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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ER'S MUSIC LIFE/LINER NOTES (DOMEST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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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보트 태권브이 앤솔로지 Box Set 드디어 재발매되는 국내 애니메이션 OST 제1탄, 그리고 그 시리즈 로보트 태권 V “달려라 달려 로보트야. 날아라 날아 태권 브이...” 1970년대에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치고 이 노래를 모르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개봉 당시 미리 발표된 곡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주제가는 지금 우리가 이야기하는 소위 ‘떼창’을 극장에 울려 퍼지게 만들었다. 심지어 노래를 따라 부르며 눈물을 흘리던 친구도 있었다. ‘로보트 태권 V’ 이전에 국내에 극장판 SF 애니메이션이 없었던 건 아니다. 박영일 감독의 ‘황금철인’(1968)이 있었고, 용유수 감독의 ‘번개아텀’(1971) 역시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그 어떤 애니메이션도 ‘로보트 태권 V’에 비길 바는 되지 못했다. (전략) TV에서의 어린이물의 붐은 ..
제1, 2회(77,78) 대학가요제 한국 대중음악 암흑기, 새로운 대중 음악씬의 태동대학가요제 1973년의 장발단속 본격화, 1975년 ‘긴급조치 9호’ 발동에 의한 공연 예술 검열의 강화와 국내, 외 곡 500여곡의 금지곡 지정, 같은 해 11월부터 단행한 대마초 사범 단속. 이상 열거한 일련의 사건 아닌 사건들은 국내 젊은 음악인들이 갈 곳을 잃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나마 밴드에서 보컬리스트로 활약했던 뮤지션들은 솔로 가수로 독립하여 트로트 성분 가득한 소위 ‘록뽕’, 혹은 ‘트로트 고고’라는 전대미문의 새로운 장르 아래로 몸을 낮추는 대가로 ‘10대 가수’ 진입이라는 면죄부를 하사 받을 수 있었지만, 그때까지 밴드의 전면에 드러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파트에만 충실하던 연주인들에게는 어디까지나 ‘딴 나라 이야기’였다. 음악인으로서 ..
김영국과 ADD 4 [그대는 어데로] 신중현이 결성한 최초의 록 밴드 애드 포가 연주를 맡은 김영국의 음반 196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국내에 로큰롤이 본격적으로 유입된다. 그 시작은 물론 미8군 무대였지만 비슷한 시기 국내 뮤지션들은 미8군 무대와 극장 쇼를 비롯한 일반무대 활동을 병행했다. [매혹의 째즈씽거 김영국과 정열의 악단 Add4]는 초기 로큰롤 뮤지션들의 치열한 활동을 증명하는 소중한 기록이다. 이 음반처럼 가수 플러스 밴드의 포메이션으로 이루어진 형태는 여러모로 비슷한 시기인 1960년대 중반부터 출반된 쟈니 리 / 키 보이스 [오! 우짤꼬 / 정든 배는 떠난다], 정원 / 샤우터스 [정원과 샤우더스 전집], 이태신 / 파이브 핑거스 [이태신과 Top Song Vol.1]을 연상시킨다. 이 가운데 쟈니 리 / 키보이스의 음반은..
한대수 [상처] 어쿠스틱 재즈로 표현한 위로와 치유의 음악 한대수의 열 번째 앨범이다. [상처]가 발매되기 5개월쯤 전, 한대수는 다리를 다쳤다. 한상원과 함께 공연을 준비하던 중 폭우가 쏟아졌는데, 나무다리를 건너다 발을 헛디뎌 뼈가 부러진 것이다. 그는 그 때 죽을 수도 있다는, 그래서 죽음은 영원하고 삶은 순간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 부러진 다리의 엑스레이 사진은 음반의 재킷 아트워크로 쓰였고, 어쩌면 당연하게도 이러한 생각들은 음반에서도 드러난다. 비록 과거에 발표했던 음악들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리메이크 위주의 음반임에도 불구하고. 한대수가 발표했던 음악 가운데에는 이미 죽음을 다룬 곡이 있다. 2집 [고무신](1975)의 이색작 ‘여치의 죽음’과 3집 [무한대](1989)에 수록된 ‘과부타령’이다. ‘여치의 죽음’에서 말하는 죽음은 상징적인 제도..
한대수 [욕망(Urge)] 젊은 작곡가 집단의 영입으로, 보다 다양한 음악적 표현 한대수가 58세 되던 해인 2006년 발표한 [욕망(Urge)]는 그 발매와 함께 인터넷 매체들을 통해 급속히 입소문이 번져나갔다. 그건 비단 새로운 앨범을 발표했다는 단편적인 이야기도 아니고, 조승우가 주연을 맡았던 영화 ‘타짜’의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그의 음악이 흘러나왔기 때문도 아니다. 바로 앨범 재킷과 속지를 아내의 누드사진으로 꾸몄기 때문이다. 음반에 수록된 음악들은 오히려 재킷에 의해 가려졌고, 누드 사진은 그저 누드 사진일 뿐 그 의미를 알고자하는 사람은 그다지 없는 듯하다. 어차피 여인네들의 벌거벗은 사진들은 인터넷을 통해 얼마든지 볼 수 있는데도 말이다. 한대수에게는 언제나 ‘최초’라는 단어가 어울린다. 국내 최초의 히피가수이며, 국내 최초의 싱어 송 라이터다. 그렇다면 그가 발표..
데블스 / 드디어 LP로 재발매되는 아웃사이더 데블스의 데뷔작 사실 2000년대 초반까지 데블스(Devils)란 밴드는 거의 잊힌 존재였다. 혹시 아는 사람이 있더라도 그저 “한때 ‘그리운 건 너’를 히트시켰던 원 히트 원더(one-hit wonder)의 70년대 밴드”정도로 기억할 뿐이었다. 데블스가 발표했던 음반들은 그 존재 유무가 논란이 될 정도로 눈에 잘 띄지 않았다. 발표한 정식 음반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 그 활동 기간이 짧았던 편도 아니지만 너무나 쉽게 잊혔다. 물론 동시대에 활동하던 다른 밴드들 역시 그랬다고 한다면 다른 할 말은 없겠지만. 한 컬렉터의 끊임없는 추적과 함께 2003년 들어 데블스의 공식 두 번째 음반이 LP로 재발매됐다. 닫힌 창살을 등지고 있는 독특한 표지만으로도 관심의 대상이 되었던 데블스의 두 번째 정규작은 앞서 이야기했듯 그 ..
이성원 / 1980년대 한국 언더그라운드 포크를 대표하는 이성원의 데뷔작 이성원은 1980년대 국내 언더그라운드 포크를 이야기할 때 김두수, 곽성삼과 함께 어김없이 거론되는 인물이다. 이 세 명의 싱어 송 라이터의 음악은 ‘토속적’이고 ‘사색적’이라는 공통분모를 만들고 있지만, 확실한 개성 아래서 독창적인 영역을 구축했다. 발표 당시에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이후 이들의 음악을 찾아 듣는 사람들에 의해 입에서 입으로 소문이 전해지며 초기에 발표한 음반의 가격이 천정부지로 올랐다. 이번에 재발매되는 이성원의 데뷔앨범 역시 마찬가지다. 이성원의 데뷔앨범은 1987년에 발매됐다. 고향인 경남 진해에서 진해상고를 나온 그는 마산의 라이브 카페를 거쳐 상경한 이후에도 몇몇 라이브 카페를 전전하다가 자신의 카페 ‘쉼표’를 열어 꾸준하게 노래했다. 또 1986년에는 크리스탈 문화센터..
양병집 [The Sounds of Yang Byung Jip 1974-1993] 포크의 독보적 존재 양병집, 초기 걸작의 집대성 양병집, 그의 이름엔 언제나 ‘김민기, 한대수와 함께 국내 3대 저항가수’라는 표현이 붙는다. 하지만 그러한 표현보다 오히려 ‘넋두리’라는 한 단어가 그에게 더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다. 물론 ‘넋두리’는 양병집의 데뷔앨범 타이틀이다. 그리고 음반의 발표와 함께 그의 음악을, 아니 그를 가장 잘 표현하는 단어는 ‘넋두리’가 됐다. 그의 데뷔앨범 [넋두리](1974)는 박정희 정권 당시 금지곡 파동에 휘말려 발표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량 회수되어 폐기처분됐다. 물론 그의 음반은 폐기시킬 수 있었지만 그의 음악까지 회수할 순 없었다. 그가 발표했던 음악들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오히려 더욱 긴 생명을 얻었다. 그의 넋두리는 음반이 아니라 소외되고 억압받는 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