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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ER'S MUSIC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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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트랙 테이프 수선하기 (2) 이제 정말 별 걸 다 한다(2);;;지난번엔 부직포와 함석 스프링으로 된 헤드 접촉부분이 떨어진 경우였고, 이번에 수선할 테이프들은 부직포가 아니라 발포 스티로폼 스펀지 같은 패드가 있는 경우다. 8트랙 테이프는 이런 구조로 된 경우가 더 많은데, 제조된 시간이 오래됐기 때문에 대부분의 스펀지가 삭았다고 생각하면 된다. 스펀지가 삭을 경우 가루로 부서져 지저분함은 물론 헤드 부분을 받쳐주는 쿠션이 없기 때문에 플레이를 시켜도 소리가 나지 않는다. 이런 스펀지를 교체하기 위한 키트는 이베이에 나와있지만... 내 생활의 철칙과 도 같이 "까이꺼.. 걍~"으로 밀어부치기로 한다; 우선 테이프를 들고 삭은 스펀지를 제거한다. 가루가 되어 날리기 때문에 가능한한 수세식 변기처럼 깨끗하게... 이 자리에 넣을 녀석..
8트랙 테이프 수선하기 하다 하다... 이젠 별 걸 다 한다. 8트랙 테이프는 사실 요즘은 사라진 매체다. 그 이후 매체인 카세트테이프는 요즘도 하나씩 나오는 게 있지만, 8트랙 테이프는 단종된 지 오래다. 그래서일까... 여튼 갖고 싶었다. 그래서 요즘 이베이를 열심히 뒤지고 있다. 통장의 돈은 물론 줄줄 새고 있다. 그런데, 8트랙 카트리지 테이프는 나온지 오래됐기 때문에 종종 수선해야할 부분들이 있다. 대표적인 곳이 바로 테이프 아래의 패드다. 패드는 부직포로 된 것이 있고, 발포 스티로폼 같은 걸로 되어있는 게 있다. 일단 오늘 수선의 대상은 부직포로 된 것들... 원래 테이프를 들어보면 그 아래 패드가 이렇게 붙어있다. 얇은 함석판 같은 것이 스프링 역할을 하고 그 위에 테이프의 주행을 원활하게 하기위해 부직포가 붙어..
대구 방천시장 '김광석 거리' 지난 10월 2일, 대구 TBC '김선희의 뮤직 갤러리'에 다시 출연하게 되어서 녹음을 하기 위해 대구에 다녀왔다. 오전에 녹음을 마치고... 아프리카가 운영하는 학원에 들렀다가 동성로로 나가려고 버스를 탔는데, 버스를 타고 보니 반월당에서 두 정거장만 더 가면 방천시장의 김광석 거리로 갈 수 있었다. 그래서 동성로를 지나쳐 김광석 거리로 향했다. 말 그대로 김광석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거리. 주로 벽화를 보고 사진을 찍고... 스피커에서 연신 흘러나오는 김광석의 노래를 들을 수 있는 장소였다. 벽에 박제되거나 동상에 고정된 김광석은 계속해서 웃고 있었고, 평일 오후였지만 거리에 모인 적지 않은 사람들 역시 웃고 있었다. 나도 그저 생각 없이... 보이는 그의 모습을 휴대전화 사진기에 담았다. 그런데,..
우리 동네 사람들 /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 원작자 강승원의 프로젝트 우리 동네 사람들 : ‘에밀레’ 주변의 동네 주민들우리 동네 사람들은 ‘서른 즈음에’의 강승원을 리더로 당시 유준열과 김혜연, 김은조, 고은희 그리고 심재경으로 구성된 일종의 노래 모임이다. 심재경은 1983년 MBC 대학가요제에서 ‘그대 떠난 빈들에 서서’로 대상을 차지한 서강대 동아리 에밀레의 1기 멤버고, 현재 그의 아내인 김혜연 역시 그보다 3학번 후배인 86학번으로 에밀레 출신이다. 에밀레는 서강대 79학번 강승원이 한 학번 선배 김광엽과 함께 1983년 만든 동아리다. 그 해 에밀레 멤버라고 할 수 있는 심재경이 대학가요제에 출전했던 ‘그대 떠난 빈들에 서서’가 바로 김광엽이 작곡한 곡이다. 1983년 MBC 대학가요제에는 유준열 역시 이후 동물원에서 함께 활동하게 되는 박경찬과 함께 ‘망부가..
김광한 선배님. 이제 편히 쉬세요. 1. 사실 ‘김광한’이란 이름은 그냥 책이나 소문에서만 접할 수 있었다. 피세영, 최동욱, 이종환, 박원웅, 김기덕 혹은 백형두처럼. 어떻게 생각하면 손에 잡을 수 없는 연예인과 같은 존재였다고 할까. 그 이유는 내가 살고 있는 대전은 비교적 늦게 FM의 혜택을 받았던 곳이기 때문이다. 내가 팝음악에 관심을 갖던 무렵인 중학생 시절에 처음 개국한 KBS1-FM은 클래식 전문 방송이었다. 팝음악을 소개했던 방송은 로컬 프로그램인 ‘서상철의 팝스 98.5’가 전부였다. 한 곡이라도 더 듣고, 하나라도 더 알고 싶던 시절 그렇게 김광한이라는 이름은 그저 고유명사 이외의 의미가 되지 못했다. 때가 되면 KBS 방송국 앞을 서성이거나 인켈 대리점에 들러 챙겼던 ‘포코(Poko)’는 “이런 곡은 또 어디서 들을 수..
조용필의 실질적 데뷔앨범 / ‘단절’이 아니라 ‘과정’이며 ‘발전’이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는 조용필의 실질적인 데뷔앨범이다. ‘실질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이유는 이 음반 이전에 스플릿 음반이 한 장 더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롯이 조용필의 곡만 수록된 음반은 이 음반이 처음이다. 이 음반이 나올 무렵 알려져 있다시피 조용필은 애트킨스(Atkins), 파이브 핑거스(Five Fingers)를 거쳐 김대환의 김트리오에서 활동했다. 김트리오의 음반과 조용필의 음반이 각각 따로 발매되며, 조용필의 솔로 음반은 김트리오의 연주가 아니라 세션 연주인들의 반주로 녹음됐다. 계속해서 밴드 활동을 했던 그의 기록이 남지 않았다는 아쉬움이 없지는 않지만, ‘가수’라는 부분에 방점을 찍는 음반을 제작하려 했다는 점은 분명하고 그 의도처럼 조용필이 홀로 설 수 있는 확실한 계기가 됐다. ‘일하지 않으면 사랑..
Extreme [Pornograffitti], 발표 25주년을 맞이하는 익스트림의 최고작 익스트림(Extreme)의 두 번째 앨범 [Pornograffitti]가 발표된 지도 벌써 25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그 동안 익스트림은 네 번째 앨범 [Waiting For The Punchline]을 발매한 후 1996년에 해산했다가 2004년에 재결성되어 2008년에는 다섯 번째 정규앨범 [Saudades De Rock]을 발표한 바 있으며, 현재도 공연을 중심으로 꾸준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익스트림이라는 밴드의 이름 때문에 그들의 음악을 듣지 못했던 이들은 블랙메탈이나 데쓰메탈처럼 극한의 헤비메탈을 연상할 수도 있지만, 이들의 음악은 클래식 하드록의 직접적인 영향권 아래서 펑크(funk)와 헤비메탈의 접목한 독특한 형태의 것이었다. 익스트림이라는 밴드의 이름은 그 사전적 의미가 아니라, 익스트..
윤수일 밴드 1집 / ‘고독한 도시 남자’ 윤수일 그의 음악적 특징을 규정짓는 본격적인 출발점 초등학교 시절 혼혈인이라는 이유로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던 윤수일은 5학년 무렵부터 자신의 친구는 오직 하나 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기타를 잡았다. 윤수일은 이후 인터뷰에서 “말없는 친구. ‘튀기’나 ‘양키’라고 놀리지도 않고 내 슬픈 마음을 달래주는 기타야말로 더할 수 없는 귀중한 친구가 됐습니다”라고 털어놓은 바 있다. 울산에서 학성고등학교 2학년 때 밴드를 조직해 ‘Let It Be’를 비롯한 비틀즈(The Beatles)의 곡들을 주된 레퍼토리로 삼았던 윤수일은 펄벅 재단의 도움으로 울산공대 건축과에 진학했지만, 당시 서울에서 밴드를 하고 있는 혼혈 가수들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서울로 향했다. 그 밴드는 바로 골든 그레입스(Golden Grapes). 건축과에 진학한 건 당시 미국에서 건축 설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