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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한 선배님. 이제 편히 쉬세요. 1. 사실 ‘김광한’이란 이름은 그냥 책이나 소문에서만 접할 수 있었다. 피세영, 최동욱, 이종환, 박원웅, 김기덕 혹은 백형두처럼. 어떻게 생각하면 손에 잡을 수 없는 연예인과 같은 존재였다고 할까. 그 이유는 내가 살고 있는 대전은 비교적 늦게 FM의 혜택을 받았던 곳이기 때문이다. 내가 팝음악에 관심을 갖던 무렵인 중학생 시절에 처음 개국한 KBS1-FM은 클래식 전문 방송이었다. 팝음악을 소개했던 방송은 로컬 프로그램인 ‘서상철의 팝스 98.5’가 전부였다. 한 곡이라도 더 듣고, 하나라도 더 알고 싶던 시절 그렇게 김광한이라는 이름은 그저 고유명사 이외의 의미가 되지 못했다. 때가 되면 KBS 방송국 앞을 서성이거나 인켈 대리점에 들러 챙겼던 ‘포코(Poko)’는 “이런 곡은 또 어디서 들을 수..
조용필의 실질적 데뷔앨범 / ‘단절’이 아니라 ‘과정’이며 ‘발전’이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는 조용필의 실질적인 데뷔앨범이다. ‘실질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이유는 이 음반 이전에 스플릿 음반이 한 장 더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롯이 조용필의 곡만 수록된 음반은 이 음반이 처음이다. 이 음반이 나올 무렵 알려져 있다시피 조용필은 애트킨스(Atkins), 파이브 핑거스(Five Fingers)를 거쳐 김대환의 김트리오에서 활동했다. 김트리오의 음반과 조용필의 음반이 각각 따로 발매되며, 조용필의 솔로 음반은 김트리오의 연주가 아니라 세션 연주인들의 반주로 녹음됐다. 계속해서 밴드 활동을 했던 그의 기록이 남지 않았다는 아쉬움이 없지는 않지만, ‘가수’라는 부분에 방점을 찍는 음반을 제작하려 했다는 점은 분명하고 그 의도처럼 조용필이 홀로 설 수 있는 확실한 계기가 됐다. ‘일하지 않으면 사랑..
Extreme [Pornograffitti], 발표 25주년을 맞이하는 익스트림의 최고작 익스트림(Extreme)의 두 번째 앨범 [Pornograffitti]가 발표된 지도 벌써 25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그 동안 익스트림은 네 번째 앨범 [Waiting For The Punchline]을 발매한 후 1996년에 해산했다가 2004년에 재결성되어 2008년에는 다섯 번째 정규앨범 [Saudades De Rock]을 발표한 바 있으며, 현재도 공연을 중심으로 꾸준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익스트림이라는 밴드의 이름 때문에 그들의 음악을 듣지 못했던 이들은 블랙메탈이나 데쓰메탈처럼 극한의 헤비메탈을 연상할 수도 있지만, 이들의 음악은 클래식 하드록의 직접적인 영향권 아래서 펑크(funk)와 헤비메탈의 접목한 독특한 형태의 것이었다. 익스트림이라는 밴드의 이름은 그 사전적 의미가 아니라, 익스트..
윤수일 밴드 1집 / ‘고독한 도시 남자’ 윤수일 그의 음악적 특징을 규정짓는 본격적인 출발점 초등학교 시절 혼혈인이라는 이유로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던 윤수일은 5학년 무렵부터 자신의 친구는 오직 하나 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기타를 잡았다. 윤수일은 이후 인터뷰에서 “말없는 친구. ‘튀기’나 ‘양키’라고 놀리지도 않고 내 슬픈 마음을 달래주는 기타야말로 더할 수 없는 귀중한 친구가 됐습니다”라고 털어놓은 바 있다. 울산에서 학성고등학교 2학년 때 밴드를 조직해 ‘Let It Be’를 비롯한 비틀즈(The Beatles)의 곡들을 주된 레퍼토리로 삼았던 윤수일은 펄벅 재단의 도움으로 울산공대 건축과에 진학했지만, 당시 서울에서 밴드를 하고 있는 혼혈 가수들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서울로 향했다. 그 밴드는 바로 골든 그레입스(Golden Grapes). 건축과에 진학한 건 당시 미국에서 건축 설계사..
동물원 / 풋풋하고 신선하며 개성 강한 아마추어리즘의 기록 1. 프로듀서 김창완.1970년대 후반, 말 그대로 혜성처럼 등장해서 수많은 히트곡과 함께 국내 락계에 커다란 이정표를 세웠던 산울림. 김창완, 김창훈 그리고 김창익 이렇게 삼형제로 이루어진 트리오 산울림의 활동은 1983년에 막을 내렸다고 할 수 있다. 물론 1984년에 10집 음반이 발표되었고, 그 이후 13집까지 앨범이 발표되기도 했지만, 10집은 김정택의 그룹 운명이 연주를 담당한 음반이었고, 11집과 12집은 김창완 솔로와도 같은 음반, 그리고 13집은 일시적인 재결합에 의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산울림 활동 기간 중에도 김창완은 [노고지리 제2집](서라벌, SR-0176, 1979), [손미나의 새 노래들](서라벌, SR-0173, 1979), [TBC-FM 7시의 데이트: 사랑의 듀엣](서라벌..
린다 매카트니 사진전에 다녀와서... 어젠 오전에 올림픽 공원에서, 그리고 오후엔 광화문에서 각각 한 건씩 심사가 있었다. 마침 올림픽 공원에서 광화문까지는 지하철 5호선을 한 번만 타면 되기 때문에, 심사를 마치고 올림픽 공원 근처에서 간단하게 점심 식사를 한 뒤 광화문으로 향했다. 그런데, 시간까지 정확하게 맞지는 않아서 결국 심사 시간보다 두 시간 일찍 광화문에 도착했다. 그 덕에 계속해서 마음 속에만 "언젠가는 가야지"라고 생각하던 린다 매카트니 사진전이 열리는 대림 미술관으로 향했다. 사진전이 열린 건 꽤 오래됐는데도 미술관에 관람객이 생각보다 많았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엔 할인 행사가 있기 때문인 것 같았다. 어쨌든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그녀의 시선을 담아왔다. 지금이야 휴대전화에도 카메라가 모두 달려있고,..
그들의 소리 그녀가 되다. 강허달림 [Beyond the Blues] 한 장의 음반을 오롯이 리메이크로 꾸미는 작업은 종으로 흐르는 역사를, 음반을 녹음하는 시점에 횡적으로 다시 정리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한 번의 해프닝으로 끝나게 될지, 그렇지 않고 원곡들까지 재조명 받는 우수한 결과가 되느냐는 선곡과 정리 과정에 의해 결정될 문제일 것이다. 단순히 노래 잘 하는 가수가 멋진 곡을 다시 불렀다는 것만으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란 얘기다. 앞서 얘기한 우수한 결과물 가운데는 김광석의 [다시 부르기], 윤도현의 [한국락 다시 부르기], 혹은 이은미의 [Nostalgia]와 같은 음반들이 있겠다. 그리고 그 음반들에는 각각 조동익, 유병열 그리고 오승은이라는 든든한 조력자들이 있었다. 강허달림이 리메이크 음반을 내 놓겠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참 멋진 음반이 나오겠구나 하..
와콤 잉클링 사용 실패기 OTL 2주 전 락큰롤코리아 2014 공연장에서 만난 윤경이가 건네준 와콤 잉클링(Wacom Inkling). 사실 이런 태블릿을 한 번도 써 본적이 없기 때문에... 주변에 물어볼 만한 사람은 더 없고.. 어쨌든 집에 가지고 와서, 여기 저기 살펴보기 시작했다. 특별히 매뉴얼을 함께 받지 못하고 그냥 본체(?)만 받았는데, 휴대하기 간편해보였다. 그런데... 태블릿이면 무슨 패드가 있어야하는 게 아닌가... 구글링을 해보니, 이건 종이에 직접 그리고 그걸 인식하는 기능을 하는 장치인 듯했다. 그리고... 앗.. 이게 마치 트랜스포머처럼 뚜껑이 열린다! 먼저 올렸던 사진이 잉클링에 필요한 모든 부속을 수납할 수 있는 일종의 필통인 것이다. 여기에 충전을 위한 USB단지, 교체용 볼펜심, 그리고 데이타를 인식하는..