어의 생명은 짧았다. 1990년 데뷔앨범을 발표한 ..
무지개 퀸텟 [멋쟁이 아가씨 / 사랑의 마음] 오색 빛깔 무지개와 같이 각기 다른 개성을 한 데 모은 ‘전설’의 음반  무지개 퀸텟은 한때 그저 “한대수의 두 번째 음반에 세션을 맡은 밴드” 혹은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밴드와 전혀 계보로 엮을 수 없는 무지개라는 밴드가 있었다”는 정도의 소문으로만 떠돌았던 밴드다. 계보로 엮을 수 없었기 때문에 다른 밴드의 인터뷰에도 등장하지 않았고, 유일한 독집은 금지곡의 멍에를 쓰고 사라졌다. 구성원 역시 이후 뚜렷한 활동이 없었기 때문에 밴드의 존재에 대해 명쾌한 해답을 내놓는 이도 없었다. 하지만 실체는 있고 음반도 남아 있었다. 무지개 퀸텟은 산 마리노에 고정적으로 출연해 무대를 꾸리던 솔리스트들이 모인 일종의 프로젝트 밴드로 그 중심에는 이경석이 있었다. 이경석은 밴드 활동 이후에 윤복희, 배인숙, 김..
여러 음악인들 [아름다운 사람아 아름다운 노래를] 38년만에 완전한 모습으로 공개되는 국내 포크의 전설적 명반  우리의 머릿속엔 언제부턴가 우리의 1970년대 초반이 ‘청바지’, ‘생맥주’ 그리고 ‘통기타’의 시대라고 은연중에 각인되어, 당시의 젊은이들이 물질적으로는 가난했을지언정 ‘낭만’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한없는 자유로움의 동경이 대상이 되어있는 듯 하다. 하지만, 앞선 세 단어가 주는 혜택에 직접적인 수혜를 입은 사람들은 우리의 생각처럼 그렇게 보편적이진 않았다. 일반적인 젊은이들에게 미군 부대 근처에서 흘러나오는 몇몇 벌 이외에 ‘청바지’를 구할 기회는 그렇게 많지 주어지지 않았으며, 살롱이나 호프집의 ‘생맥주’보다는 선술집의 ‘막걸리’가 보편적이었다. 그리고 ‘통기타’를 치며 부를만한 ‘우리’ 스스로의 노래는 거의 없었다. 물론 1970년대 ..
로보트 태권브이 앤솔로지 Box Set 드디어 재발매되는 국내 애니메이션 OST 제1탄, 그리고 그 시리즈 로보트 태권 V “달려라 달려 로보트야. 날아라 날아 태권 브이...” 1970년대에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치고 이 노래를 모르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개봉 당시 미리 발표된 곡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주제가는 지금 우리가 이야기하는 소위 ‘떼창’을 극장에 울려 퍼지게 만들었다. 심지어 노래를 따라 부르며 눈물을 흘리던 친구도 있었다. ‘로보트 태권 V’ 이전에 국내에 극장판 SF 애니메이션이 없었던 건 아니다. 박영일 감독의 ‘황금철인’(1968)이 있었고, 용유수 감독의 ‘번개아텀’(1971) 역시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그 어떤 애니메이션도 ‘로보트 태권 V’에 비길 바는 되지 못했다. (전략) TV에서의 어린이물의 붐은 ..
제1, 2회(77,78) 대학가요제 한국 대중음악 암흑기, 새로운 대중 음악씬의 태동대학가요제 1973년의 장발단속 본격화, 1975년 ‘긴급조치 9호’ 발동에 의한 공연 예술 검열의 강화와 국내, 외 곡 500여곡의 금지곡 지정, 같은 해 11월부터 단행한 대마초 사범 단속. 이상 열거한 일련의 사건 아닌 사건들은 국내 젊은 음악인들이 갈 곳을 잃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나마 밴드에서 보컬리스트로 활약했던 뮤지션들은 솔로 가수로 독립하여 트로트 성분 가득한 소위 ‘록뽕’, 혹은 ‘트로트 고고’라는 전대미문의 새로운 장르 아래로 몸을 낮추는 대가로 ‘10대 가수’ 진입이라는 면죄부를 하사 받을 수 있었지만, 그때까지 밴드의 전면에 드러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파트에만 충실하던 연주인들에게는 어디까지나 ‘딴 나라 이야기’였다. 음악인으로서 ..
김영국과 ADD 4 [그대는 어데로] 신중현이 결성한 최초의 록 밴드 애드 포가 연주를 맡은 김영국의 음반 196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국내에 로큰롤이 본격적으로 유입된다. 그 시작은 물론 미8군 무대였지만 비슷한 시기 국내 뮤지션들은 미8군 무대와 극장 쇼를 비롯한 일반무대 활동을 병행했다. [매혹의 째즈씽거 김영국과 정열의 악단 Add4]는 초기 로큰롤 뮤지션들의 치열한 활동을 증명하는 소중한 기록이다. 이 음반처럼 가수 플러스 밴드의 포메이션으로 이루어진 형태는 여러모로 비슷한 시기인 1960년대 중반부터 출반된 쟈니 리 / 키 보이스 [오! 우짤꼬 / 정든 배는 떠난다], 정원 / 샤우터스 [정원과 샤우더스 전집], 이태신 / 파이브 핑거스 [이태신과 Top Song Vol.1]을 연상시킨다. 이 가운데 쟈니 리 / 키보이스의 음반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