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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ER'S MUSIC LIFE/LINER NOTES (DOMEST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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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대수 [상처] 어쿠스틱 재즈로 표현한 위로와 치유의 음악 한대수의 열 번째 앨범이다. [상처]가 발매되기 5개월쯤 전, 한대수는 다리를 다쳤다. 한상원과 함께 공연을 준비하던 중 폭우가 쏟아졌는데, 나무다리를 건너다 발을 헛디뎌 뼈가 부러진 것이다. 그는 그 때 죽을 수도 있다는, 그래서 죽음은 영원하고 삶은 순간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 부러진 다리의 엑스레이 사진은 음반의 재킷 아트워크로 쓰였고, 어쩌면 당연하게도 이러한 생각들은 음반에서도 드러난다. 비록 과거에 발표했던 음악들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리메이크 위주의 음반임에도 불구하고. 한대수가 발표했던 음악 가운데에는 이미 죽음을 다룬 곡이 있다. 2집 [고무신](1975)의 이색작 ‘여치의 죽음’과 3집 [무한대](1989)에 수록된 ‘과부타령’이다. ‘여치의 죽음’에서 말하는 죽음은 상징적인 제도..
한대수 [욕망(Urge)] 젊은 작곡가 집단의 영입으로, 보다 다양한 음악적 표현 한대수가 58세 되던 해인 2006년 발표한 [욕망(Urge)]는 그 발매와 함께 인터넷 매체들을 통해 급속히 입소문이 번져나갔다. 그건 비단 새로운 앨범을 발표했다는 단편적인 이야기도 아니고, 조승우가 주연을 맡았던 영화 ‘타짜’의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그의 음악이 흘러나왔기 때문도 아니다. 바로 앨범 재킷과 속지를 아내의 누드사진으로 꾸몄기 때문이다. 음반에 수록된 음악들은 오히려 재킷에 의해 가려졌고, 누드 사진은 그저 누드 사진일 뿐 그 의미를 알고자하는 사람은 그다지 없는 듯하다. 어차피 여인네들의 벌거벗은 사진들은 인터넷을 통해 얼마든지 볼 수 있는데도 말이다. 한대수에게는 언제나 ‘최초’라는 단어가 어울린다. 국내 최초의 히피가수이며, 국내 최초의 싱어 송 라이터다. 그렇다면 그가 발표..
데블스 / 드디어 LP로 재발매되는 아웃사이더 데블스의 데뷔작 사실 2000년대 초반까지 데블스(Devils)란 밴드는 거의 잊힌 존재였다. 혹시 아는 사람이 있더라도 그저 “한때 ‘그리운 건 너’를 히트시켰던 원 히트 원더(one-hit wonder)의 70년대 밴드”정도로 기억할 뿐이었다. 데블스가 발표했던 음반들은 그 존재 유무가 논란이 될 정도로 눈에 잘 띄지 않았다. 발표한 정식 음반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 그 활동 기간이 짧았던 편도 아니지만 너무나 쉽게 잊혔다. 물론 동시대에 활동하던 다른 밴드들 역시 그랬다고 한다면 다른 할 말은 없겠지만. 한 컬렉터의 끊임없는 추적과 함께 2003년 들어 데블스의 공식 두 번째 음반이 LP로 재발매됐다. 닫힌 창살을 등지고 있는 독특한 표지만으로도 관심의 대상이 되었던 데블스의 두 번째 정규작은 앞서 이야기했듯 그 ..
이성원 / 1980년대 한국 언더그라운드 포크를 대표하는 이성원의 데뷔작 이성원은 1980년대 국내 언더그라운드 포크를 이야기할 때 김두수, 곽성삼과 함께 어김없이 거론되는 인물이다. 이 세 명의 싱어 송 라이터의 음악은 ‘토속적’이고 ‘사색적’이라는 공통분모를 만들고 있지만, 확실한 개성 아래서 독창적인 영역을 구축했다. 발표 당시에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이후 이들의 음악을 찾아 듣는 사람들에 의해 입에서 입으로 소문이 전해지며 초기에 발표한 음반의 가격이 천정부지로 올랐다. 이번에 재발매되는 이성원의 데뷔앨범 역시 마찬가지다. 이성원의 데뷔앨범은 1987년에 발매됐다. 고향인 경남 진해에서 진해상고를 나온 그는 마산의 라이브 카페를 거쳐 상경한 이후에도 몇몇 라이브 카페를 전전하다가 자신의 카페 ‘쉼표’를 열어 꾸준하게 노래했다. 또 1986년에는 크리스탈 문화센터..
양병집 [The Sounds of Yang Byung Jip 1974-1993] 포크의 독보적 존재 양병집, 초기 걸작의 집대성  양병집, 그의 이름엔 언제나 ‘김민기, 한대수와 함께 국내 3대 저항가수’라는 표현이 붙는다. 하지만 그러한 표현보다 오히려 ‘넋두리’라는 한 단어가 그에게 더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다. 물론 ‘넋두리’는 양병집의 데뷔앨범 타이틀이다. 그리고 음반의 발표와 함께 그의 음악을, 아니 그를 가장 잘 표현하는 단어는 ‘넋두리’가 됐다. 그의 데뷔앨범 [넋두리](1974)는 박정희 정권 당시 금지곡 파동에 휘말려 발표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량 회수되어 폐기처분됐다. 물론 그의 음반은 폐기시킬 수 있었지만 그의 음악까지 회수할 순 없었다. 그가 발표했던 음악들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오히려 더욱 긴 생명을 얻었다. 그의 넋두리는 음반이 아니라 소외되고 억압받는 ..
여러 음악인 / 히 식스의 전성기에 발매된 ‘김홍탁 작·편곡집’ 히 식스(He 6)의 연주와 김홍탁의 작, 편곡으로 된 음반으로, 객원 싱어들인 선우영아, 임성훈 그리고 송혜경이 참여했다. 히 식스는 알려져 있다시피 히 파이브의 해산 후 멤버가 재편되며 결성된 밴드다. 1970년 4월 11일 경향신문에는 “‘초원’ 등 인기곡으로 알려진 에레키 그룹 「더 히·파이브」가 지난달 29, 30 양일간 살롱 코스모스로 고별공연을 갖고 17일의 시민회관 쇼 무대를 마지막으로 해산한다.”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이렇게 4월 17일 마지막 공연을 펼친 히 파이브의 잔류 멤버 두 명, 즉 김홍탁과 조용남의 후속 행동은 빨랐다.  “소울과 사이키딜릭 사운드의 한국 상륙과 더불어 그룹사운드 활동무대의 총본산이 된 유네스코회관 뒤의 코스모스 룸은 살롱 드라마에 이어 전속 그룹사운드 「더 코..
우리 동네 사람들 /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 원작자 강승원의 프로젝트 우리 동네 사람들 : ‘에밀레’ 주변의 동네 주민들우리 동네 사람들은 ‘서른 즈음에’의 강승원을 리더로 당시 유준열과 김혜연, 김은조, 고은희 그리고 심재경으로 구성된 일종의 노래 모임이다. 심재경은 1983년 MBC 대학가요제에서 ‘그대 떠난 빈들에 서서’로 대상을 차지한 서강대 동아리 에밀레의 1기 멤버고, 현재 그의 아내인 김혜연 역시 그보다 3학번 후배인 86학번으로 에밀레 출신이다. 에밀레는 서강대 79학번 강승원이 한 학번 선배 김광엽과 함께 1983년 만든 동아리다. 그 해 에밀레 멤버라고 할 수 있는 심재경이 대학가요제에 출전했던 ‘그대 떠난 빈들에 서서’가 바로 김광엽이 작곡한 곡이다. 1983년 MBC 대학가요제에는 유준열 역시 이후 동물원에서 함께 활동하게 되는 박경찬과 함께 ‘망부가..
조용필의 실질적 데뷔앨범 / ‘단절’이 아니라 ‘과정’이며 ‘발전’이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는 조용필의 실질적인 데뷔앨범이다. ‘실질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이유는 이 음반 이전에 스플릿 음반이 한 장 더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롯이 조용필의 곡만 수록된 음반은 이 음반이 처음이다. 이 음반이 나올 무렵 알려져 있다시피 조용필은 애트킨스(Atkins), 파이브 핑거스(Five Fingers)를 거쳐 김대환의 김트리오에서 활동했다. 김트리오의 음반과 조용필의 음반이 각각 따로 발매되며, 조용필의 솔로 음반은 김트리오의 연주가 아니라 세션 연주인들의 반주로 녹음됐다. 계속해서 밴드 활동을 했던 그의 기록이 남지 않았다는 아쉬움이 없지는 않지만, ‘가수’라는 부분에 방점을 찍는 음반을 제작하려 했다는 점은 분명하고 그 의도처럼 조용필이 홀로 설 수 있는 확실한 계기가 됐다. ‘일하지 않으면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